2016.12.25
페이스북은 대학생들이 창업한 기업이지만, 현재 시가총액이 약 400조원 이상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250조원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위상이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페이스북의 주인은 누구일까? 놀랍게도 창업 주역이었던 마크 저커버그가 아직도 25%의 소유권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페이스북 같은 성공신화가 한국에서 일어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자본이 부족한 대학생 창업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 경영학과 학생 3명이 세상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유망한 아이템을 찾았다고 생각해 보자. 이들은 아마도 부모 혹은 주위 지인들에게 부탁하여 5000만원 정도의 자본금을 모아서 회사를 설립할 것이다.
창업한 회사가 처음 생각대로 순조롭게 성장하기 시작한다면 너무나 좋은 일이지만 창업자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회사가 빠르게 성장할수록 창업자들은 회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출이 증가할수록 설비투자와 원자재 구입을 위해서 더욱 많은 운전자본이 필요해지고, 신용이 부족한 대학생들은 대출이 아닌 외부 투자에 의존해야 한다.
외부 자본이 투입될수록 대학생들의 지분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 매출액이 1억원을 넘는 순간 대학생들의 지분은 30% 정도 낮아지고, 10억원을 초과하면 50% 정도, 그리고 100억원을 초과하면 거의 70% 정도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된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할수록 창업한 회사는 대학생들이 소유하기 어려운 회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창업한 회사가 성장할수록 남의 회사가 되는 현상은 대학생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창업 이후 추가적인 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자금력이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한국에는 없는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한국 상법은 주식 1주는 반드시 1개의 의결권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보유한 지분율 이상 혹은 이하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저커버그가 보유한 주식은 1주가 200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고, 워런 버핏의 경우에도 1주가 10만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차등의결권을 활용하면 창업주가 자신의 지분율을 희석시키지 않고서도, 상당한 외부 자금을 투자받을 수 있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기존의 대기업에도 매우 필요한 제도이다.
차등의결권 제도를 활용하면 투기 자본으로부터 한국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일도 훨씬 쉬워진다. 대규모 외부 자금을 활용하여 주가 차액을 노리는 단기매매를 하더라도, 차등의결권으로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으면 추격 매수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2003년 SK-소버린 사태, 2006년 KT&G-칼 아이컨 사태, 그리고 2015년 삼성물산-엘리엇매니지먼트 사태처럼 향후에도 한국 기업에 대한 경영권 위협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차등의결권 제도는 한국 재벌들의 변칙적인 경영권 상속 문제도 보다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현재의 상법과 세법에서는 시가총액 100조원이 넘는 회사의 주식 50% 정도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상속인이 25조원 이상의 상속세를 낼 수 있는 자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상속받을 사람이 이 정도의 자금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규제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 혹은 반복적인 인수·합병 등을 활용하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상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비록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이지만 해당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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