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20
위기의 사모펀드.초심으로 돌아가라.
'그릿(grit)'이라는 새로운 성공방정식에 대중이 열광하고 있다.
우리말로 '열정적 끈기의 힘'을 뜻하는 '그릿'은 재능보다 노력의 힘을 강조한 개념이다. 같은 제목의 책은 출간한 지 넉 달이 다 됐지만 여전히 시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 상단에 꽂혀 있을 정도로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책에서 저자는 방대한 사례 조사와 연구를 통해 찾아낸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이 타고난 '재능'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지속적인 꾸준함'이라고 말한다. 그중 입학과 졸업이 모두 어렵기로 소문난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 생도들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 결과는 읽는 이들에게 상당한 통찰을 준다.
사관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장교로 임관한 생도들 대부분이 입학 성적이나 재능, 환경적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아니었다. 그 대신 위기 상황에서 극복할 수 있는 능력, 역경을 순탄히 풀어낼 역량인 '그릿'이 핵심 요소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지금 그 어디보다 '그릿'이 필요한 곳이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업계가 아닌가 싶다. PEF들은 마땅한 투자처 찾기가 어렵고 투자자금 회수도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몰렸다. PEF는 '프라이빗 에퀴티 펀드(Private Equity Fund)'가 아니라 '페이션트 에퀴티 펀드(Patient Equity Fund·인내력을 요구하는 펀드)'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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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국내 PEF 운용사들이 주로 애용하는 마이너리티(소수) 지분 투자 기법의 실효성이 위협받고 있다. 소수지분 투자는 바이아웃(경영권 인수)과 달리 기업들로부터 일정 수익률을 약속받고 '드래그얼롱(동반매도권)'을 비롯한 옵션계약을 맺어 사실상 원금을 보장받는 대출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최근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소수 지분에 투자한 재무적투자자(FI)들이 "회사 측이 자금 회수를 도와야 하는 계약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제기한 1심 소송에서 패하면서 유사한 투자가 많았던 업계 전체가 긴장하는 모습이다.
PEF업계는 중대 전환점을 맞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직후에는 자금 동원력이 시장 판도를 가를 핵심 능력이었다. 론스타, 칼라일을 비롯한 대형 외국계 펀드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큰 차익을 거뒀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국내에도 각종 연기금·공제회·보험사들이 쌓아둔 대기 자금이 넘쳐난다. 단순히 기업에 돈만 대는 식의 쉬운 투자로는 더 이상 시장에 발을 붙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지금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추구하는 사모투자 본연의 투자철학이 빛을 발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투자처 발굴과 투자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PEF업계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 위기를 기회로 풀어낼 수 있는 역량. 바로 '그릿'이 절실해 보인다.
[강두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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