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문

상장사 주주총회 '최고권력'! 의결권 자문사대기업 CEO들 ISS에 줄줄이 무릎 꿇어"3대 연금' 의결권 판단...모두 외부에.

Bonjour Kwon 2017. 3. 24. 09:36

[힘 커지는 '의결권 자문사']

2017-03-24

 

24일 슈퍼주총…연기금 뒤흔드는 의결권 자문사

 

반기업정서 강한 한국은 부작용 더 심할 듯

20여명이 수백개 상장사 현안 '무더기 처리'

“영향력 있는 최고경영자(CEO)들이 합병 등 안건에 대해 ISS를 설득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찾아간다. 기관투자가들이 스스로 의안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ISS의 자문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로 알려진 레오 스트라인 미국 델라웨어주 대법원장이 2005년 워싱턴법률재단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의결권 자문사가 스스로 권력기관화하면서 상장사의 로비 대상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자문시장 실태는

 

요즘 한국 상장사들이 이와 똑같은 우려를 내놓고 있다. 금융당국이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강조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반기업 정서가 난무하고 의결권 자문시장 자체가 성숙되지 않은 여건에선 부작용이 더 클지 모른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의결권 자문사는 한국거래소 산하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서스틴베스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 4곳이다. 세계 의결권 자문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1위 자문사인 미국의 ISS도 한국 상장사에 대해 연간 100건가량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의결권 자문시장의 전체 규모가 연간 10억원을 약간 웃도는 정도여서 회사로서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력 구성은 경영·경제학 박사나 애널리스트 회계사 변호사 교수 등으로 구색을 갖추고 있지만 4개사 모두 20여명 안팎에 그친다.

 

이들의 임무는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의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사 후보자에 대해선 범죄 경력, 독립성이나 전문성 여부 등으로 찬반을 결정한다. 기본 업무는 고객사가 요청하는 보고서 작성이지만 그 밖에 주요 상장사에 대한 요약보고서도 만든다. 합병·사외이사나 감사위원 선임·정관변경·재무제표 승인 등 주주총회에 올라오는 모든 안건이 분석 대상이다. 분석을 위해 탐방을 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등의 투자회사가 계속 늘어나면서 이들이 처리해야 할 의안도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일감이 늘어나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할 상황이지만 아직 국내에 관련 전문가 집단도 구축돼 있지 않다. 의결권 자문사 결정에 목을 매야 하는 상장사들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최문희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짧은 정기 주주총회 기간에 압축적으로 검토해야 할 안건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고 심도 있는 분석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1위 ISS도 실수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분석인력(500여명)을 보유하고 있는 ISS도 실수할 때가 없지 않다. 2013년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 선임에 대한 반대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ISS는 안건분석 보고서를 통해 3명의 사외이사 중 일부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다. 문제의 이사들이 KB금융지주의 ING생명 인수에 반대표를 던지는 바람에 지주사 운영에 혼란을 줬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ISS 보고서와 달리 그들은 ING생명 인수에 찬성한 인사였다. KB금융지주의 전 임원이 제공한 잘못된 정보를 ISS가 검증 없이 분석보고서에 실은 게 발단이었다.

 

오판은 누가 책임지나

 

그럼에도 자문사의 권고는 실제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나디아 말렌코 미국 보스턴대 금융학과 교수가 2015년 5월 발표한 논문 ‘의결권 자문사의 역할’에 따르면 임원 보수 관련 주총 표결에서 ISS의 반대 권고는 찬성표를 25%포인트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의 지배구조 자문사인 HQB파트너스의 연구에서도 ISS가 2010~2011년 반대 의견을 낸 주주총회 안건에 70% 이상 기관투자가들이 그대로 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 1~3월 정기 주총에서 국내 61개 자산운용사가 행사한 의결권 내역도 비슷한 흐름이다. 외부자문을 받은 9개 운용사의 반대비율은 28.6%로 그렇지 않은 운용사(3.1%)에 비해 9배가량 높았다.

 

한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삼성물산 합병 때 국민연금이 자체 판단으로 자문사 권고와 반대되는 표결을 했다가 온갖 비난에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지 않느냐”며 “이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은 자문사의 결정을 그대로 따라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결국 의결권 자문사의 입김이 세질수록 기관투자가의 역할은 위축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기관이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모럴해저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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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연금' 의결권 판단...모두 외부에 맡긴다

 

입력 2017-03-23

국민연금 삼성 합병 '학습효과'…의결권 자문사, 또다른 권력으로

국민연금·사학·공무원연금, 올해 동시에 의결권 자문계약

삼성전자 등 924개 상장회사의 주주총회가 몰린 23~24일 ‘슈퍼 주총’을 앞두고 대기업의 이사 재선임안에 대한 의결권 자문회사들의 반대 권고가 유독 많이 쏟아지고 있다. 정식 의뢰를 받은 것도 있지만 자문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 권고도 많다.

 

자문사들이 상장사 경영현안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췄는지 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기업들에 또 하나의 ‘권력’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 국내 3대 연기금과 행정공제회는 최근 의결권 자문사와 잇달아 계약을 맺고 투자한 회사들의 경영사안에 대한 판단을 구하기로 했다. 행정공제회는 1월 초, 공무원연금은 이달 초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첫 계약을 맺었다. 국민연금은 2015년부터, 사학연금은 지난해부터 자문사 의견을 얻고 있다. 군인공제회와 교직원공제회도 계약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금융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권고하는 스튜어드십 도입을 압박하면서 본격화하고 있다.

 

주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야 투자회사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고 한국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는 취지다. 실제로 기관투자가들이 수많은 투자회사의 경영 현안을 일일이 직접 판단하기도 어려운 여건이다. 국내 기관과 외국인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총 1659개. 이 가운데 국민연금은 285개사에 5%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4년여 전에 비해 60개사가 늘어난 것이다. 앞으로 국내 연기금 규모가 불어나는 속도에 비례해 투자사도 크게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이 ‘최순실 게이트’를 거쳐 검찰 수사대상에 오르면서 기관투자가들 자신도 찬반 여부를 직접 결정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의결권 자문사들의 전문성과 역량이다. 대부분 국내 자문사는 1700여개에 달하는 기관투자가의 투자회사 현안을 면밀하게 분석할 만큼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경험 부족과 법률·경영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비합리적 결정을 권고할 때도 많다”(한 로펌 관계자)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개별 기업들은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가 엉뚱하게도 ‘자문사들의 권력’으로 바뀌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어렵사리 마련한 경영계획이 자문사의 반대로 틀어지면 경영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문사의 권고를 참고만 하고 실제 결정은 기관투자가가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삼성물산 합병 건으로 “국민연금이 무슨 이유로 미국계 자문사인 ISS의 반대 권고를 묵살했느냐”는 논란이 생겨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권고 자체가 일정 수준의 구속력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