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3
우정사업본부·고용노동부 자금으로 5년간 불법 자전거래
法 "주의의무 다하지 못했지만 고의성 없어"…일부 무죄
53조1069억원은 "자전거래 금지를 회피하고 경제적으로 유사한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제3 증권사를 매개로 '당일 시장 재매수 방식'을 사용한 연계거래"라며 "이 또한 과태료 제제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우정사업본부와 고용노동부 등으로부터 투자받은 기금으로 88조3000억여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전거래를 한 혐의로 기소된 현대증권 임직원들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7단독 문성호 판사는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위반(자전거래) 혐의로 기소된 현대증권 전 고객자산운용본부장 이모씨(57)와 김모씨(59)에게 각각 벌금 2000만원과 1500만원을, 전 랩운용부 부장 박모씨(55)와 전 신탁부 부장 신모씨(53)에게 벌금 4000만원과 800만원을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또 검찰이 기소한 자전거래 금액 88조3053억원 중 35조1984억원만 유죄로 인정하고 53조1069억원은 자전거래와 유사한 연계거래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 등은 우정사업본부와 고용노동부 등 공공기관에 높은 수익률을 약정하고 8조9024억여원을 투자·신탁받아 랩(WRAP·개인자산종합관리계좌)계좌 등을 운용하면서 2009년 2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5341회에 걸쳐 88조3053억에 달하는 불법 자전거래를 자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자전거래(自傳去來)란 한 투자자에게 자금을 받은 증권사가 계약기간이 끝나고 돈을 돌려주어야 할 때, 다른 투자자로부터 유치한 자금으로 반환하는 '돌려막기'의 일종이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98조와 제108조는 이같이 증권사가 서로 다른 투자자로부터 일임받거나 신탁받은 재산을 직접거래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단 동일 투자자의 자산 간 직접거래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우정사업본부와 고용노동부 등은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예금을 맡기는 투자자가 폭증했고, 마침 세계적으로 저금리정책이 시행되면서 채권가격이 상승하자 단기에 고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CP(기업어음),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 등 고금리 투자상품에 눈을 돌리게 됐다.
이씨 등은 다른 증권사보다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해 실적을 올릴 목적으로 두 공공기관에 시중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미리 약정하고 8조9024억여원을 투자·신탁받았다.
이후 약정한 수익을 지급하기 위해 이들은 단기신탁계좌에 장기어음을 매입해 운용하는 '만기 불일치(mis-matching)' 운용방식을 사용했다.
이씨 등은 2009년 2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5년에 걸쳐 군인공제회 CP 99억6000만원 어치를 우정사업본부예금기금 랩 계좌에 매도하는 등 총 5341회에 걸쳐 88조가 넘는 자전거래를 거듭하며 수익률을 올리고 실적을 쌓았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이들이 각각 20조7000억원(이씨), 16조2907억원(김씨), 39조805억원(박씨), 12조2341억원(신씨)을 자전거래했다며 최대 4년에서 1년6개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이씨 등은 35조2000억여원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자전거래를 했음을 인정하면서도 "표면상의 수익자(투자자)가 동일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자전거래'로 알았다"며 고의가 없었음을 주장했다. 또 나머지 신탁거래재산 53조1000억원여는 자전거래가 아니라 '연계거래'였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문 판사는 이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문 판사는 "우정사업본부는 예금기금과 보험기금을, 고용노동부는 산재보험기금과 고용보험기금을 각각 맡기는 등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투자자"라면서도 "주로 상호 및 사업자등록번호로 투자자를 특정했기 때문에 이씨 등이 이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자전거래의 고의가 없다고 보았다.
이어 신탁거래재산 53조1069억원은 "자전거래 금지를 회피하고 경제적으로 유사한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제3 증권사를 매개로 '당일 시장 재매수 방식'을 사용한 연계거래"라며 "이 또한 과태료 제제는 가능하지만 검찰이 공소제기 한 '자본시장법 위반'의 구성요건에는 들어맞지 않다"며 무죄 취지를 설명했다.
다만 문 판사는 "금융감독원이 2011년 실시한 종합검사에서 현대증권은 8조8000억원 상당의 자전거래가 적발돼 지적당한 바 있고, 이씨 등의 경력·지위·전문성 등을 미루어볼 때 충분히 자전거래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수익률 제고라는 목표에만 집착해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dongcho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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