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롯데홀딩스 영향력 감소로
'국적' 논란 해소·투명성 제고
신흥시장서 식품사 M&A 추진
유망 해외사업 지주사가 직접 투자
매각이냐, 지주 체제에서 제외냐
지배구조 정리라는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가고 있는 롯데그룹이 금융계열사 정리라는 새로운 숙제를 안아들게 됐다. 오는 10월 새로 출범하는 '롯데지주 주식회사'가 보유하게 될 롯데카드와 롯데캐피탈 지분을 어떤 방식으로든 처분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호텔롯데와 대홍기획이 대주주인 롯데손해보험 지분 정리 방향과도 얽혀있다. 롯데가 '지주회사'라는 선택을 한 이상, 금융계열사 지배구조를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일원화하는 작업은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4월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칠성음료·롯데푸드에서 각각 투자부문을 분할, 합병해 롯데지주를 세우기로 했다. 롯데지주는 롯데푸드·롯데쇼핑·롯데칠성을 각각 계열사로 거느리게 되며, 금융계열사인 롯데카드와 롯데캐피탈의 경영권 지분도 보유한다.
문제는 일반지주회사인 롯데지주가 금융계열사를 보유하는 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점이다. 롯데지주는 출범 후 2년 이내인 2019년 10월까지 롯데카드 지분 93.8%와 롯데캐피탈 지분 25.6%를 처분해야 한다.
롯데지주가 보유하게 될 롯데카드 지분의 순자산 가액은 2조원, 롯데캐피탈 지분 순자산 가액도 2600억여원에 달한다. 선택지는 단순하다. 아예 외부에 매각하거나, 지주 체제 밖으로 빼내야 한다.
아예 외부에 매각하는 건 롯데그룹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롯데그룹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주로 '인수자'를 담당해왔다. 삼성 화학계열사 빅딜(big-deal), 말레이시아 타이탄 인수, KT렌탈 인수 등 사는 노하우는 풍부하지만, 파는 노하우는 거의 쌓이지 않았다. 지분 매각이라고 해봐야 계열사간 거래가 고작이었다.
게다가 '금융회사' 매각은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을 지켜야 하고,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 변수가 많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롯데그룹 전략라인 일각에서 "채우기만 해왔던 우리 그룹이 과연 잘 비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유통사업·렌탈사업과의 시너지도 고려해야 한다. 롯데카드는 그간 유통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해왔다. 롯데캐피탈과 롯데손해보험은 국내 1위 렌탈사인 롯데렌탈과의 시너지가 이제 막 나기 시작했다.
물론 각 금융계열사의 향후 전망 자체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롯데카드는 유통 연계 고객군 외에 시장 점유율이 미미하다. 롯데손보는 실적이 좋아지곤 있다지만, 업계 평균보다 한참 높은 자동차 보험 손해율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 가계 대출 비중이 큰 롯데캐피탈은 가계 대출을 줄이려는 정부 정책의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다만 각 금융계열사의 실적과는 별개로, 사업 시너지 면에서 롯데가 금융계열사를 포기하기엔 아쉬움이 클 거란 평가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신동빈 회장이 직접 보유하거나, 지주회사 체제 밖으로 금융계열사를 꺼내는 정도가 남는다. 신 회장이 금융계열사의 최대주주가 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롯데카드와 롯데캐피탈 지분의 순자산가치만 2조2600억원이고, 롯데손해보험 지분 40%의 시장가격도 1500억원에 달한다.
지주회사 체제 밖으로 빼는 방식은 크게 호텔롯데가 보유하는 방법과 일본 롯데홀딩스가 보유하는 방법이 언급된다.
호텔롯데는 이미 롯데손해보험의 최대주주다. 자금력도 풍부한 편이다. 문제는 호텔롯데가 상장 후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지주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 경우 롯데그룹은 또 다시 같은 문제에 마주하게 된다. 규제를 피해 SK C&C로 증권을 넘겼다가 SK-SK C&C 합병으로 다시 공정거래법을 위반하게 된 SK그룹과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
호텔롯데의 지주 비율도 아슬아슬하다. 현재 호텔롯데의 총자산은 16조7000억원 수준이다. 이중 자회사 투자 자산 규모는 약 6조1000억원으로 지주 비율은 37%다. 만약 순자산 가액이 2조2600억원에 달하는 롯데카드와 롯데캐피탈이 일거에 호텔롯데 자산으로 편입되면 호텔롯데의 지주 비율이 50%에 육박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일본 롯데홀딩스로 넘기는 방법은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되는 카드다. 일본기업 논란 홍역을 겪은 롯데그룹이 '금융계열사를 일본에 판다', '금융을 통해 국부를 유출한다'는 여론을 무릅쓰게 되는 판단을 내릴 진 미지수다.
공정거래법에 따른 지분 매각 시한은 2년 연장이 가능하다. 최대 2021년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 그 사이 중간지주회사가 도입되면 롯데그룹엔 또 다른 선택지가 생긴다. 또카드나 손보를 중심으로 비은행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신청하고, 특례에 따라 5년의 여유를 추가로 얻을 수도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계열사에 대해서는 명확한 로드맵이 있다기보단 일단 시간을 벌어두고 방법을 고민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순환출자 정리를 위해선 지주회사 전환이 최선의 대안인만큼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2일 서울 잠실 시그니엘서울에서 열린 롯데지주 출범식에서 새 기업이미지(CI)를 넣어 제작한 지주회사 깃발을 흔들고 있다. /롯데 제공
롯데지주의 자산은 6조3576억원, 자본금은 4조8861억 규모다. 지주는 가치경영실, 재무혁신실, HR혁신실, 커뮤니케이션실 등 6개실 17개팀으로 구성되며, 전체 임직원 수는 170여명 규모로 출범한다.
12일 롯데지주 출범으로 롯데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을 마무리했다. 신동빈 회장은 이를 통해 경영권 분쟁을 사실상 끝내고 그룹 지배력을 확고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주회사 우호지분을 50% 정도 확보했을 뿐 아니라 416개 계열사가 얽히고설킨 상호출자 구조를 2년 만에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는 데 성공해 경영능력과 추진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롯데는 지주사 출범을 계기로 국내외 기업 인수합병(M&A)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또 롯데호텔을 상장한 뒤 롯데지주와 합병해 일본 롯데홀딩스의 영향력을 축소할 방침이다.
◆자회사 수 70개까지 늘린다
롯데지주는 우선 자회사 요건(상장사 지분 20%, 비상장사 40%)을 충족하는 식품(9개사) 유통(18개사) 관광(1개사) 금융(8개사) 기타(6개사) 등 42개사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봉철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부사장)은 “향후 공개매수, 추가 분할합병, 지분매입 등을 통해 화학·건설 분야 13개사를 편입시키는 등 자회사 수를 7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주사 체제 전환으로 순환출자 고리는 더 줄었다. 기존 67개이던 순환출자고리는 지난달 14일 롯데건설이 롯데쇼핑 주식을 모두 처분해 50개로 줄었고, 롯데지주 출범으로 13개까지 감소했다. 롯데지주는 가치경영실, 재무혁신실, HR혁신실, 커뮤니케이션실, 준법경영실, 경영개선실 등 6개 실로 구성됐고, 전체 임직원 수는 170여 명 규모다.
◆신 회장 지배체제 완성…우호지분 47.2%
지주사 출범으로 신 회장은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 등 그룹의 핵심 유통·식품 계열사 42개를 거느린 롯데지주를 장악하게 됐다.
롯데지주의 신 회장 우호지분은 50%에 육박한다. 신 회장 개인 지분율 13.0%에 롯데 계열사 지분 27.2%, 잠정적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2.0%)과 롯데재단(5.0%) 지분을 더하면 신 회장의 우호지분은 47.2%에 달한다. 외부 전체 지분(44.4%)보다 많다.
반면 경영권 분쟁을 벌여온 신동주 전 부회장의 지분율은 0.3%, 신격호 총괄회장 지분율은 3.6% 수준이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롯데지주 지분율은 4.5%에 불과하다. 나머지 지분도 대부분 일본 롯데와 무관한 것으로 알려져 지주사 출범은 그동안 롯데그룹을 괴롭혀온 ‘국적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롯데는 이번 지주사 전환이 “신 총괄회장 뜻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신 총괄회장이 이룬 업적 위에 선제적인 혁신으로 뉴 롯데를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신 회장과 함께 롯데지주 공동대표로 선임된 황각규 사장은 “신 총괄회장이 지금의 롯데지주를 보면 대단히 기뻐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얀마·인도에서 식품 M&A 추진
지주사 출범으로 신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롯데’도 탄력을 받게 됐다. 별도 사업이 없는 롯데지주가 신흥시장 개척과 M&A, 그룹 소유의 자산 효율화에 주력할 토대가 마련돼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병연 가치경영실장(부사장)은 “미얀마,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식품기업 M&A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호텔을 50개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계속 확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부사장은 “롯데의 해외사업은 중국을 제외하고 최근 3년간 연평균 12% 매출이 늘었다”며 “해외 유망사업은 (계열사가 아니라) 지주사가 직접 투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