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3
“투자 안 하는 건 시장 못 믿기 때문
기업이 활기 찾게 규제 합리화해야”
에인절 투자(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자본투자) 시 전액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투자금액을 ‘1500만원 이하’에서 ‘3000만원 이하’로 확대하고 2000만원까지의 스톡옵션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서울 숭실대에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뒤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민간 중심의 혁신창업을 통한 제2의 벤처붐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 부총리,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김춘식 기자]
“대통령은 외발자전거가 아닌 두발자전거를 타야 한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1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과거 정권이 ‘노동’과 ‘자본’이라는 경제의 두 구성 요소 중 한쪽에만 치우친 정책을 펴면서 외발자전거를 타는 것 같은 양태를 보여왔다는 얘기다. 이제는 둘을 모두 동등하게 챙기는 두발자전거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외발자전거 경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공정 경제’와 ‘소득주도 성장’에 주력하면서 노동과 분배 쪽에 더 기울어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2일 발표된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이 주목받는 건 지금까지 방향과 다른, 자본과 성장을 강조하는 정책이라서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한 축인 ‘혁신성장’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정부는 일단 성장의 해법을 혁신 벤처기업 중심 창업에서 찾았다. 벤처기업 활성화를 통해 역동성을 잃은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한국은 창업이 각광받지 못하는 국가다. 지난 4월 미국의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 프로젝트가 주요 도시별 창업 생태계 가치를 분석한 결과 서울은 24억 달러(약 2조6800억원)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미국 실리콘밸리(2640억 달러), 중국 베이징(1310억 달러), 이스라엘 텔아비브(220억 달러), 싱가포르(110억 달러) 등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혁신벤처형 창업보다는 음식점 같은 생계형 창업이 대부분이다. 창업을 해도 큰 기업으로 성장시키기는 더욱 어렵다. 실패자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정부 대책에는 이런 요소들을 모두 고려한 흔적이 보인다. 정부는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 등 총 30조원을 투입해 혁신 창업 활성화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에인절 투자(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자본투자) 시 전액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투자금액을 ‘1500만원 이하’에서 ‘3000만원 이하’로 확대하고 2000만원까지의 스톡옵션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크라우드펀딩도 금융·보험업, 부동산업, 도박업 등을 제외하고는 전면 허용된다. 대기업에서 분사 창업했다가 실패할 경우 창업자가 모기업에 재입사할 수 있도록 창업휴직제 도입도 유도하기로 했다. 연대 보증제 폐지 대상을 확대하고 개인파산 시 압류 제외 대상 생계비도 6개월간 900만원에서 108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이를 통해 5년간 혁신창업기업 1000개를 발굴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 이어 판교창조경제밸리 활성화 방안과 코스닥 중심의 자본시장 혁신 방안도 발표한다. 혁신성장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장 확실하게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 즉 기업 투자 활성화 대책 없이 창업 정책만으로 ‘두발자전거 경제’로의 전환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창업 정책도 과거 여러 정권이 시도했다가 모두 실패한 전례가 있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창업 기업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보다 큰 틀에서 규제 합리화가 필요하다”며 “창업 정책도 창업 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 수준에 머문다면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혁신창업이 쉽지 않고 자발적인 에인절 투자자가 많지 않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시장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창업 마중물을 붓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효과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 정부는 대기업과 신생기업의 관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보는 것 같은데 수출 의존 국가인 한국의 특성상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 정책을 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박진석·심새롬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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