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dge,멀티에셋펀드

[한국 펀드매니저 대해부] (3) 성장주 下 | 헤지펀드 고수들 전성시대 맞아 전통 강자 ‘공모펀드’ 명성 되찾을까

Bonjour Kwon 2018. 5. 3. 12:41

 

 

 

 

2018.02.28

 

1999년 바이코리아 열풍을 뒤로하고 2000년대 들어서며 펀드시장은 많은 굴곡을 맞이한다. 격랑 속에서도 펀드 대중화를 이끈 주역들은 지금도 투자시장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공모펀드시장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거나 독립해 자산운용업계의 거물로 성장한 이들도 다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공모펀드가 위축된 틈을 한국형 헤지펀드가 메우고 있다. 14조원대 시장으로 성장해 금융투자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펀드매니저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했고 헤지펀드시장은 어느덧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거물’로 성장한

 

한국펀드 대중화 주역들

 

1999년 바이코리아펀드 열풍의 후유증을 안고 들어선 2000년대 펀드시장은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2001년 미국의 9·11테러는 세계 증권시장을 뒤흔든 사건으로 기억된다. 큰 충격을 겪은 한국 주식시장은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2002년 월드컵으로 인한 내수 호황으로 성장했지만 이듬해 신용카드사 부실로 다시 조정을 받았다. 증시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펀드시장도 정체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위기를 해소하게 된 계기는 바로 적립식 펀드 열풍이었다.

 

2003년 랜드마크투신(현ING자산운용)의 ‘1억 만들기 펀드’와 미래에셋의 ‘3억 만들기 펀드’ 등이 출시됐다. 당시 투자환경은 저금리와 맞물려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이었다.

 

투자자들은 금리가 낮은 은행적금보다 매달 돈을 부으면서 고수익을 챙길 수 있는 ‘적립식 펀드’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펀드에 돈이 몰리면서 주가가 상승하자 다시 펀드가입자가 늘어났다.

 

2001년 국내 최초의 개방형 뮤추얼펀드인 인디펜던스펀드와 환매수수료가 없는 선취형 뮤추얼펀드인 디스커버리펀드를 시장에 잇달아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은 미래에셋은 적립식 펀드 열풍을 타고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들어섰다.

 

미래에셋이 펀드시장의 강자로 떠오르는 지렛대 역할을 한 상품이기도 하다. 은행이 일반개인을 대상으로 한 판매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며 시중자금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부동산에 몰리는 자금을 분산시키기 위해 정부도 힘을 보탰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깨뜨리기 위한 소방수로 적립식 펀드를 들기도 했다. 2005년 여름 노 전 대통령은 8000만원을 적립식 펀드 8개에 1000만원씩 나눠 투자했다. 그 다음 달 노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과 주식 중 누가 이기나 봅시다. 나는 주식에 겁니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05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디펜던스와 디스커버리펀드는 한국의 적립식 펀드 역사를 설명해주는 상품이다. 미래에셋의 적립식 펀드 상품 출시 이후로 한국의 기본적인 재테크 상품은 은행의 적금과 펀드로 양분됐다고도 말할 수 있다. 1가구 1적립식 펀드라는 말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2004년 말 1조원 수준이었던 적립식 펀드는 2008년 말 76조원에 달하는 규모로 급격히 성장하게 된다.

 

또한 2005년까지 전무하던 1조원 이상의 초대형 주식형 펀드가 2006년 들어 나타나기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주식형 펀드의 성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펀드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비록 2007년 10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가 표면화하고,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로 수익률 부진에 시달렸지만 미래에셋은 해외자산배분펀드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하며 꾸준히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 경험과 자산을 바탕으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은 운용업계 거목으로 성장했다. 또한 당시 주역이었던 미래에셋 출신인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사장과 김태우 KTB자산운용 대표 등은 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리를 옮겼다.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레전드도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1998년 32세의 나이에 IMM투자자문을 설립한 ‘뚝심의 사나이’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회장이다. 일찌감치 우수한 트랙레코드를 바탕으로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기관을 공략한 황 회장은 일찌감치 해외진출에도 열을 올렸다. 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의 현지화 전략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성과를 쌓았다. 2008년 자산운용사로 전환하면서는 ‘트러스톤’이란 새 사명으로 국내 대표 독립계열 자산운용사로 업계를 대표하고 있다.

 

 

 

▶자문형 랩 돌풍 이끈 스타매니저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스타펀드매니저들의 자문사 창업 러시가 이어진 시기다. 1999년 최권욱 전 대표에 의해 설립된 코스모투자자문과 2000년 박경민 대표의 한가람투자자문이 문을 열었다. 주로 이들은 개인자금보다 연금이나 기관의 자금을 운용하며 자산규모를 빠르게 불렸다. 조직 생활에 지친 펀드매니저들에게 자유롭게 투자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로 인식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또 한 번의 자문사 설립 붐이 일어난다. 각각 2003년과 2005년 문을 연 브레인투자자문과 케이원투자자문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시기에 인피니티투자자문, 가치투자자문, 오크우드투자자문 등도 같은 시기에 문을 열었다.

 

이러한 자문사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문형 랩의 인기에 힘입어 주목을 받았다. 2011년 한때 9조원 규모까지 불어난 자문형랩시장은 차화정, 7공주 등이란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권남학, 박건영과 서재형, 박관종 등 스타펀드매니저들의 명성을 따라 금융투자업계의 자금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이 중 ‘은둔형 고수’로 유명한 권남학 케이원투자자문 대표는 삼성증권과 함께 자문형랩 시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장본인으로 꼽힌다. 오랜 시간 투자자문업계를 이끌고 있는 형님으로 통하는 권 대표는 시장 부침에 따라 휘청이는 자문사가 가운데서 지금까지 제1금융권이 손꼽는 베스트 투자자문사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미래에셋의 ‘인디펜던스 펀드’를 운용하며 스타펀드매니저 반열에 오른 박건영 브레인자산운용 대표가 2009년 설립한 당시 브레인투자자문은 자문형 랩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브레인자산운용은 현재는 헤지펀드를 앞세워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운용사로 탈바꿈했지만 당시 자문형 랩 시장에 박 대표가 미친 영향력은 상당했다. 김택동 레이크투자자문 대표 역시 이 시기 브레인의 박건영 대표와 케이원 권남학 대표와 함께 경북대 3인방이라 불리며 자문형 랩 시장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외 서재형 전 대신자산운용 대표가 이끌던 창의투자자문도 자문형 랩시장에 한 축을 담당했다. 미래에셋의 스타 펀드매니저이자 리서치본부장을 지낸 그가 김영익 전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과 함께 준비한 창의투자자문은 시작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차화정 주가가 폭락하면서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단기간에 -30% 안팎의 수익률을 기록한 자문형 랩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자문형 랩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시들해졌다.

 

 

 

▶위축된 ‘공파’

 

공모펀드의 부활을 꾀하다

 

국내 공모펀드 시장은 2000년대 중반 일반 개인의 새로운 저축 수단으로 각광받으며 급성장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성장세가 급격히 꺾이기 시작했다. 패시브 펀드의 성장으로 투자자금이 옮겨가고 연금 등 강제 저축이 증가하면서 개인의 잠재적 투자자금이 기관으로 이전됐다. 몇 차례 수익률 침체기를 거치며 펀드 투자에 대한 개인들의 실망스러운 경험도 악재로 작용했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각 운용사들이 MP(모델포트폴리오) 체제를 강화하면서 개별 매니저들의 영향력이 약해진 측면이 있다”며 “운용 보수가 작아지고 자유로운 운용도 힘들어지면서 사모펀드시장으로 이탈하는 매니저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펀드에도 스타펀드매니저로 발돋움한 인물도 있다. 비록 최근 헤지펀드업계로 전향했지만 박현준 씨앗자산운용 대표는 2006년 말부터 10년 넘게 한국투자네비게이터 펀드를 우수한 성과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운용하며 업계 대표적인 스타펀드매니저로 군림했다. 2014년 라자드자산운용에서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로 옮긴 ‘주식투자전도자’ 존 리 역시 이 시기 대표적인 스타펀드매니저로 통한다.

 

최근 공모펀드시장을 주름잡는 70년대생이 본부장이나 임원급으로 자리하고 있는 상황에 80년대생 ‘용과장’들의 도전도 눈에 띈다. 84년생인 김종언 대신자산운용 리서치운용본부 팀장, 김태훈 한국투자신탁운용 매니저, 85년생인 김재현 미래에셋자산운용 매니저 등은 우수한 수익률을 통해 업계에서 주목받는 라이징스타로 꼽힌다. 이외에 오랜 스타애널리스트 경험을 바탕으로 2015년부터 대신자산운용 리서치운용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미연 씨도 늦깎이 스타매니저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금은 헤지펀드 전성시대

 

바야흐로 ‘사파’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공모펀드가 주춤한 사이 사모펀드인 한국형 헤지펀드가 등장하며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공모펀드 전성시대에 이름을 날렸던 펀드매니저들의나이가 이제 50대를 넘어 몇 해 전부터 시장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3040 젊은 사모 전문 펀드매니저들이 채워 나가는 모양새다.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시황에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한다. 2011년 12월 탄생한 한국형 헤지펀드는 지난해 6조원이 유입되며 2월 현재 14조원대로 성장했다.

 

도입 초기만 해도 한국형 헤지펀드는 기관투자자와 자산가의 전유물이었다. 개인투자자는 헤지펀드의 초기 수익이 부진하자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2015년 롱숏전략(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사고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은 공매도)을 바탕으로 운용하는 2세대 한국형 헤지펀드가 등장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박스피가 이어지는 장세에도 10% 중후반대의 준수한 성과를 기록하면서 기관투자자는 물론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환영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1세대 헤지펀드 매니저로 꼽히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도입초기부터 활약한 허윤호 삼성헤지자산운용 대표 박기웅 미래에셋자산운용 헤지펀드본부장, 김태준 브레인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 상무 등이 꼽힌다.

 

2세대 헤지펀드 시장이 들어서자 숨겨진 재야의 고수들이 많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은둔형 고수’ 장덕수 회장이 이끄는 디에스자산운용은 꾸준히 상위권에 오르며 헤지펀드 업계의 강자로 자리하고 있다. 최광욱 회장의 안다자산운용과 이재현 대표의 J&J자산운용 역시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호’에서 보기 힘들었던 신규 강자들의 등장이 눈에 띈다. 가장 핫한 곳은 바로 ‘빅2’ 삼성헤지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아성을 비집고 들어서 명가로 자리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다. 꾸준한 수익률을 바탕으로 1조원 넘는 자금을 끌어모은 황성환 대표는 여의도 신데렐라로 등극했다. 이 회사는 2016년 4월 투자자문사에서 자산운용사로 전환한 신생회사다.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은 사고(롱), 내릴 것 같은 주식은 공매도(쇼트)하는 롱쇼트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

 

리딩투자증권 프랍 트레이딩을 거쳐 2009년 자문사를 세운 이재완 타이거자산운용 대표 역시 2세대 루키로 꼽힌다. 2009년 에셋디자인투자자문을 2016년 헤지펀드 운용사인 타이거자산운용으로 전환한 이후 준수한 수익으로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비교적 ‘정파’의 길을 걸었지만 위의 두 명과 곧잘 비교대상에 오르는 헤지펀드 강자가 라임자산운용이다. 트러스톤과 브레인자산운용 주식운용팀장을 거치며 내공을 쌓은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는 이종필 부사장과 함께 헤지펀드 운용을 책임지고 있다.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헤지펀드 업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 업계에 가세한 박현준 씨앗자산운용 대표와 타임폴리오자산운용 출신의 안형진 씨가 운용을 맡고 있는 빌리언폴드자산운용의 추격으로 헤지펀드 업계는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이 같은 스타매니저의 등장이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단 진입장벽도 낮아졌기 때문. 과거에는 헤지펀드를 운용하려면 국내에서 2년 이상 공모펀드를 운용한 경력이 있어야 했지만, 현재는 금융회사에서 3년 이상 근무하고 협회 펀드 운용 관련 교육을 이수한 사람이면 헤지펀드 운용이 가능하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공모펀드 매니저의 가세와 사모펀드 하우스의 매니저들이 하나둘 독립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보수와 비용 등을 빼면 의미 있는 성과가 공모펀드 매니저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구조로 인해 점점 헤지펀드 매니저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0호 (2018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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