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IMF 아·태국장 "韓최저임금, 엉뚱한 결과만 초래
ㆍ기본적으로 가격 메커니즘에 손을 대는 것은 부작용 초래
ㆍ당장 경기부양 급하다고 재정 아무데나 쓰지말라
2018.08.14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이 한국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 국장은 13일 한국고등교육재단(사무총장 박인국)특별강연에서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확충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는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 국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시행 1년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IMF가 결과를 확인하지 않았고 공식 견해도 없다"면서도 "기본적으로 가격 메커니즘에 손을 대는 것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기업으로서는 생산비용이 늘어난 것이므로 가격을 올리는 것이 당연한데 가격마저 억누르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서 "불평등을 줄이자는 취지의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로 빈곤층에 도움이 되는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IMF 아·태국장은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해 인도 중앙아시아 중동 지역까지 각국 경제를 정밀 분석·진단하는 막중한 자리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 지원을 받은 1997년 저승사자처럼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던 휴버트 나이스 외채협상실무단장의 당시 직책이 IMF 아·태국장이었다.
이 국장은 인천 버스 사례를 들어 "임금이 오르면 버스요금이 올라야 하는데 버스비를 동결시켜 놓으니 사업을 접겠다고 한 것이고 이게 문제가 되니까 정부가 보조금을 준다고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정부 재정 투입으로 이어지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은 애초에 원했던 바도 아니고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사회안전망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노인 의료복지, 노인 빈곤 해결 등이 시급하다고 소개했다. 그 이유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한국의 고령화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한국은 현재 15~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미만인데 이게 수년 후에는 70%로 급증한다"면서 "그때가 되면 노인 복지에 어마어마한 재정이 투입된다.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정부부채 비율이 40% 남짓인데 향후 10년간은 괜찮지만 그 이후에는 고령화 때문에 재정 소요가 늘어나서 2040년 중반에 100%까지 오를 수 있다"며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금 비율이 22%인데 적어도 2027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3%까지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 국장은 이와 관련해 "지금 당장 세금을 걷는다고 하기 싫으니까 자꾸 미루고만 있는데, 정치적으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며 "10년 후에는 법인세·소득세·부자세 등등 아무리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일본이 그러다가 정부부채 비율 250% 나락에 빠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지금 경기 부양을 위해 쓰는 재정을 아무 데나 막 쓰지 말고, 나중에 써야 할 곳에 미리 쓰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게 바로 노인 복지,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또 근래에 부상하고 있는 빈부 격차, 소득 양극화, 청년실업 문제 등은 한국에 특정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테크놀로지'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1970~1980년대 경제성장이 조선·자동차·섬유 등 노동력 중심 경제였다면 지금은 경제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테크놀로지와 인공지능(AI)이 입지를 넓히고 있는 시대"라며 경제구조 변화를 촉구했다.
이 국장은 특히 "우버 같은 것의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제안했다. 그는 "택시기사, 전업 운전기사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버 도입을 미루고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10년, 15년 뒤에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면 어차피 직업으로서 '드라이버'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미리 적응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고, 젊은 사람들이 이와 관련해서 창업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또 "심각한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는 명제에 IMF가 적극 공감하고 있다"면서 "다만 그 해법으로 단기적·거시적 정책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고 최종현 회장이 설립한 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하버드대로 유학을 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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