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1
檢에도 담합수사권
ㆍ가겨콩급제한 입찰담합
ㆍ중대담합 검 먼저수사
ㆍ건설 정유 주류 타격 우려
◆ 공정위 전속고발제 폐지 ◆
공정거래위원회 출범 38년 만에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서 담합 적발을 놓고 공정위와 검찰이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될 전망이다. 특히 수사 우선권을 가진 검찰이 기업들에 대한 수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경우 기업 활동의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서명한 합의문에는 경성담합(가격담합, 공급제한, 시장분할, 입찰담합)에 대한 전속고발제 폐지와 함께 수사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문제도 담겼다. 담합에 대한 자진신고가 들어오면 검찰은 피신고기업은 물론 신고기업까지 압수수색 등의 강제조사를 벌일 수 있다. 대표이사가 소환되는 일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가 검찰 수사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져 기업들이 위축되지 않을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 대기업 계열사 관계자는 "강제조사권이 없는 공정위와 달리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면 업무가 사실상 마비상태에 들어가고 평판 하락도 불가피하다"며 "행정소송 등으로 되돌릴 수 있는 행정처분과 달리 아직 한국의 형사 규율은 비가역적 측면이 많아 눈에 보이지 않는 제약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업계에서는 담합 사건이 비교적 자주 발생하는 건설업계나 레미콘업계, 혹은 정유·주류업계 등이 직접적인 타격을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때문에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검찰이 일단 들여다볼 수 있어 업체들 간의 고발이 남발될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리니언시(담합행위의 자진신고 시 경감제도)가 무력화돼 담합이 더욱 음성화될 것이란 걱정도 나온다.
양 기관은 리니언시 운영은 기존처럼 공정위가 갖는 대신 형사면책 판단은 검찰이 하기로 했다. 자진신고 신청이 접수되면 공정위가 일정기간 자료를 보정한 뒤 자진신고 면책자에 대한 의견을 검찰에 전달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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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검찰은 1순위 자진신고자는 형사처벌을 면제하고, 2순위 자진신고자는 형사처벌을 임의적으로 감경해주기로 했다. 여기에는 '검찰의 수사 및 재판에 협조했을 것'이라는 단서도 있다. 신고 기업 입장에서는 형벌 감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셈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기업들의 검찰 수사에 대한 공포감이라는 것이 재계의 의견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본적으로 시장의 크기가 작아 대부분의 시장에서 참여기업이 적은 이른바 과점시장이 형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담합 혐의가 적용됐을 때 완벽하게 자유로운 기업은 거의 없다는 것이 재계가 갖는 우려의 시작점이다. 요건이 애매해 검찰이 기업을 수사할 때 전가의 보도로 쓰는 배임죄처럼 담합 역시 기업을 옥죄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을 수사하다 혐의가 잘 입증되지 않으면 담합 문제를 걸고 넘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검찰의 경우 복잡한 담합 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공정위에 비해 부족한데 이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재계에선 의구심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타이어를 만드는 A사와 B사가 있고 A사는 승용차 타이어, B사는 버스·트럭 등 상용차 타이어에서 각각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승용차 타이어의 경우 지배력이 강한 A사가 정한 가격을 B사가 따라오고 반대로 B사가 정한 상용차 타이어 가격을 A사가 따라왔다면 겉보기에는 두 회사가 타이어 시장에서 담합을 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도기업의 가격에 맞춘 전략을 썼을 뿐인데 담합이란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담합은 당시 시장 상황, 시장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지역적 특성, 경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하는데 검찰이 과연 이런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향후 법 개정에 따라 공정위와 검찰 양쪽의 조사를 모두 받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어 기업들의 골칫거리가 될 전망이다. 담합 혐의에 대해 단순히 전속고발권만 폐지된다면 실질적으로 양 기관이 모두 조사권한을 갖게 되는 셈이어서 이중 조사로 기업들의 고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쪽은 무혐의로, 다른 한쪽은 제재로 결론이 난다면 공정성 시비도 피할 수 없게 된다.
■ <용어 설명>
▷ 리니언시 : 담합 행위에 가담한 기업·직원이 먼저 자진해서 신고할 경우 과징금 등 행정처분과 형사처벌을 면해주는 제도다.
[우제윤 기자 / 석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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