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오피니언
[양상훈 칼럼]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했지요?'
입력 2018.08.23 03:17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했지?' 한 분이 보여준 인터넷 댓글이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한 것이 얼마 전인데 벌써 '하고 싶은 거 다 했지요?'라고 걱정스럽게 묻는다. 이제 좀 그만했으면 하는 뜻도 담겼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보면 세상사를 참 쉽게 여기는 것 같다. 정의롭고, 쉽고, 딱 떨어지는 답이 있는데 나쁜 정권들이 그 정답을 막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자신들처럼 좋은 편이 정권을 잡았으니 이제 정의롭고 쉽고 딱 떨어지는 해답으로 문제가 해결될 터다. 만날 이기는 영화 속 주인공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제일 먼저 한 것이 '비정규직 제로'다. 비정규직은 기업이 근로자를 착취하는 제도이니 주인공 대통령이 없애라고 지시하면 그날로 끝나는 문제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비정규직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 한국처럼 해고가 거의 불가능하고 노조가 한 치도 제 이익을 양보하지 않는 구조가 그대로면 비정규직은 없어지지 않는다. 문 대통령에게 제일 먼저 '비정규직 제로'를 하겠다고 보고했던 공기업은 아직까지 내부 갈등이 끝나지 않았다. 기존 정규직 사원들이 '불공정하다'고 불만을 터뜨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의 모든 공기업과 학교에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세상 일은 영화처럼 단순하지 않다.
탈원전도 쉬운 일로 보았을 것이다. 이 엄청난 결정을 하면서 전문적인 검토를 한 흔적도 없다. 비전문가들이 공약을 만들었다. 후쿠시마 사태가 났으니 탈원전한다면 다 좋아할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원전 대신 태양광, 풍력같이 자연 에너지를 쓰면 금상첨화라고 보았을 것이다. 이게 영화 같은 얘기라는 것은 이제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다.
한국 제조업이 현재 위치에 오기까지 싸고 질 좋은 전기와 물의 덕을 크게 보았다. 그런데 전기만이 아니라 물도 너무 쉽게 보고 있다. 집권하자마자 4대 강 보부터 연다고 했다. 보 철거 얘기까지 나왔다. 자연 하천이 복원되고 수질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4대 강 사업 전에 한국의 거의 모든 강이 개천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는 현실을 보지 않으려 한다. 4대 강 사업으로 강이 강처럼 되고 귀중한 수량이 8억t에서 16억t으로 늘었다. 부근 저수지까지 포함하면 12억t 더 늘었다.
1년에 비가 한두 달 오고 마는 나라에서 소중하고 막대한 국부다. 그런데 보를 열어버리니 강바닥이 다시 드러나 강이 흉물화되고 있다. 수질은 더 나빠졌다. 4대 강 보는 가뭄 때 최후 보루와 같고, 홍수 때는 안전판이 된다. 이 중요한 물관리 권한을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옮겼다. 물 문제를 얼마나 쉽게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파트와의 전쟁도 쉽게 보았을 것이다. 규제하고 세금으로 잡으면 되는데 나쁜 정권들이 하지 않았다고 봤을 것이다. 그 결과 서울은 집값이 더 오르고 지방은 더 얼어붙었다. 시장(市場)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온다. 보유세 인상으로 아파트와의 전쟁에서 잠시 이기면 건설 경기가 죽어 고용과 성장률을 해친다. 수능시험 절대평가 공약도 입시 문제를 쉽게 본 것이다. 학습 부담이 줄어 학생·학부모가 다 환영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뚜껑을 여니 여론이 반발했고 공약은 사실상 포기했다. 가상 화폐 문제를 쉽게 보고 없앤다고 하다가 낭패를 보았고, 근로시간 단축도 부작용이 쌓여간다.
일자리 만든다고 50몇조원 국민 세금을 썼는데 7월 일자리는 5000개 늘었다. 최저임금과 고용 문제를 너무나 쉽게 보고 덤벼들었다. 앞으로 3년간 30조가 드는 문재인 케어, 120조 주거 복지, 50조 도시 재생 등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 영화 속 주인공의 해피엔딩은 현실에선 없다.
잘해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 어떤 일인지 모르거나 오해를 하고 있으면 잘될 수 없다. 세상사엔 100대0은 없다. 많은 문제가 51대49이고, 잘해야 60대40이다. 그 딜레마 속에서 선택을 고민하는 것이 정부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는 1970년대 운동권 대통령과 1980년대 운동권 비서진으로 구성돼 있다. '운동권'은 세상을 선(善) 대 악(惡), 100대0 이분법으로 봐왔다.
과거 문 대통령은 "친일파가 반공, 산업화 세력, 보수 정당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런 눈에 이 세상은 선과 악의 대결일 수밖에 없다. '정의 경제'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현실에선 친일 후손을 맹비난하던 민주당 정치인이 친일 후손으로 밝혀졌다. 그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세상을 쉽게 본 정책은 현실에선 통하지 않는다. '운동권 경제' 영화가 언해피(unhappy) 엔딩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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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문재인 경제의 잔인한 역설
중앙일보 2018.08.23
‘우리도 국민이다’ 절규는
경제 혼선을 시각적 압축
“세금으로 일자리 대책은 마약”
이념 색채의 소득주도 정책에
민생 경제는 역설로 반응
문 대통령, 변화의 결단 내려야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우리도 국민이다’-. 그 말은 최저임금 인상 반대의 구호다.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그런 팻말을 들고 외친다. 그 장면은 압축적이다. 문재인 경제의 혼선을 시각적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민심의 작은 궐기다. 그들의 시위 현장은 절규다. “정부가 대기업의 귀족노조 눈치만 본다. 우리 같은 영세업자도 챙겨야 할 국민이다.”
최저임금 문제는 다루기 힘들다. 정부의 추진 방식은 급진, 과격이다. 청와대는 이념적 소명감으로 질주했다. 그 속도전은 작은 가게에겐 충격이다. 편의점·음식점 주인들은 고통스럽다. 궐기는 이어진다. 외식 자영업자들의 외침은 거칠면서 지혜롭다(20일). “외식 자영업 죽이는 최저임금 인상 철회하고,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라.” 하지만 정부는 거부한다. 무차별과 획일적인 밀어붙이기다.
‘54조원’-. 현 정부 들어 투입된 일자리 예산 규모다. 그 엄청난 돈은 국민 세금이다. 하지만 고용 실적은 초라하다. 7월 취업자 증가 수가 5000명이다(통계청). 2017년 월평균 취업자 증가 숫자는 31만 명. 그 격차는 재난 수준이다. 그런 숫자들은 민심을 자극한다. 다수 국민은 놀라면서 따진다. “어마어마한 돈이 허투루 쓰였다. 내가 낸 세금은 어디로 사라졌나.” 수치는 상징 표현이다. 그것은 영향력을 생산한다. 문재인 경제의 허술함을 폭로한다.
관성의 법칙이 생겼다. 내년에도 일자리 대책에 22조원의 세금을 쏟아붓는다. 정부 일각에도 그런 국정 자세를 비판한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지적은 직설이다. “재정 투입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미봉책이다. 마약 같은 거다.” 그는 “국민이 내고 거둔 세금을 함부로 뿌리면 우리 사회에 열심히 일하려는 자활의 정신이 사라진다”고 했다.
최저임금제와 세금 투입, 주 52시간 근무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수단이다. 수혜 대상자는 사회적 약자, 서민, 취약계층으로 설정됐다. 하지만 그 이론은 현장에서 거부당했다. 서민 위주의 정책이 서민을 어렵게 한다. 민생경제는 이념의 색채에 저항한다. 그런 정책일수록 모순과 역설로 반응한다.
정권 주도 세력은 그 이론을 고수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단련해왔다. 그 이너서클은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들로 짜여 있다. 장하성 실장은 30여 년 대학교수다. 하지만 그의 평판은 참여연대에서 확보했다. 그들은 경제의 틀을 뜯어고치고 있다. 정책 실험 욕망은 대담하다. 그것으로 이너서클의 장악력을 강화한다. 소득주도 정책은 반기업 정서를 확장한다. 그들은 기업하고 장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한다. 돈 버는 투쟁은 산업화의 개척정신이다. 그 투쟁은 민주화 투쟁에 못지않게 힘들다.
그런 분위기는 제조업을 위축시킨다. 규제 혁파 흐름에 제동을 건다. 제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줄어든다. 40대의 일터 14만 개가 줄었다. 1년 사이 통계다(7월 고용동향). 그것은 제조업 불황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 비극이다. 40대 가장은 경제를 떠받치는 허리다. 그 세대는 대체로 촛불 민심 편이었다. 그들의 표심이 선거 판세를 흔들었다. 그런 40대가 소득주도 정책의 최대 피해 세대가 됐다. 그들의 좌절과 울분은 잔인한 역설이다. 권력 핵심부의 이념적 밑천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들은 그 논리에 집착한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그런 현상고착을 ‘촛불 부채의식’으로 분석한다. “촛불세력·시민단체·노조가 현 정권 창출의 대주주 의식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이 그 세력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벗어나야 실사구시의 혁신성장으로 갈 수 있다.” 비슷한 성향으로 짜인 집단은 배타적이다. 편향과 극단으로 달려간다. 김광두 부의장은 “정책 운용의 개방성”을 역설한다. 그는 “자기 생각만 옳다는 과신은 정책 오류를 낳는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보완하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 핵심 세력은 공무원을 불신한다. 정책 수정의 거부는 그런 의식에서 비롯된다. 청와대의 비대화는 그런 경멸을 반영한다. 청와대의 경제 책임자는 정책실장·경제보좌관·일자리수석·경제수석·사회수석이다. 그런 팽창과 포진은 집중과 간결의 원칙에서 벗어난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경제 담당 수석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정책 핵심이 일자리인데 따로 나누는 것은 잘못됐다”고 했다.
일자리 개선은 난제다. 장하성 실장은 “연말까지 믿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1일 그것을 ‘희망표현’이라고 했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궤도 수정은 불가피하다. 연말까지 가면 실기한다. 그때엔 일자리 대책은 꼬이고 뒤틀려 있을 것이다. 정책 성공의 비결은 타이밍이다. 문 대통령이 결단할 시점이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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