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호 2018년 09월 03일
이마트 온라인 서비스 ‘이마트몰’의 김포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모(38) 배송기사는 올해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40도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폭염 때문에 온라인으로 장을 보는 고객들이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김씨 역시 땀이 마를 새 없이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평소 김씨가 처리해왔던 배달건수는 하루 35건 안팎. 그러나 폭염주의보가 본격적으로 발령된 7월 말부터 그의 배달건수는 40건 이상으로 뛰었다. 가공식품이나 생활용품에 비해 신선식품, 냉장·냉동식품 주문량이 크게 늘어난 점 또한 김씨가 땀을 배로 흘리게 만든 요인이다. 신선도 사수에 만전을 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가 흘린 땀만큼 이마트몰 역시 성장했다. 이마트몰의 2분기 매출은 296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1% 성장했다.
이마트몰은 날씨가 더워질수록 온라인 쇼핑이 증가할 것을 예상, 지난 5월부터 새벽배송을 시작한 데 이어 반찬을 배달해주는 ‘쓱찬 서비스’ 등을 선보이며 폭염이라는 재난을 기회로 만들었다.
그러나 폭염에 처참하게 패한 업계도 있다. 농업이 대표적이다. 배추의 경우 비가 안 온 데다 고온이 지속되면서 썩거나 녹아내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현재 배추 도매가는 예년보다 70% 가까이 오른 5571원을 기록하면서 김장철을 앞두고 밥상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정학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환경·자원연구센터장은 “과거 폭염이 이렇게 심했던 적이 없어 이에 대비하는 농업 관련 연구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몰을 웃게 하고 농민들을 울게 만들었던 올해 여름이 끝을 보이고 있다. 온갖 기록을 갈아치운 역사적인 여름이었다. 평균 기온이 33도 이상일 때를 ‘폭염’이라고 하는데, 올해의 전국 평균 폭염 일수는 8월 26일 기준 31.3일로 전국 평균값 산출이 가능한 1973년 이후 1위를 기록했다. 한 달에 달하는 기간 동안 전국이 끓어올랐다. 밤 사이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일 때를 지칭하는 열대야 일수도 지금까지 17.1일로 나타나 1월 1일~8월 26일 기간 기준으로 역대 1위다.
문제는 이 같은 폭염이 이상기후가 아닌 ‘일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연구과장은 ‘CMIP5 모델에 나타난 동아시아 여름몬순의 모의 성능평가와 미래변화’ 논문을 통해 “2030년대가 되면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수준과는 다른 차원의 여름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존 6~9월에 걸쳐 나타났던 여름이 5~9월로 길어지고, 온도 역시 걷잡을 수 없이 급등해 지금의 폭염 기준인 33도는 보통의 더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올해 여름이 끝나가는 9월, ‘이코노미조선’이 다시 한번 ‘폭염’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마트몰과 배추밭 농민처럼 폭염이 일상이 되는 미래는 누군가에겐 기회가, 누군가에겐 위기가 될 수 있다.
편리하면서도 친환경적인 생리컵. 폭염이 닥치면서 패드형 생리대에서 생리컵으로 바꾸는 여성들이 늘고있다. 편리하면서도 친환경적인 생리컵. 폭염이 닥치면서 패드형 생리대에서 생리컵으로 바꾸는 여성들이 늘고있다.
8월말에도 여름옷 생산, 패션업계 혼란
폭염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각성시킨다. 이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사용했던 물건들도, 체감온도가 올라가면 불쾌지수도 함께 올라 예민함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여성 생리대의 대체용품 ‘생리컵’은 이러한 폭염의 특성에 힘입어 국내에서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한국 여성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패드형 생리대의 경우 여름엔 땀이 많이 차는 데다 피부와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많은 여성들이 불편함을 호소해 왔다. 그러나 생리컵은 종(鐘) 모양 형태로 여성의 질 안에 넣어 혈을 받아내는 것으로, 패드형 생리대에 비해 편리하고 깔끔하게 이용할 수 있다. 생리컵업체 룬랩의 황룡 대표는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날씨가 더워지면서 패드형 생리대의 불편함 때문에 생리컵에 입문하는 분들이 전보다 확실히 늘었다”고 전했다.
폭염이 각종 폐기물과 이산화탄소 등으로 인해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인 지구온난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생리컵은 패드형 생리대보다 훨씬 유리하다. 패드형 생리대는 플라스틱 소재의 얇은 막들이 겹쳐진 방수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분해되려면 100년 이상 걸린다. 게다가 일회용품인 탓에 대부분 여성이 한 달에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100개 이상씩 사용한다. 반면 생리컵은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훨씬 친환경적이다. 황 대표는 “해외의 경우 환경보호 측면에서 생리컵을 많이 사용한다”며 “한국은 아직 개인적 불편함 때문에 생리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 폭염 등이 더욱 심각해지면 환경보호 차원에서 생리컵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패션업계는 이번 폭염으로 타임라인이 확 바뀌었다. 여름이 예년보다 일찍 시작한 데다, 폭염기간이 길게 지속되면서 여름 옷의 수요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류제조업체 맥스의 박요한 대표는 “원래대로라면 5월부터 8월 초까지만 여름옷을 만들고, 그 이후부터는 바로 가을옷 제작에 돌입한다”며 “그러나 이번 여름의 경우 너무 뜨거운 데다 비까지 많이 오는 바람에 아직도 여름옷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야 디자이너들이 주문하는 대로 만들면 되지만, 디자이너들은 지금도 여름옷을 리오더(재주문)해야 할지, 가을옷을 준비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이번처럼 더운 여름을 겪어본 적이 없다 보니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패션업계 중에서 미래 폭염 시대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감을 잡은 분야도 있다. 바로 속옷업계다. 이곳에서는 소재의 발전이 향후 성패를 가를 예정이다. 올해처럼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의 경우 기능성 소재로 된 속옷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유니클로에서 판매하는 기능성 이너웨어 ‘에어리즘’의 경우 올해 온라인몰에서 품절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유니클로 에어리즘은 소재 자체가 얇아 와이셔츠 안에 입어도 티나지 않고, 땀 흡수 능력도 뛰어나 남성 직장인들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이외에도 남성 기능성 속옷브랜드 ‘라쉬반’의 지난 6~7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가까이 상승했다.
맥주업계는 올해 폭염에서 살아남는 데는 실패했지만,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다. 여름은 맥주업계의 최대 성수기지만, 올해처럼 지나치게 더울 때는 오히려 맥주업계에 ‘악재’다. 맥주업계는 낮 최고기온이 30도 정도일 경우엔 맥주 매출이 늘어나지만, 그 이상 기온이 올라가면 술 마시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매출이 하락한다고 보고있다. 오비맥주 측이 “폭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매출이 크게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오비맥주의 글로벌 본사인 AB인베브는 폭염이 일상화되는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단순히 소비가 줄어드는 정도지만, 앞으로 기후변화가 본격화되면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주원료인 물과 보리 등의 수급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AB인베브는 단계적으로 2025년까지 모든 생산 제품에 쓰이는 용기와 포장재 재활용률을 100%까지 높이고,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환경분야의 유망기업을 발굴·지원하는 ‘100+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도입, 전 세계의 과학자, 기술자, 기업가를 참여시켜 2025년까지 100개 이상의 환경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싱가포르의 거리. 건물 1층에 그늘을 만들어 행인들이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 싱가포르의 거리. 건물 1층에 그늘을 만들어 행인들이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
냉방 지원 등 ‘폭염 복지’개념 등장
폭염은 산업 지형도뿐만 아니라 국민 일상도 새롭게 바꿀 전망이다. 당장 올해부터 나타난 변화를 살펴보면, 어린 아이와 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들이 두드러졌다. 아이들의 경우 학교 개학 시기가 미뤄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8월 14일 서울 시내 전체 초·중·고등학교 특수학교 등 총 1365개교에 공문을 보내 개학 연기나 단축수업, 휴업 등을 통해 학사일정을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폭염이 극심해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 건강상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폭염으로 개학 연기를 권고한 것은 서울시에서는 첫 사례”라고 말했다.
‘폭염 복지’라는 개념도 올해 등장했다. ‘지옥고’라 불리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물론 쪽방촌 등 열악한 주거시설에 냉방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올해 한국은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해주는 선에 그쳤지만, 앞으로 기후변화가 더욱 극심해지면 보다 적극적인 복지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본의 경우 생활보호급여를 받고 있는 가구 중 집에 에어컨이 없고 가구원 중 고령자나 장애인, 어린이 등이 있는 경우 에어컨 설치비용을 최대 5만엔(약 50만원)씩 지원하는 중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전기 걱정 말고 열사병 걸리지 않는 데 만전을 기하라”며 에어컨 사용을 독려하는 팸플릿을 배포하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미래 도시 모습도 바뀔 수 있다. 1년 내내 덥고 습한 열대해양성 기후를 가진 싱가포르의 경우 건물을 지을 때 1층 전면은 안쪽으로 살짝 집어넣고, 2층은 원래대로 짓는다. 이렇게 되면 2층 부분이 1층의 지붕 역할을 해 길을 걸어다니는 시민들이 그늘로 걸어다닐 수 있다. 싱가포르의 지하보도가 잘 연결돼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외에도 미국 캘리포니아 등은 아스팔트를 검은색이 아닌 밝은 색으로 바꿔 칠하고 있다. 검은색보다 밝은색이 햇빛을 덜 흡수하기 때문에 보다 덜 뜨거워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오성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아직 정부 차원의 도시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기후변화가 점차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환경을 고려한 도시계획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며 “도로포장부터 건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도시설계 전반적 부분이 기후변화에 맞춰 조화롭게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봄·가을 사라지는 한반도
‘40도 더위’ 아열대 한국이 온다
이윤정 기자
역대 가장 더웠던 2018년 여름. 역대 가장 더웠던 2018년 여름.
올해 폭염의 주요 원인은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평소보다 강하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습하고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기를 머금고 있다 보니 무게가 무겁고, 이 때문에 대기의 중·하층부에 주로 형성된다. 문제는 티베트 고기압이 평소보다 일찍 찾아왔다는 것이다. 티베트 고기압은 사막지대에서 형성돼 뜨겁고 건조하다. 게다가 북태평양 고기압보다는 가볍다 보니 대기의 하층부부터 상층부까지 두껍게 형성된다. 한국 하늘에 뜨겁고 두꺼운 이불 두 개를 겹쳐 덮어놓은 것과 같다. 게다가 장마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계속되면서 햇빛이 뜨겁게 내리쬔 점도 올여름 온도를 끌어올린 원인이다.
다만 이 같은 설명은 올해 폭염을 ‘현상적’으로 분석한 것이고, 폭염의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지구온난화다. 민승기 포항공과대학 환경공학부 교수는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는 상황과 더위가 겹치다 보니 기존 최고기록을 깨는 극심한 폭염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가 심화됐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극심한 폭염이 찾아오는 확률은 10배의 차이를 보인다. 그는 “2013년 여름도 굉장히 더웠는데(전국 평균 폭염일수 역대 4위), 이 2013년만큼의 더위가 찾아올 확률을 계산해보니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을 때는 200년에 한번 찾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반면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가 증가하면 20년에 한번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뜨거운 여름을 맞게 될까. 기상청은 온실가스 배출 정도에 따라 시나리오를 나눠 한국의 미래 기후변화 정도를 예측했다. 그 결과 온실가스가 줄어들지 않고 현재 추세대로 배출되는 최악의 시나리오(RCP 8.5)에서 한국의 폭염일수는 21세기 후반(2071~2100년) 평균 40.4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폭염일수는 평년(1981~2010년까지 평균) 10.1일에 불과하다. 80여년만 지나도 폭염기간이 지금보다 4배 길어지는 것이다. 변영화 과장은 “과거 100여년간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올해는 빈번하게 나타났다”며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최고기온의 ‘최고치’가 더욱 자주 경신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의 길이 또한 늘어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973~1993년 20년간 여름 지속일수는 길어야 107일(1983년)에 불과했다. 66일(1976년) 만에 끝나버린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2000년(99일)을 끝으로 두 자릿수 여름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서명석 한국기후학회장은 “우리는 이미 여름이 길어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봄꽃들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는데, 온도 변화에 민감한 식생들의 활동시기가 봄에는 빨라지고 가을에 늦어지는 점은 한국의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한국에서 봄과 가을이 사라질 수도 있다. 아직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이지만, 여름과 겨울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아열대기후로 바뀌는 것이다. 안중배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이미 남부지방 일부는 아열대기후”라며 “온실가스 배출 정도에 따라 여러 시나리오가 있지만, 어떤 시나리오든 2050~2060년 정도가 되면 고산지대를 제외한 한국 대부분이 아열대기후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2100년대에 들어서면 북한 포함 한반도 전체가 아열대기후를 보일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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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열·차열 자재 수요 급증…‘수면 산업’도 각광
한 여성이 태블릿 PC와 연결된 수면안대를 통해 수면 패턴을 분석하는 ‘슬립테크’ 제품을 이용해 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한 여성이 태블릿 PC와 연결된 수면안대를 통해 수면 패턴을 분석하는 ‘슬립테크’ 제품을 이용해 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그늘이 있으면 어딘가는 빛도 있게 마련이다. 모두를 지치게 한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도 매출이 늘어 표정 관리에 어려움을 겪은 이들도 있다. 폭염의 숨은 수혜 산업을 소개한다. 기상 전문가의 우려대로 폭염이 뉴노멀(New normal·일상화)이 되면 유망한 투자처가 될 가능성이 있는 분야다.
건축 업계에서는 차열 페인트, 차열 유리, 차열 아스팔트 등 여름철 태양열을 차단해주는 차열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열을 차단하는 단열과 달리 열을 흡수하지 않고 반사하는 것이 차열 제품의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차열 페인트는 건물 표면 온도를 30~40도가량 낮추고, 실내온도는 3~5도까지 낮출 수 있다. 차열 페인트 매출의 80~90%는 6~8월에 발생한다.
단열필름, 단열유리 등 단열 건축자재도 수요가 늘었다. 이들 건축자재는 건축물의 불필요한 열손실을 막아주기 때문에 겨울철에 많이 사용되지만, 여름철에는 외부의 뜨거운 열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토털 인테리어 솔루션 기업 한화L&C의 ‘한화솔라필름’은 6~7월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50% 가까이 급증했다. 이 제품은 창유리에 부착하는 시트 형태의 단열필름이다. 태양열 차단으로 냉방비를 절약하는 데 효과적인 제품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2014년 출시 후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내 건축자재는 냉방효율 극대화 흐름이 뚜렷하다. 아파트 현관과 거실 사이의 중문이 옵션 품목에서 기본 품목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냉기 유출과 열기 유입을 막는 기능 덕분이다. 중소형 아파트를 넓게 쓸 수 있는 발코니 확장은 줄어드는 추세다.
도심 열섬현상을 가속하는 아스팔트의 노면 온도를 낮추는 차열도료와 투수(透水)블록도 인기다. 대구시 등이 아스팔트 시범시공 때 적용한 차열도료가 다른 지자체로 확산되고 있다. 업계는 내구성을 높이고 눈부심을 줄인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대형 건물의 냉방 공조 분야에서는 전기 대신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가스냉방’이 주목받고 있다. 여름철 전력 위기와 같은 비상사태에 안정적인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가스냉방기는 에어컨과 달리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가스냉방기를 통해 식힌 물이나 냉매를 순환시켜 건물 온도를 낮추는 원리다. 겨울철에는 난방기로도 활용할 수 있다. 가스냉난방은 전기냉방과 가스난방을 섞어 사용하는 것보다 설치비와 운영비가 13~20% 정도 저렴하다. 가스냉방기 설치 비용은 한국에너지공단이 연 1.50~1.75%의 저리로 전액 융자해준다. 기업이 구매할 땐 한국가스공사에서 장려금을 지원하고, 최대 6%의 소득세 및 법인세 공제 혜택을 준다.
업계 관계자는 “가정용 에어컨 시장과 달리 공조 업계는 단기적인 날씨 변화에 따라 수요가 좌우되진 않지만 여름이 길어지고 폭염 발생이 잦아지기 때문에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 고도화와 고효율∙친환경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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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특수 누린 의외의 제품들
신소재 남성 속옷, 인공눈물 불티나게 팔렸다
265호 2018년 09월 03일sns 공유 목록스크랩 PDF 다운글자 크게
올 여름 통기성을 높인 고기능성 신소재 남성 속옷이 큰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소재의 남성 속옷이 진열돼 있다. 사진 블룸버그 올 여름 통기성을 높인 고기능성 신소재 남성 속옷이 큰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소재의 남성 속옷이 진열돼 있다. 사진 블룸버그
건설사에 다니는 직장인 이용한(35)씨는 지난달 제조 유통 일괄형(SPA) 브랜드 매장에서 고기능성 남성용 속옷 세트를 구입했다. 통기성을 높여 빠르게 건조되는 신소재를 적용해 입었을 때 면 속옷보다 훨씬 시원하다는 점원의 설명에 고민 없이 속옷세트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는 “올여름 공사 현장 감독을 나갈 때마다 속옷까지 축축하게 젖어 너무 힘들었다”며 “옷가게에 오면 여름 속옷부터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혼인 이씨가 속옷을 직접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워킹맘인 김애란(38)씨는 퇴근길 스마트폰 배달 앱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울토마토를 주문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무더위 탓에 수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생필품 외에 신선식품도 온라인몰을 이용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장바구니에는 과일 외에 새우볶음밥·컵비빔밥·김치찌개 등 가정간편식(HMR) 제품도 함께 담겼다. 그는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불 없이 요리하는 제품이 제일 큰 관심사”라고 설명했다.
재해 수준의 폭염으로 유통 업계에서는 여름 성수기가 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무더위에 사람들이 외출 자체를 꺼리다 보니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여름 특수의 상징으로 꼽히는 생맥주 매출도 위축됐다. 무더위로 길거리 소비는 줄었지만, 폭염으로 특수를 누린 의외의 제품과 서비스가 있다.
무더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에어컨이 가동 중인 실내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에어컨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안구건조증과 알레르기성 비염이다. 안구건조증은 눈이 시리고 이물감 등을 느끼는 눈질환이고 알레르기성비염은 콧속 점막이 붓고 가려운 코질환이다.
일반적으로 여름은 관련 증상이 완화되는 계절이다. 체온이 높아져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 실내 습도가 높아 눈과 코의 점막 보습이 잘된다. 하지만 올해는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로 에어컨 등 냉방기구 사용이 늘면서 안구건조증과 비염 환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냉방기구는 실내 습도를 낮춰 눈 점막과 콧속 점막을 건조하게 만든다. 한 달이 넘게 지속된 열대야와 냉방기구 사용에 따른 실내외 온도 차로 면역력도 떨어졌다. 에어컨 필터에 쌓인 먼지는 약한 피부조직에 염증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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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쓰러지는 농가
해발 1200m 고랭지 배추도 녹아…농수산물 가격 급등
265호 2018년 09월 03일
8월 28일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에 누렇게 뜬 채 말라 죽은 배추가 널려 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며 추석 물가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사진 이정은 인턴기자 8월 28일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에 누렇게 뜬 채 말라 죽은 배추가 널려 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며 추석 물가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사진 이정은 인턴기자
파랗게 펼쳐진 배추밭 곳곳에 배추가 누렇게 쓰러져 있었다. 1년 내내 25도를 안 넘어 배추 재배에 최적이라는 해발 1200m, 면적 149만㎡(약 45만평)의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도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8월 28일 배추밭을 살피던 농민 이정만(50)씨는 “연평균 5t 트럭으로 3000포기씩 1600대 정도를 출하하는데, 올해는 200~300대도 못 나간 상황”이라면서 “고온이 지속돼 배추가 썩거나 녹아내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랭지 배추 수확이 한창일 때인데도 밭은 한산했다. 매봉산 북서쪽은 쓸 만한 배추를 아예 찾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무름병 같은 병충해가 생기고 가뭄으로 잎 끄트머리까지 칼슘이 가지 않아 칼슘 결핍 장애가 생긴 탓이었다. 김기덕 농촌진흥청 고령지농업연구센터 박사는 “원래 이곳은 흙이 물을 잘 머금고, 산이 높아 안개가 있어 수분을 보전할 수 있는 환경인데 올해는 (배추가 자라기 어려운 기온인) 28도가 넘는 날이 30일가량 지속돼 피해를 봤다”며 “고랭지 배추밭마저 농사가 안 됐다는 것은 폭염이 그만큼 심각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석 전까지 식탁을 책임지는 고랭지 배추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배춧값이 치솟고 있다. 이날 농수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배추 도매가는 포기당 5571원을 기록해 예년(3880원)보다 70% 가까이 올랐다. 최근 서울 양천구 등촌시장에서 배추 3포기를 사서 겉절이를 담갔다는 조성덕(57)씨는 “알배기 배추만 한 작은 여름 배추 세 포기를 1만8000원에 샀다”며 “차라리 사 먹는 게 나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대파는 1㎏에 2666원에 거래돼 지난해 8월 말과 비교해 66%가 뛰었다. 무와 당근도 44~48%가 올랐다. 추석 제사상에 오르는 가을 제철과일 사과와 배의 수급도 심상치 않다. 폭염으로 열매가 화상을 입는 경우가 늘면서 사과가 4만2924원(10㎏)에 팔리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2만5454원)과 비교하면 59%가 넘게 오른 것이다. 이맘때 3만원대에 팔리던 배도 4만5358원(15㎏)으로 훌쩍 뛰었다.
폭염으로 평년보다 수온이 2~3도가량 오르며 수산물 가격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자연산 생선이 일단 잘 안 잡히고, 양식장은 집단 폐사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8월 셋째 주(8월 13~18일) 수협노량진수산에서 고등어 1㎏이 평균 1500원에 거래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급등했다. 자연산 광어(1㎏)는 2만6800원에 거래돼 40%가 뛰었다. 갈치는 30%, 자연산 참돔(1㎏)은 20%가 각각 올랐다.
추석 제사상에 오르는 사과·배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추석 제사상에 오르는 사과·배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폭염 길었던 해, 농수산물 물가 3.8%p 급등
올해처럼 33도가 넘는 폭염이 장기화한 해의 농수산물 물가는 크게 뛰는 경향을 보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폭염 일수가 길었던 1990년, 1994년, 1996년, 2004년, 2013년의 7~8월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물가상승률 대비 0.6%포인트가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농수산물의 물가상승률은 다른 해 대비 3.8%포인트나 높아 폭염이 식탁 물가에 직격탄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9월 말로 추석이 다가오면서 물가 대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용인시 신봉동에 사는 주부 최금주(55)씨는 “조기 4마리가 1만원, 햇배가 개당 4000~5000원인데, 추석이 임박하면 물가가 더 오르지 않겠느냐”며 “올해 제사는 못 지내겠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8월 30일 배추, 무, 사과, 배, 소고기, 달걀, 오징어, 조기 등 14개 중점 관리 품목을 정해 일일 공급량을 평상시 대비 1.3~1.7배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plus point
‘국민 과일’ 사과, 2030년엔 강원도에서 재배
2030년 무렵 경북 영천 대신 강원도 정선이나 영월·양구가 사과 주산지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연평균 12도대의 서늘한 기후를 찾아 사과 재배 지역이 강원도 산간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 4월 공개한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경북 영천의 사과 재배 면적은 1970년 1625.4㏊였으나, 2015년 평균 기온이 13.5도로 상승하면서 707.4㏊로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강원 정선의 경우 사과 재배 면적은 3.7㏊에서 141.8㏊로 37배 늘었다. 평균기온이 11.4도로 1.6도 상승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다른 주요 과일의 재배 지역도 북상하는 추세다. 전통적인 복숭아 주산지인 경북 청도의 경우 복숭아 재배 면적이 1970년 198.6㏊에서 2015년 1007.9㏊로 4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충북 충주는 같은 기간 재배 면적이 24배 가까이 늘면서 2015년 1542.7㏊를 기록, 청도보다 복숭아 재배 면적이 넓어졌다. 경북 지역에 집중돼 있던 포도 주산지는 최근 강원 영월, 경기 가평·화성 등 북부 지역으로 확대됐다. 남해안 일대에서 주로 재배됐던 단감 역시 경북 지역으로 생산지가 북상했다. 감귤은 과거 제주도에서만 재배가 가능했으나 2015년에는 전남 고흥, 경남 통영에서도 재배가 가능해졌다. 통계청은 21세기 후반이 되면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 지역이 아열대 기후로 변해 주요 농작물 재배 가능지가 지금보다 더 북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농가에서도 이런 기후 변화를 고려해 과일을 재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학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환경·자원연구센터장은 “최근 강원도에서 사과 재배 농가를 지원하고 있는데 젊은 농가를 중심으로 재배 과일을 전환하는 사례가 있다”면서 “시설 투자부터 재배 기술에 대한 적응까지 초기에는 소득 감소가 불가피하겠지만, 기후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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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에 총력
IT 거물 20여명, 청정에너지 사업에 1조원 투자
265호 2018년 09월 03일
청정에너지 기업에 10억달러를 투자한 억만장자들. 사진 블룸버그 청정에너지 기업에 10억달러를 투자한 억만장자들.
부호(富豪)의 삶은 자산을 쌓은 전반전과 그 돈으로 다른 산업을 키우는 후반전으로 크게 나뉜다. 세계 최고 억만장자들은 지금 어떤 산업을 주목하고 있을까. 2016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설립한 청정에너지 관련 투자회사인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BEV)’를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이 회사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위험이 큰 신기술에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투자를 받는 기업은 에너지 생산과 저장·이동, 효율성 증대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의 마윈 창업자,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 사장,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창업자 등 IT(정보기술) 업계 거물들과 영국의 항공·여행 기업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 등 20여 명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들 억만장자 20명의 자산총액만 1700억달러(약 200조원)에 달한다.
이 벤처 회사의 대표를 맡은 빌 게이츠는 “BEV의 목표는 믿을 만하고 비용이 합리적이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차세대 에너지가 세상에 보급되도록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BEV는 지난 7월 폼에너지(Form Energy)와 퀴드넷에너지(Quidnet Energy)라는 에너지 저장장치 기업에 각각 900만달러와 64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IT 거물들이 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청정에너지 개발에 투자하는 이유는 뭘까. 기본적으로는 기후변화가 ‘위협’이라고 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과학계에 따르면 앞으로 지구 평균온도가 2도만 올라도 지구 생태계는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른다. 영국 기상청은 2015년 지구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1도 이상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상기후의 주범은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₂)다. 지구의 CO₂ 수치는 1950년을 기점으로 60년째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있다. 게이츠는 “기후변화는 곧 식물의 멸종”이라며 “화석연료 에너지 사용이 계속되면 인류는 식량 고갈로 결국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이츠를 포함한 억만장자들은 과거 IT가 세상을 바꿨듯 에너지가 미래를 뒤흔들 것으로 보고 있다. BEV는 설립 이후 현재까지 청정에너지 관련 기업 40여 곳에 투자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친환경에너지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 4월 자체 필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구글은 지난해 말 기준 소비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했다. 전 세계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풍력, 태양광 개발 업체들과 연간 약 3(기가와트)의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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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이런 폭력성이 더욱 심각해질 텐데.
“이대로라면 북반구 대부분의 나라에서 봄·가을이 여름과 겨울 사이 스쳐 가는 쉼표처럼 될 거다. 올해도 일찍 폭염이 왔고 긴 여름을 맞고 있다. 여름이 보통 6월·7월·8월 3개월간이었지만, 이젠 5월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고 늦더위는 10월까지 가기도 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나.
“대단히 심각하다. 46억 년 전, 지구가 생성된 이래 기온은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백만 년 이상 이산화탄소(CO₂) 농도는 180~280㏙을 유지했다. 최근 200년 사이 400㏙까지 오르면서 CO₂ 농도와 온도의 상승 곡선이 같은 추이를 보이고 있다. 더운 곳은 더 덥고 추운 곳은 더 추워지면서 날씨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기온은 계단식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서울대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대기과학 쪽으로 전과해 학위를 받았다. 특별히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나.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서 다섯 살 때부터 보릿고개를 제대로 겪었다. 배불리 쌀밥 먹는 게 소원이라 농대엘 갔다. 1970년대에 개량종인 통일벼가 나오면서 배곯을 일은 없어졌지만, 1978년에 냉해가 발생했다. 수확량이 30~40% 줄어든 거다. 그때 재배법론을 강의하시던 이은웅 학장님이 ‘우리 중에 누가 농업 기상을 연구하면 좋겠다’ 그러셨다. 농업 기상을 파고들다가 그 뒤 대기오염을 연구하는 환경 기상으로 전공을 바꿨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농사에 맞춰 절기를 정하고 계절을 맞이했지만, 이제 그런 생활의 지혜가 변화에 부딪힌 듯하다.
“덥고 가물어서 모기가 번식도 하지 못했다. 입추인 8월 7일에도 기온이 35도를 찍었다. 기상 이변으로 이제 절기의 의미는 점차 사라져 상징으로만 남게 됐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들이 기후 변화에 더욱 피로도가 큰 것 같다.
“그런 면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적당한 재난을 거치면서 국가 경제도, 기상학도 발전해온 셈이다. 문명과 문화의 발전을 사계절이 뚜렷한 중위도 나라에서 주도했다. 세계 기상 예보에서 최전선에 선 나라들은 다 선진국이다. 영국, 미국, 일본, 한국, 독일, 프랑스는 날씨 변화가 심하고 태풍, 집중호우, 폭설, 혹한 등 기상 재해가 잦다.”
현재 한국의 기상 예보 시스템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사실 한국의 예보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5, 6위 안에 들 정도로 앞서 있다. 기상관측망이 600개 이상 깔려 있고, 기상 전용 위성도 2010년에 이미 쏘아 올렸다. 수퍼컴퓨터의 위력도 강하다. 수치 모델 산출 성능이 탁월하다. 이것도 전 세계에 13대 정도만 있다. 한 번 쓰면 6년 정도 돌릴 수 있는데, 2020년에 5호기를 들여올 예정이다. 630억원 정도의 고가 장비다. 우리나라 날씨는 특히 서해가 블랙홀이다. 중국의 편서풍이 어떤 상태로 변할지 알 수 없어 해양 관측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최근엔 지구의 물이 끓고 있다는 경고도 곳곳에서 날아든다.
“바다 평균 온도를 보면 우리나라 서해안이 27~28도 정도다. 높은 바다 온도가 열대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해양 양식 어종의 폐사도 심각하다. 말씀드렸듯이 서해가 지금 우리나라 대기의 블랙홀이다. 계속 주시하고 있다. 498t 관측선을 서해 곳곳에 주기적으로 띄워 관찰할 계획이다.”
특별히 올해는 서울 지역의 폭염이 유난했다.
“서울이 더 덥게 느껴지는 건 도시 열섬 효과 때문이다. 가열된 콘크리트로 인해 그 열기가 더 세게 느껴졌던 거다. 비단 한반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르웨이에서도 산불이 많았다. 전 세계가 폭염 재난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는 “연구원 생활까지 31년간 기상청에 근무했지만 이런 지독한 더위는 처음이었다”며 “1994년에도 폭염과 열대야를 겪었지만 이미 그 기록(최고기온, 열대야 일수 등)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올겨울 추위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예년과 비슷한 정도의 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양극화다. 지난 겨울만 봐도 평창 올림픽 즈음에 극한 한파가 있었지만, 또 온화한 날들이 이어져 구간 격차가 컸다. 앞으로 5년간만 보면 폭염과 혹한 일수는 길어지지만, 평균값을 보면 그 변화는 근소하리라고 본다.”
기후 변화에 따른 미래의 산업과 생활은 어떻게 될까.
“미래 경제를 기후 경제라고도 한다. 앞으로 더 더워지고 더 추워질 테니, 극한 상황에 대처하는 신산업이 뜰 거다. 기상청도 100년간의 기상 정보 데이터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적응 잘하는 기업이나 도시가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 기상청이 기후 변화 적응을 위해 CO₂ 감축을 얘기하면 당장은 귀를 닫고 싶겠지만, 미래 경제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경제가 위축된다고 동참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국제 무역 시장에서 따돌림을 당할 거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날씨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겠나.
“이제 우리도 폭염과 혹한이 기후 변화 때문이란 걸 몸으로 자각하고, 냉난방이나 자동차도 좀 덜 쓰고 불필요한 전등은 끄는 쪽으로 습관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는 인간이 지구의 암세포나 마찬가지다. 환경이 열악해지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현재 인류가 가장 이기적으로 자연을 많이 파괴했다.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줄지 이제 진짜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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