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주요빌딩.상업용부동산

공유 오피스 '위워크'서울스퀘어·종로타워 간판을 바꾸다.설립8년.21개국73개 도시 300여지점.30만평에 기업가치20조원.손정희5조투자.

Bonjour Kwon 2018. 9. 8. 13:12

[Why] 돌아온 입양인, 서울스퀘어·종로타워 간판을 바꾸다

사회 김은중 기자

입력 2018.09.08 03:00

[김은중 기자의 쇼타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유 오피스 '위워크'의 한국 대표 매튜 샴파인

 

 

서울 종로타워 최상층(33층)에 있는 공유 오피스 ‘위워크(WeWork)’에 앉아 있는 매튜 샴파인(36) 대표. ‘Do What You Love(당신이사랑하는일을하라)’라 적힌 티셔츠를 입고 오프닝 파티에 나타났다. 그는 “한국의 스타트업과 크리에이터가 창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다. / 박상훈 기자

 

공유 오피스는 건물이나 그 일부를 작은 공간으로 나눠 월 사용료를 지불하는 입주자에게 재임대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2010년 뉴욕에서 시작한 위워크(WeWork)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글로벌 공유 오피스 업체다. 기업가치가 20조원에 육박하는 '데카콘(100억달러 이상)'으로 설립 8년 만에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유럽, 아시아, 남미 21개국에 진출했다. 전 세계 73개 도시에서 300여 지점을 운영하고, 오피스 합계 면적만 30만평에 달한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금까지 44억달러(약 5조원)를 위워크에 투자했다. 그는 "사이즈를 10배는 더 키워보자"고 했다.

 

찬양 일색은 아니다. 시장 선점을 위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겠다는 위워크 모델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많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위워크에 붙은 가격표(기업가치)는 과대평가됐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공개한 2분기 실적에서 매출은 4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증가했지만, 영업적자는 7억2000만달러에 달했다.

 

위워크는 2년 전 국내 시장에도 닻을 내렸다. 파죽지세다. 한 번에 5~6개 층을 10년 이상 장기 임대하는 위워크 덕에 높은 공실률로 골머리를 앓던 대형 건물주들의 얼굴이 폈다. 종로타워, 서울스퀘어(구 대우빌딩) 등 유서 깊은 서울의 랜드마크들이 최근 1~2년 사이 간판을 'WeWork'로 바꿔 달았다. 서울 도심에 10개 지점이 있다. 1만5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매머드급 오피스다.

 

위워크의 이런 공격적 동진(東進) 뒤에는 매튜 샴파인(36) 위워크코리아 대표가 있다. 뉴욕의 젊은 창업가였던 그는 위워크의 초기 창업 멤버로, 지난 5년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개인적 인연도 있다. 지난 3일 연인들의 기념일 명소로 이름을 날렸던 종로타워 33층 레스토랑 자리에는 위워크의 10번째 지점이 들어섰다. 그는 가슴에 'Do What You Love(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라고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오프닝 파티에 나타났다.

 

 

 

(왼쪽부터)서울스퀘어 빌딩. 종로타워. 여의도 HP 빌딩.

창조를 위해 멍석을 깔아준다

 

위워크는 개인 또는 사업자에게 사무공간을 판다. 1인당 임대료(월 35만원부터)를 내면 회의실, 카페 등 부대 공간과 프린터 등 사무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커피와 에일 맥주가 무제한 제공되고, 서울 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경관은 덤이다. 부동산 계약이나 업무 환경을 구축해야 하는 부담을 덜고 오로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위워크가 하는 일을 정의한다면.

 

"위워크는 플랫폼이다. 멤버들(위워크는 회원을 이렇게 부른다)이 생산성을 높이고 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다. 창업 혹은 업무 중 법률적인 문제를 마주했다고 치자. 한 푼이 아쉬운 스타트업인데 로펌의 자문료는 부담스럽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이나 직원을 통하면 빠르게 설루션을 찾을 수 있다. 서울역 지점에 있는 내가 도움을 호소하면, 선릉역 지점에 있는 입주자(변호사)로부터 답이 온다. 이렇게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된다."

 

―왜 자발적으로 서로를 돕나.

 

"협업을 통해 같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워크의 핵심 가치는 일에 대한 관점의 새로운 정립이다. 대기업에서 양복을 입고 일하면 그게 성공으로 여겨지는 시대는 지났다. 조금 더 신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도 얼마든지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 커뮤니티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있다. 스타트업, 다국적기업, 대기업, 변호사·회계사, 기자나 작가…. 이 안에서 자발적으로 시너지를 찾고 우리도 그렇게 유도한다."

 

―자체 사무실을 갖춘 대기업은 뭐가 아쉬워서?

 

"미국 경제잡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 25%가 우리 고객이다. 서울역점엔 제너럴일렉트릭(GE)이 큰 규모로 들어와 있고, 역삼점엔 하나금융의 혁신담당 조직이 있다. 여러 핀테크 분야 스타트업과 제휴하고, 위워크라는 플랫폼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다. 아모레퍼시픽은 서울 내 전 지점을 돌며 신제품 설명회를 가졌다. 최신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파악하고, 또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어떻게 연결되나.

 

"100여 명에 달하는 '커뮤니티 매니저'들이 우리의 핵심 자산이다. 이들이 탁구나 팔씨름 대회, 요가교실, 와인모임 등 네트워킹을 위한 각종 행사를 기획한다. 사업적인 관계에 앞서 인간관계를 맺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런 네트워킹 행사들을 두고 외양만 화려하고 실속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유 오피스 입주자의 절반 정도는 "커뮤니티나 네트워킹 행사에 전혀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일을 하기보다는 소셜미디어처럼 모두가 자기 홍보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허울만 좋은 행사들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맥주잔을 부딪치거나 탁구를 치다 불현듯 '이거 한번 해보자'는 의견들이 나온다. 면접장이 아니라 '해피아워'에서 운명의 상대(기술자나 디자이너)를 만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순간들에 주목한다. 지점마다 노래방이나 맥주바 같이 업무와는 무관해 보이는 시설들을 넣는 이유다. 물론 사업에 관해 진지하게 토론을 펴는 자리들도 얼마든지 있다(웃음)."

 

―한국에서 통하는 방식일까.

 

"나라마다 네트워킹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진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멤버들이 커뮤니티에 녹아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을 매니저로 뽑는다. 이들이야말로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친해지는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

 

'1호 고객'에서 한국호 수장으로

 

위워크는 2010년 뉴욕 소호의 한 상가 건물 1개 층을 통째로 임대해 출발했다. 이스라엘의 생활공동체 '키부츠'에서 자란 애덤 뉴먼과 미국 오리건주 출신 건축가 미겔 매켈비는 사무실에서도 '나(I)'보다는 '우리(WE)'가 중요하다고 봤다. 위워크의 '1호 고객'이던 샴파인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왜 위워크를 찾아갔나.

 

"뉴저지의 한 주립대(TCNJ)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고, 대학 졸업 후엔 독일차 벤츠의 미국 지사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금융 위기 후 회사를 나와 뉴욕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코딩할 시간도 없는데 화장실 청소나 비품 구매 같은 잡무를 하는 게 너무 화가 났다. 급기야 팀원 중 한 명이 '더 이상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크레이그 리스트(미국판 벼룩시장)를 뒤지다 위워크를 찾았다. 우리가 찾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어떻게 고객에서 동료가 됐나.

 

"위워크도 사업 초기라 엉성한 부분이 많았다. 공간 예약과 일정 관리 등 많은 부분이 거의 '수동'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외주를 받아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다가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한국 시장 진출을 강력히 요청했다는데.

 

"애덤에게 계속 말해왔다. 개인적인 이유가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시장 자체도 매력적이다. 한국의 상업 부동산은 계약의 유연성이 부족한 편이다. 글로벌 기업이 우리를 통하면 처음부터 비싼 돈을 주고 장기간 사무실을 렌트할 필요가 없다. 저렴한 가격에 '베이스캠프'로 활용이 가능하다. 이 안에는 언어 장벽도 없고, 인재를 채용하거나 현지 전문가를 만나는 일도 쉽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전 세계에 깔려 있는 위워크 네트워크와 30만명에 달하는 멤버를 통하면 한국의 기업들도 내일 당장 해외에 진출할 수 있다."

 

―성장세가 놀랍다.

 

"거의 두 달에 하나꼴로 지점을 열고 있다. 일본, 싱가포르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 연초에 30명에 불과했던 직원이 이제는 100명이 넘는다. 2년 전엔 나를 포함해 직원 셋이 전부였는데."

 

 

그는 태어나자마자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2007년 모친(맨 왼쪽)과 세 누나, 조카들을 처음 만났다. ‘차민근’이라는 이름도 되찾았다. / 매튜 샴파인 페이스북

미국 엄마, 한국 엄마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태어난 직후 미국으로 입양됐고 그곳에서 줄곧 자랐다. 2007년 한국에서 자신을 낳아준 생모(生母)와 25년 만에 재회해 '차민근'이라는 한국 이름을 되찾았다. 이젠 한국에도, 미국에도 '엄마'가 있다. "출근길엔 미국 엄마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고, 퇴근해선 한국 엄마와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정체성의 혼란은 없나.

 

"내가 자란 뉴저지 남부에는 온통 백인들뿐이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한국인은 고사하고 아시아인도 본 적이 없었다. 정체성의 혼란을 심하게 겪지는 않았지만, 혼자 고민은 많이 했다. 백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어딘가 '애매모호한 중간(in the middle ground)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25년 만에 한국에서 부모와 재회했다.

 

"대학 때 찾은 한국 교회에서 친해진 친구가 있다. 그녀의 이모가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내 생모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하더라. 처음엔 생각 없이 '예스'라 했는데 한 1년 정도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니 '친부모를 만나 보겠느냐'는 이메일이 왔다."

 

―원망은 없었나.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 메일을 본 순간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정말 내가 후회하지 않을까.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이번에 보지 못하더라도 또 기회가 있지 않을까. 처음 보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다시 '엄마'를 만난 순간은.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 공항이 온통 울음바다가 됐는데 나만 어안이 벙벙했다. 어머니께서도 뭐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때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웃음)."

 

―어떻게 입양됐나.

 

"위로 누나 셋, 형이 한 명. 나는 막내였다. 아버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트럭운전을 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나를 임신했을 때 낙태 얘기도 나왔던 것으로 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어머니 주변에서 입양을 권유했다. 그래서 처음엔 내가 어머니와 재회한 것도 아버지한테는 한동안 비밀이었다. 나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계셨으니까."

 

―한국 생활엔 적응했나.

 

"2년 전부터 줄곧 서울에 살고 있다. 어머니 집과는 20분 거리고. 크리스마스엔 한국의 가족과 친척들을 모두 서울로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낸다. 30명이 넘는 대(大)부대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3일 내내 상주(喪主) 역할을 했는데, 그건 꽤 힘든 경험이었다. 언어가 유일한 단점이다. 일주일에 세 번 특별 과외도 받고 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여기서 소개받은 한국인 여자친구와 1년 넘게 교제 중이다. 자연스레 늘지 않을까(웃음)."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성격 같다.

 

"맞는다. 무엇인가 잘못되면 좌절하기보단, 거기서 배운 경험과 교훈을 찾고 잊어버리는 식이다. 나와 함께 스타트업을 창업했던 파트너 두 명이 죽었다. 한 명은 자살했고, 다른 한 명은 교통사고. 밤을 새워 같이 코딩하고, 열정을 불태우던 친구들이 그렇게 한순간에 떠나가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웃고 떠드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 생각하니 웬만한 문제는 문제가 안 되더라."

 

샴파인 대표는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많다"고 했다. 위그로(학교), 위짐(체육관), 위리브(기숙사) 등 단순한 사무실 재임대사업을 넘어 밀레니얼세대를 위한 '문화'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물론 위워크의 해피엔딩 여부를 예측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 다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그가 입고 있는 티셔츠 구호처럼 샴파인은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를 매일 다짐하며 실천하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