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규제완화로 우후죽순 분양
中 단체관광 줄며 객실가동률 '뚝'
과장 광고만 믿고 계약하면
소송해도 돈 돌려받기 어려워
[ 조아란 기자 ]
지난 9월 서울 명동르와지르호텔 투자자 수십 명이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호텔 운영회사가 약속한 수익률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운영권을 투자자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자영업자 김모씨(56)는 지난해 11월 노후 대비를 위해 분양형 호텔인 강원도 세인트존스호텔 객실을 분양받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될 상황에 처했다. 투자 후 5년간 연 6.5%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분양대행업체 설명에 마음이 끌렸다. 더구나 분양가 3억1039만원 중 70%를 단체 대출해준다고 했다. 수익금으로 이자를 갚고 차액을 노후 자금으로 쓰면 된다고 생각한 김씨는 아파트 보증금까지 일부 끌어다가 계약했다.
하지만 잔금날이 다가오자 운영회사가 하는 말은 달랐다. 부가세를 제외한 분양금의 55%까지만 담보대출이 된다는 것이었다. 김씨가 항의하자 운영사 측은 “분양대행업체 말은 모르겠고 계약서엔 관련 내용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계약 해제도 안 된다”고 했다. 잔금을 내지 못한 김씨는 지난달부터 매월 80여만원의 중도금 대출이자만 떠안고 있다. 김씨는 “공과금 한 번 밀려본 적 없을 만큼 정직하게 살았는데 대출이자를 못 갚는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지난 7월 운영사, 분양대행업체 등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투자자 ‘무덤’ 전락한 분양형 호텔
분양형 호텔은 아파트처럼 투자자가 시행사로부터 객실별 소유권을 분양받고 호텔 위탁운영사와 위탁운영계약(임대차계약)을 맺으면 운영사가 수익을 배분하는 수익형 부동산이다. 2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분양형 호텔은 2012년 정부가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객실별 분양이 가능하게 규제를 풀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138곳에서 분양이 완료됐고, 올 들어 분양한 곳을 합치면 150개는 충분히 넘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호텔 한 곳의 객실 수를 평균 500개라고 가정하면 객실 7만5000여 개가 부동산 투자상품으로 판매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객실 가동률이 높을수록 수익률이 올라가는 구조여서 대부분 제주, 강원 등 인기 관광지 주변에 모여 있다.
분양형 호텔은 대부분 처음부터 확정 수익보장형 상품으로 둔갑돼 팔렸다. 투자자에게 몇 년간 투자수익을 보장한다는 방식이었다. 신개념 상품에 매력을 느낀 투자자가 몰려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수익률을 포함해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시행사와 운영사가 속출하면서 투자자와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명동르와지르호텔 투자자 100여 명은 9월 서울 중구청 앞에서 “임대료를 한푼도 받지 못해 막대한 재산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며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2014년 분양 당시 수익률 7%를 보장한다고 계약했는데 실제론 3~5%만 발생해 계약해제 소송을 냈고, 승소했는데도 운영사가 4%의 수익률을 약정하는 또 다른 운영사에 운영권을 넘겨버렸다”며 “최근 4개월 동안엔 수익금이 한푼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분양형 호텔들이 수익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호텔업계는 지난해 ‘사드보복 사태’ 등으로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급감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한국호텔업협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서울시내 호텔 객실 수는 5만3454개로 전년 대비 12% 늘었다. 반면 지난해 방한한 유커는 416만여 명으로 전년의 806만여 명에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관광객 감소로 객실 가동률이 떨어졌고,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승소해도 보상받기 쉽지 않아”
더 큰 문제는 분양형 호텔의 경우 문제가 생기더라도 투자자보호 장치가 제대로 없어 법적으로 손실을 보상받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계약서에 쓴 내용이 이행되지 않으면 기망(사기)이 적용돼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승소하더라도 분양대금과 이자비용을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아파트처럼 주택법상 분양보증이 의무화돼 있지 않아 자금력이 부족한 시행사가 많기 때문이다. 태백에 있는 강원라마다호텔과의 소송에서 승소한 투자자들은 호텔 채권만 10개 가까이 압류했지만 호텔 측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아직도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광고 내용, 상담 내용 등이 계약서 내용과 달라 아예 소송을 내기 어려운 곳도 많다. 한 변호사는 “계약서에 확정 수익률 등을 적어놨어도 단서 조항에 ‘손실을 포함한 수익률 변동과 관련해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포함해둔 경우엔 승소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수익률이 안 나온다고 소문난 호텔은 객실을 되팔기도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이유로 최근 강원 양양, 속초 인근 호텔 객실들이 경매에 헐값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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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대책 마련 나선 국토부…"법개정 12월 착수"
분양형 호텔 투자자 보호 '허술'
3000㎡ 미만 신고없이 분양 가능
시행사 분양보증 의무도 없어 사기성 과장광고 과태료 1억 불과
"전세계 한국에만 있는 상품"
전국 곳곳에서 분양형 호텔 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아직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22일 “분양형 호텔 등 수익형 부동산 상품에 투자했다가 투자자가 손실을 입는 일을 막기 위해 지난 5월부터 개선방안 연구작업에 들어갔다”며 “투자자의 재산손실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에 대해 오는 12월께 방향을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분양형 호텔은 투자자의 재산 손실을 막기 위한 보호장치가 허술하다. 상가, 오피스텔 등 다른 수익형 부동산 상품은 30실 이상 분양할 때 분양신고를 해야 하고 분양광고 내용이 신고 내용과 다르거나 중요한 내용이 빠지면 허가권자인 정부가 사업자에 시정을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분양형 호텔은 ‘생활형 숙박시설’로 분류돼 바닥면적 합계가 3000㎡ 미만이면 신고 없이도 분양할 수 있다.
분양대금을 떼일 위험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을 선분양할 때는 주택법 제76조에 따라 시행사가 분양보증을 마련해 입주 전까지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재산손실 위험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게 돼 있다. 하지만 분양형 호텔에 대해선 이런 규제가 없어 시행사가 준공하지 못하고 파산해버리면 투자자는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업계 관계자들은 “분양형 호텔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투자 상품”이라며 “참고할 만한 외국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의 재산 피해를 막을 방법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규제부터 풀어 문제가 커졌다”고 말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미국에 콘도 수익률과 연계한 펀드 상품 등이 있지만 이렇게 객실별로 개인에게 분양한 뒤 수익을 분배하는 상품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피해 구제 방안 등을 신중하게 마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분양형 호텔과 관련해 피해가 속출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월 수익형 부동산 분양 시 수익률 산출 근거를 밝히도록 법령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7월부터 과장광고를 하다 적발되면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관련 소송이 줄을 잇는 등 ‘뇌관’이 터져버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의 피해 규모에 비해 과태료가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도 있다. 객실 하나당 분양대금이 통상 2억~3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호텔당 분양대금은 수백억원인데 1억원의 과태료로 사기성 과장 광고를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년 초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분양형 호텔 같은 생활형 숙박시설도 30실 이상 분양 시 분양신고 대상에 포함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