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흐름. 미래변화>****

[다시 쓰는 인구론: 민 흩어진 '속빈 도시' 인구 소멸 빠르다.지방은 지속가능한가? 외곽으로만 팽창하는 지방, 신·구도심 모두 ‘썰렁’

Bonjour Kwon 2019. 1. 24. 10:10

주 [다시 쓰는 인구론]

군위·남원·문경 | 글·사진 박용하 기자 입력 2019.01.24.

[경향신문] ㆍ지방은 지속가능한가

사람은 떠나고…지방을 지키는 빈집 경북 군위군 의흥면사무소 근처의 집이 벽은 무너지고 마당은 폐허가 된 채 버려져 있다. 인구가 줄고 있어 외곽으로 팽창하는 지역에선 이 같은 빈집들이 속출할 수 있다. 박용하 기자

“우리 마을엔 서른 가구쯤 있는데 절반은 비었어. 젊은이들은 다 나가고 이제 늙은이밖에 없지. 예순 살 먹어도 여기선 막내야.”

지난달 19일 경북 군위군 의흥면 금양리에서 만난 김노수씨(81·가명)는 마을 분위기를 묻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김씨가 사는 행골마을은 조선시대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주민들이 살아온 곳이다. 하지만 주민 수가 계속 줄어들며 현재는 마을 절반이 폐가가 됐다. 한 집은 관리되지 않아 추녀와 서까래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고, 또 다른 집은 마당의 잡초가 무릎 위까지 자라 있었다. 채소가 심어진 채 말라버린 밭도 곳곳에 보였다. 낮에 온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마을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저출산·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위협을 앞서 겪고 있는 곳은 지방이다. 대다수 지방 도시들이 옛 정취를 보존하는 건 둘째치고, 주민 수가 급격히 감소하며 생존마저 위태해지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내놓은 ‘한국의 지방소멸’ 보고서에서 전국 시·군·구의 40%가량은 ‘소멸위험지역’으로 30년 뒤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소멸위험지역은 65세 이상 인구수가 20~39세 여성의 수보다 2배 이상 많은 곳을 뜻한다. 위험도 순으로 경북 의성, 전남 고흥, 경북 군위 등 89개 지역이다. 인구가 크게 줄어든다는 뜻에서 20개 지역은 ‘축소도시’로 분류됐다. 특히 전북 남원과 경북 상주, 강원 태백 등 8개 축소도시는 가장 발전했던 시기에 비해 인구가 절반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지방자치단체들은 현실을 부정한다. 인구는 급감하고 있지만 개발사업을 늘려야 주민들이 좋아하고, 인구가 늘어난다고 믿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지방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외곽에는 늘 새로 짓는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소멸위험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인구가 줄고 있는데, 주택개발 등으로 외연을 넓히면 주민들이 드문드문 살게 되면서 각종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사람이 흩어져 있으니 장사는 장사대로 안되고, 생활 필수 시설들도 수익성이 줄어 문을 닫는다. 이는 인구가 다시 빠져나가는 원인이 된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18~20일 ‘소멸위험지역’인 경북 군위군과 ‘축소도시’인 전북 남원,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진 경북 문경 등 3개 지역을 찾아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도시의 실태를 살펴보고, 대안을 고민해 봤다. 이곳들 모두 누군가에게 소중한 고향이지만 주민 수가 줄어들며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어린이집과 병원들은 문을 닫고, 오후 6시에도 거리에선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 황량한 도심의 모습은 이들 도시의 불안한 내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해 휴원한 군위군 의흥면의 어린이집. 잡초가 자라 미끄럼틀을 뒤덮고 있다.

외곽으로만 팽창하는 지방, 신·구도심 모두 ‘썰렁’


인구가 줄어 소멸 위기에 진입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풍경은 빈집이 많고 마을이 활기를 잃은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지난달 19일 찾은 경북 군위군 의흥면 행골처럼 작은 마을뿐 아니라 사람이 그나마 모여 사는 행정청사 소재지에서도 나타난다. 의흥면사무소 근처에서도 벽이 무너지고 우편물이 쌓인 빈집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의흥면 관계자는 “빈집도 많아졌지만, 인구가 줄면서 동네가 예전에 비해 확실히 조용해진 걸 느낀다”며 “저녁에 어두워지면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 아이 울음 끊긴 군위의 변화

군위군은 ‘소멸위험 지수’가 전국에서 세 번째로 높다. 노인은 많은데 태어나는 아이는 없어 시간이 지나면 마을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군위군 고로면은 지난해 3분기에 태어난 아이가 단 1명에 불과했다. 의흥면의 경우 5년 전 2700여명이던 인구가 현재는 2500여명으로 줄었다.

인구가 줄면 생활에 꼭 필요한 시설들도 하나둘 사라질 수 있다. 특히 민간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들은 아이들이 줄면 수익이 떨어지며 휴원이나 폐원으로 내몰린다. 의흥면에서도 유일하게 있던 어린이집이 지난해 초 휴원했다. 기자가 찾아간 이곳 마당에는 현재 잡초가 어른 키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알록달록한 미끄럼틀은 잡초에 묻힌 상태였다. 한때 아이들이 신나게 타고 놀았던 유아용 자전거들은 주인 없이 나뒹굴었다.

|‘소멸위험 지수 3위’ 군위군 의흥면사무소 근처 빈집 수두룩 의료기관·어린이집·학교 등 인구 줄면서 편의시설도 사라져 |흩어지는 사람들 인구 유출과 서남대 폐교 영향 남원, 5년간 인구 3000여명 감소 외곽은 새 아파트 대규모 공급 |환경·시설 좋아져도 떠난다 점촌역 구도심 재정비한 문경시 청년 창업 지원 등 갖은 대책에도 사람들 다시 모으기에는 역부족 |무의미한 시소게임 멈춰라 정부, 도시재생 5년간 50조 투입 제한된 인구 두고 신·구도심 경쟁 ‘확장지향형’ 개발 정책 벗어나야

어린이집과 같은 필수시설이 사라지면 주민들의 생활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의흥면에서도 어린이집 휴원 뒤 이곳에 다니던 15명가량의 아이들은 갈 데가 없어 곤란을 겪었다. 일부는 가정에서 돌보기로 했지만, 상황이 마땅치 않던 4명의 아이들은 차로 30여분 걸리는 영천군의 어린이집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 중 2명은 결국 가족과 타지로 이사간 것으로 전해졌다.

휴원한 어린이집에서 10분쯤 걷자 폐교한 ‘군위정보고등학교’ 건물이 보였다. 영·유아 인구가 감소하면 향후 학교에 갈 아이들도 줄어들게 된다. 지방 소도시 학교들이 폐교 위기에 몰린 이유다. 의흥면에서는 군위정보고가 2017년 문을 닫았고, 우보면의 중학교 한 곳도 조만간 폐교할 예정이다. 남한호 의흥중 교무부장은 “소규모 지역사회에서는 학교가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인구가 줄어 학교가 사라지면 지역이 더욱 급속히 쇠퇴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인구가 줄면 의료기관도 버티기 힘들다. 군위군에서는 유일한 응급의료기관이었던 ‘군위병원’이 2014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건물만 흉하게 남아 있었다. 보건소가 응급의료를 대신 하고 있으나 처치에는 한계가 있다. 보건소 관계자는 “오후 6시부터 시작하는 당직진료를 응급실 개념으로 쓰고 있지만, 공중보건의가 1명 남아 간단한 진료나 약 처방을 하는 사정이라 수술이나 중요한 대응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중대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군위 주민들은 차로 40여분 걸리는 구미나 칠곡으로 가야 한다.

이처럼 인구 감소는 생활 필수시설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지방 도시를 젊은 부부가 정착하기 힘든 곳으로 만들고 있다. 군위군청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30대 주부는 “이곳에서는 갑자기 애가 아프면 갈 데가 없고, 아기용품도 인터넷 없이는 사기 힘들다”며 “당분간은 살겠지만 향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떠날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쇠락한 남원의 구도심 하정동의 상가 거리.

■ 남원, 대학 퇴출에 인구 분산까지

인구 감소로 사라지는 시설 중 지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대학이다. 저출산 여파로 입학할 학생들이 줄어들고, 사학재단들의 비리도 적발되며 2000년 이후 서남대와 한중대, 명신대 등 16개 대학이 문을 닫았다. 정부는 2021학년도 이후 38개 대학이 더 문을 닫을 것으로 전망했다. 수천명의 학생을 수용하는 대학이 사라진다면 지방의 쇠퇴는 빨라질 수 있다.

전북 남원은 대학 소멸로 타격을 입은 지방 도시들 중 하나다. 지난달 20일 찾은 서남대 남원캠퍼스 일대의 풍경은 쓸쓸했다. 이곳에는 한때 5400여명의 학생들이 오갔으나 현재 아무도 없는 상태다. ‘미래를 여는 젊은 대학’이란 문구의 광고판만 녹슨 채 서 있었고, 대학 곳곳에는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 있었다. 운동장에는 칠이 다 벗겨진 축구 골대와 농구대가 흉물스레 방치됐다.

무엇보다 피해를 입은 곳은 학교 주변 마을이다. 서남대 정문과 후문에는 한때 당구장만 9개가 생기는 등 상점 40여곳이 활발히 운영됐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 폐업하고, 가게를 팔지 못한 상인들은 상가 건물을 집처럼 쓰며 살고 있었다. 사진관을 하는 50대 남성은 “학교가 있을 땐 졸업사진을 맡아 수입을 올렸는데, 갑자기 폐교해 너무 힘들다”며 “사진을 주로 찍는 학생들이나 아이들이 남원 전체적으로도 줄어 이제는 시내로 간다 해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서남대 학생들의 자취방이 모여 있던 율치마을도 상황은 비슷하다. 마을 전체가 대부분 원룸인 이곳은 학생들이 많을 때는 거대한 기숙사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의 원룸이 공실 상태이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주민도 찾기 힘들었다. 이곳에서 임대업을 하는 60대 여성은 “학교가 있을 때는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사람 찾기가 힘들어 한 달 10만원에 방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폐교된 서남대 남원캠퍼스 운동장에 자라난 잡초들과 방치된 축구 골대.

남원은 지속적인 인구 감소에 대학 폐교 등 문제가 겹치며 지난 5년간 3000여명의 주민이 줄었다. 하지만 이처럼 인구가 줄어도 도시는 외곽으로 여전히 팽창하고 있었다. 그간 많은 지방자치단체와 개발업자들은 인구가 감소하는데도 외곽 토지를 개발해 공공기관을 이전하거나 새 아파트를 대규모로 공급해왔다. 이는 싸고 깨끗한 아파트를 찾는 일부 주민들을 만족시켰지만, 가뜩이나 줄어든 인구가 넓은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며 도심 공동화 등 부작용을 일으켰다.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도통동이 남원의 신도심이 되자 과거 도심이었던 하정동은 행인이 줄어들고 상권이 쇠락했다.

기자가 찾은 하정동 일대는 옷가게가 많았지만 손님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수리되지 않은 건물들, 폐업해 임대 딱지를 붙인 곳들이 이어졌다. 아동복 매장을 운영하는 30대 여성은 “이쪽은 그나마 월세가 싸 젊은이들이 가게를 열고 있는데, 사람이 없어 줄줄이 폐업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골프의류 매장의 40대 여성은 “도통동에 사람이 몰리고 음식점도 많이 들어서며 상권이 나뉜 것 같다. 나뉘지 않았다면 더 잘될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주민들이 새로 이주한 신도심도 장사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오후 2시쯤 들른 도통동 일대는 새 건물이 많다는 점을 빼면 한적한 분위기는 하정동과 차이가 없었다. 인구가 흩어져 살게 되니 구도심과 신도심의 상권 모두 피해를 입는 것이다. 하지만 남원 외곽에는 현재도 새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하정동에서 구두 매장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은 “지금도 사람이 줄어드는데 외곽에 웬 아파트는 저렇게 지어놓느냐”며 “아파트 다 지으면 손님들이 저쪽으로 더 빠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 도시재생 뛰어들지만 버거운 현실

구도심 공동화 현상은 쇠퇴하는 대다수 지방 도시들이 겪고 있는 문제다. 경북 문경시도 마찬가지다. 문경은 과거 석탄이 운반됐던 점촌역 근처에 도심이 형성됐는데, 1989년 시청이 이전하면서 외곽의 모전동이 신도심이 됐다. 그 뒤 모전동에 대규모 택지가 개발되고 병원과 경찰서도 이곳으로 이전하며 1만명가량의 인구가 옮겨갔다. 문경의 전체 인구는 약 7만명. 사람이 빠져나간 구도심은 급속도로 황량해졌다.

문경시는 공동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 40억원을 들여 점촌역 근처에 ‘차 없는 문화거리’를 만들고 구도심을 살리려 했다. 현재 점촌역 일대는 예쁘게 꾸며진 상태다. 차 없는 문화거리에선 분수대와 인공개천, 형형색색의 조명등, 문경 특산물인 사과를 형상화한 각종 조형물들을 볼 수 있었다. 전선을 땅에 매설하면서 오래된 전신주들은 깔끔하게 정리됐다. 거리가 만들어진 직후 주민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구가 줄어들고 생활 반경도 외곽으로 확장되면서 구도심의 환경 개선 효과는 한계가 있었다. 문화거리는 오후 6시에도 오가는 이들이 매우 적었다. 청년들이 많이 나오는 시간대지만 300m가량 뻗어 있는 거리 양쪽을 다 합쳐도 10명 안팎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2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30대 남성은 “이 정도면 그래도 사람이 나온 편”이라며 “문화거리를 조성했다고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다 모전동에 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거리에는 폐업·임대 딱지가 붙어 있는 상가도 많았다.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50대 남성은 “이 근처 상가의 2층은 공실률이 80%나 되고, 1층도 30%가량 된다”며 “외관을 말끔히 꾸민다고 동네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문경시는 공동화 현상으로 피해를 겪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청년몰’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청년들에게 지원금을 주고 시장의 남는 공간에 가게를 열게 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이 사업 역시 불안하다. 한 청년 상인은 “시에서는 열심히 하지만 워낙 오가는 이들이 적어 들어온 상인들 중 적자나는 이들이 꽤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도 “아무래도 청년들이 신도심 쪽으로 몰리니 여기서는 장사하기 쉽지 않다”며 “청년몰에 마련한 창업 공간도 공실이 있는 상태”라고 했다.

정부는 인구 감소로 쇠퇴하는 전국의 도시들을 살리기 위해 향후 5년간 50조원가량을 도시재생 사업에 투입할 예정이다. 구도심의 거주시설과 전통시장 등을 정비해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방 도시의 인구가 줄고 생활 반경은 넓어지는 상황에서 시설 정비만으로 구도심이 활성화될지는 미지수다. 제한된 인구를 두고 구도심과 신도심이 경쟁하는 구조라 한쪽(구도심)을 살리면 다른 쪽(신도심)이 침체될 가능성도 있다. 문경에서도 구도심 살리기 이후 신도심 상권이 일부 위축돼 주민들이 반발한 바 있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이 같은 일종의 ‘시소게임’은 생활 권역이 나눠진 전국의 지자체가 겪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쇠퇴하는 지방 도시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인구 감소 시대에 맞는 도시계획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형수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제는 지자체가 확장지향적인 정책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며 “생활 환경의 규모를 줄이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유지시켜주는 일종의 ‘도시 다이어트’ 전략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목차 1. 인구 감소, 위기인가 기회인가 2. 다 인구 때문일까 3. 세대게임을 넘어 4. 우리 모두는 일할 수 있을까 5. 아이 키우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6. 지방은 지속가능한가 7. 우리는 이방인을 품을 수 있을까 8. 돌봄은 어떻게 재구성될까

군위·남원·문경 | 글·사진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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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인구론]흩어진 인구와 도시 기능 ‘압축도시’ 전략으로 모아라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소멸위기 지방도시의 해법


“지방소멸에 대한 보고서를 쓴 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왜 자기 지역을 ‘소멸 위험 지역’으로 못 박느냐는 항의였죠. 사실 지방에서는 인구가 줄어든다는 얘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요. ‘표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국토교통부 산하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인구감소에 대한 지자체의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는 지방의 현실인데, 대다수 지자체들은 현실을 인정하기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자체도 인구감소 대책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인구감소에 ‘적응’하는 계획이라기보다 장밋빛 미래를 ‘상상한’ 개발계획인 경우가 많다. 

■ 소멸 위험에도 개발 욕심은 여전 

대다수 지자체들은 새롭고 저렴한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취지로 도심보다 땅값이 싼 외곽에 아파트를 지어 공급했다. 인구가 늘어나던 시기에는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음에도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땅을 소유한 지방의 자산가들과 건설업자들의 이익이 들어맞아 개발계획은 그치지 않았고, ‘도시가 커져야 발전하는 것’이라 생각한 지자체들도 관공서를 대거 이전해 개발붐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런 추세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국토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5~2015년 문경 등 ‘축소도시’ 20곳 중 17곳에서 녹지나 자연환경보전지역의 개발 행위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원이나 삼척, 경주 등 8곳의 축소도시에서는 개발 면적 증가율이 연평균 1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도시들은 개발에 앞장서며 일부 주민들의 만족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인구감소를 막을 순 없었다. 구도심에 있던 인구가 신도심으로 일부 이동했을 뿐이다. 반면 부작용은 심해졌다.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에서 주택 개발로 외연을 넓히게 되면 신도심에 인구를 빼앗긴 구도심은 오가는 사람이 없는 공동화 현상을 보이고, 상가에는 폐업이 속출하게 된다. 구도심에는 빈집 등 이용하지 않는 땅도 많아진다. 1995년 약 3만6000호를 기록했던 전국의 빈집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 2015년 100만호를 넘어섰다. 이런 빈집은 범죄에 악용되는 등 남은 주민들의 생활에 악영향을 끼친다. 또 사람들이 흩어져 살면 주민들끼리 교류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1인 노인가구의 경우 ‘고독사’ 확률도 높아질 수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구도심에 남아도는 시설들을 관리하는 비용은 계속 발생하는데, 외곽에 새 기반시설까지 공급하느라 재정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시 쓰는 인구론]흩어진 인구와 도시 기능 ‘압축도시’ 전략으로 모아라

■ 인구감소에 적응하는 전략, ‘압축도시’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이 이 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인구감소를 인정하고 새로운 국토·지역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압축도시 전략’이 대표적이다. 도시가 무분별하게 외곽으로 팽창하는 것을 막고, 흩어져 사는 인구와 주거·상업 등 도시기능을 주요 거점에 모으는 것이 압축도시 전략의 핵심이다. 생활 반경을 압축하면 공동화 현상도 줄일 수 있고, 인구가 집약돼 상권도 살아날 수 있다. 지방정부가 관리해야 할 지역의 범위도 줄어 재정 부담도 덜 수 있다.

압축도시 전략은 도시 외곽에 새로운 개발 사업을 제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도시 내에 빈집이 다수 생기는 것은 인구가 한계점에 왔다는 신호인데, 새로 집을 더 지으면 또 다른 빈집을 양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상으로는 과다한 개발 행위를 제한할 수 없다. 조득환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에 개발을 허가하지 않는 사유가 있긴 하지만 모호하기 때문에 민간에서 신청하면 지자체가 대부분 허가하는 게 현실”이라며 “법을 개정해 불허 사유를 세부적으로 정하거나, 지자체에서 조례를 만들어 과다한 개발을 자중시키는 방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개발 사업을 제한할 수 있다면, 그 뒤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은 ‘생활거점’을 정하고 도시 기능을 장기간에 걸쳐 한곳에 모을 필요가 있다. 생활거점은 위치상 지역의 중심부에 있는 구도심이 될 수도 있고, 새로 도시의 핵심이 돼 버린 신도심일 수도 있다. 구형수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모여 살기 좋은 곳이 구도심일 경우 빈집이나 쓰지 않는 땅을 최대한 활용해 주택이나 상권, 문화시설 등이 들어서게 해야 할 것”이라며 “이 경우 외곽에 생기는 남는 시설물들은 철거한 뒤 녹지로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드문드문 살고 있는 주민들을 생활거점으로 어떻게 유도할지는 쉽지 않은 과제다. 원래 살던 곳에서 강제로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센티브 등의 간접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민성희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자에게는 생활 거점의 공동주택 건설비 등을 보조하고, 주민들에게는 해당 지역의 주택을 구입할 때 대출금, 상가 임대료 등을 지원하는 등의 방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압축도시 전략, 한국에는 언제? 

압축도시 전략은 일본과 미국 등에서 시도됐으며, 인구감소를 줄이는 등 일부 효과를 보기도 했다. 일본 아오모리시의 경우 역 앞에 상업시설과 공공시설을 섞은 빌딩을 지어 도시기능을 집약했으며, 도야마시는 흩어져 사는 주민들을 대중교통이 모이는 곳에 살도록 유도한 뒤 교통을 활성화하는 전략을 폈다. 시설 재배치 등으로 재정 부담이 늘어나기도 했으나, 인구감소세가 줄어드는 등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압축도시 전략을 두고 학계 일각에서는 “선택과 집중에 따라 소규모 마을들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지방 소멸이 워낙 급격히 진행되며 부작용이 커지고 있기에 학계나 정부 모두 압축도시 전략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편이다. 박윤미 이화여대 교수는 “생활거점이 아니라 개발되지 않는 외곽 마을이 생긴다 해도 이곳에 생활 필수 시설을 충분히 지원한다면, 압축도시의 부작용은 충분히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의 지방도시에 압축도시 전략이 적용되기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정부는 압축도시 전략을 직접 추진하지 않고,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들이 압축도시 전략을 도시계획에서 일부 언급하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현실에 적용하는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지자체 대다수는 개발을 제한하는 전략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 책임연구원은 “인구감소가 심해지고 있는 만큼, 지자체들이 도시계획 방식을 스스로 바꾸길 기다리는 것보다 새로운 전략을 힘있게 추진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조직을 마련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소한의 생활 위한 시설 얼마나 필요한지, 가이드라인 만들고 지원해야
 
생활시설 부족 개선하려면
 
경영난으로 폐업한 군위군의 옛 군위병원 건물. 박용하 기자

경영난으로 폐업한 군위군의 옛 군위병원 건물. 박용하 기자

 
도시에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택뿐 아니라 보육과 교육, 의료, 문화 등 기초생활에 필요한 시설(생활SOC)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들면 이런 시설들은 수익성이 줄어 운영하기 어렵게 된다. 생활SOC가 하나둘 사라지면 주민들의 불편은 가중되고 인구도 빠져나갈 수 있다.
 
지방에서 생활SOC가 부족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이 10가지 생활SOC(보육시설, 노인복지시설, 응급의료시설, 일반 병·의원, 보건시설, 공공도서관, 체육시설, 공원, 문화시설, 공공주차장)에 닿는 시간을 지역별로 측정한 결과, 전국의 약 66만4000명은 10분 안에 이들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곳에 살고 있었다. 도시 근교와 농어촌 지역, 특히 ‘축소도시’에 사는 주민들이 이 같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근본적으로 ‘압축도시’ 전략 등을 통해 드문드문 사는 주민들을 모여 살도록 유도해야 하고, 생활SOC도 이 지역에 모아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이 생활필수 시설을 더 손쉽게 이용할 수 있고, 각 시설들도 운영·유지가 가능한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전국 지방도시의 약 66만4000명생활
SOC 10분 안에 이용 불가능 

 
정부·지자체 예산으로 지원 필요
민간 위탁해 지원금 주는 방법도 

덜 필수적인 시설은 폐쇄하더라도 
소수 주민 사회적 배려를 고려해야

 
문제는 압축도시 전략은 현실화되지 않는 반면, 생활SOC 부족에 따른 불편은 ‘현재진행형’이란 점이다. 이런 상황에선 생활SOC가 줄어들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지역을 찾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생활SOC사업 추진방안’은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정부는 지방의 생활SOC 확충에 8조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에 어떤 SOC를 보완할지를 정해 오는 3월 중·장기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생활SOC를 효과적으로 확충하려면 우선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소멸위기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떤 종류의 SOC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무조정실 ‘생활SOC사업 추진단’ 관계자는 “지역의 인구수와 분포, 주요 시설까지의 거리, 주민들의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가이드라인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생활SOC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 지역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투입해 시설을 지원해야 한다. 충분하지 않아도 생활SOC를 이용할 수요가 있다면 시설을 새로 마련해 관에서 운영하거나, 민간에 위탁하고 지원금을 주는 방법이 가능하다. 근처에 유휴시설이 있다면 정부가 시설을 사들인 뒤 개·보수해 이용할 수도 있다. 다만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지역은 여전히 땅값이 비싼 경우가 많다는 점, 또 인구가 줄어드는 지자체의 재정 상황이 튼튼하지 않다는 점은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수요가 적어 생활SOC를 새로 짓기 힘들다면 주민들이 다른 지역의 시설을 최대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셔틀버스나 저렴한 공공형 택시를 운영해 이동의 불편함을 줄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현재 섬이나 산간 지역에는 영화상영이나 도서대여, 의료 서비스를 배달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구감소로 생활SOC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졌는데, 개선이 쉽지 않다면 이런 배달 서비스를 운영할 필요도 있다. 

이용하는 주민이 적은데도 생활SOC가 운영돼 비용만 나간다면, 시설을 닫거나 옮길지의 여부도 판단해야 한다. 특히 다른 생활SOC보다 상대적으로 덜 필수적이고, 재정 부담만 가져오는 시설이 있다면 폐쇄하는 게 낫다. 구형수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방에는 이용객이 없는 곳에 대형 종합체육관이나 전시관 등을 지어놓아 지자체의 재정 부담만 주는 경우가 꽤 있다. 향후 지자체 스스로 지역 상황과 맞지 않는 시설들을 객관적으로 가려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생활SOC를 폐쇄하는 과정에선 소수의 주민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폐교의 경우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멸위기지역에서 만난 한 교사는 “경제논리로만 보면 사람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있다”며 “농촌 지역이 다른 도시 지역보다 낙후됐다고 교육받을 권리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대학 폐교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지속 가능성이 없어진 대학들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폐교되고 있으나, 지역사회에선 “대학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폐교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도 최근엔 대학 폐교에 따른 부작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대학을 지역혁신 및 지역발전을 위한 거점으로 육성할 방침”이라며 “대학 폐교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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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인구론]어쩌다 자식은 부모에게 행복 아닌 ‘짐’이 되었나

임아영·박은하 기자 

출산부터 취업까지 돈에 눌린 양육
남는 건 자녀와 나의 ‘불안한 미래’
차라리…부모가 되지 않는 선택

그래픽 | 윤여경 기자 tigeryoonz@kyunghyang.com사진 크게보기

그래픽 | 윤여경 기자 tigeryoonz@kyunghyang.com

주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몇백만원짜리 유모차를 태우고, 아이에게 좋다는 것을 찾아 먹이고 입힌다. 유아기 때부터 취업준비생 때까지 최소한 남보다는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수천만원의 사교육비를 댄다. 그래도 자녀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아이 키우기에 올인한 나의 미래도 불안하다. 아이 키우는 데 돈은 필요조건일 뿐이지만, 아이 키우기의 8~9할을 가족 책임으로 여기는 사회에선 돈의 무게가 다른 조건을 압도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돈으로 다 되는 것도 아닌데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넘어오니 결국 돈 문제만 크게 부각된다. 자녀 가치에 대해 생각할 여유는 없다. 쏟아부었는데 아이의 미래가 불안하다면 부모는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 부모가 되지 않는 것이다.

■ 아이는 줄었는데 상품은 늘어났다  

김미희씨(34·가명)는 지난해 8월 첫아들을 낳고 사진 공유 SNS인 인스타그램에 아들 계정을 만들었다. 친구들이 아기의 성장 과정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아이 크는 모습을 따로 기록해주고 싶었다. 아이 계정을 만드니 ‘우리 소통하고 지내요’라는 댓글과 함께 모르는 사람들이 팔로를 하기 시작했다. 광고 업체들이었다. 찜찜했지만 한편 익숙했다. 정보가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김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또래들이 아이를 기르는 모습을 엿보며 ‘육아 아이템’을 자연스럽게 습득해갔다. 보습에 좋은 로션, 씻기기 편한 욕조부터 몇백만원짜리 유모차까지 절로 눈길이 갔다. 많은 육아용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물려받았지만 빠진 것이 있으면 찾게 됐다.

인스타그램에는 우리 사회 ‘부모 되기’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소비 활동이 게시된다. 육아 관련 해시태그(정보 검색을 쉽게 해주는 메타데이터 태그)를 검색해보면 15일 현재 #맘스타그램(1353만여개), #육아스타그램(2188만여개), #딸스타그램(1684만여개), #아들스타그램(1406만여개) 등이 무수히 쏟아진다. 인스타그램에서 엄마들의 모습을 연구한 강혜원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은 “인스타그램에서 모성 실천은 육아 지식 생산자와 습득자의 경계, 정보와 광고 사이의 경계, 기록과 전시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특징을 보인다”며 “소비문화가 진화하면서 얼마를 쓸 것인지, 소비문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해지고, 엄마들이 할 일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 자녀가 성인 돼도 끝없는 ‘부모 노릇’…청년 격차 더 벌린다 

아이 키우기에 정말 필요한 것 

본격적으로 육아 시장이 열리는 것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다. 임신 확인을 위해 산부인과에 가면 연계 조리원, 성장앨범 촬영 업체들을 접하게 된다. 만삭사진, 50일 사진을 무료로 촬영해주면서 성장앨범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식으로 업체들은 진화했다. 초보 엄마들이 육아와 상품 정보가 뒤섞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곳은 조리원이다. 김씨도 몬테소리 수업과 분유 업체 수업을 참관했다. 아기 울음소리 익히는 법을 배우며 분유 상품을, 아기 모빌을 만들며 몬테소리 교재를 자연스럽게 접했다.

개인이 육아 책임 모두 떠맡으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돈 쏟아부어
신조어 ‘식스 포켓’도 이젠 옛말 
이모·삼촌까지 지원 ‘에잇 포켓’

백일잔치, 돌잔치도 이벤트가 되었고 상차림, 답례품 모두 상품으로 거래되고 있다. <엄마의 탄생>을 쓴 여성학 연구자 김향수는 “전통적 통과의례인 돌잔치 준비나 진행을 전문업체의 서비스가 대체했다”며 “성장앨범과 같은 상업 의례들이 새로운 관습으로 자리 잡으면서 상업 의례들을 비교해 현명하게 소비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회적 압력이 생겨났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왜 상품의 개수는 계속 늘어날까. 유아용품 시장은 1990년 5000억원 수준에서 2018년 3조8000억원 수준에 이르렀다. 아이가 귀해지니 아이 하나를 위해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6명이 주머니를 연다는 ‘식스 포켓’이라는 신조어가 나왔고 이제 이모, 삼촌까지 붙어 ‘에잇 포켓’이 됐다.

■ 0세부터…뒤처질까 두렵다 

‘놀이 형태를 띤 교육’은 0세부터 시작된다. 백화점·마트 문화센터에서는 0~3개월짜리에게 하는 베이비 마사지 수업, 6개월 내외 영아들의 오감 자극 활동 등부터 찾을 수 있다. 사교육의 시기는 계속 내려와 유아 시장도 장악했다. 최근 전국보육실태조사를 보면 어린이집·유치원 시기 특별활동 프로그램 수는 평균 2.4개로 나타났다. 영어학원 형태나 놀이학교, 체육센터 등 기관을 다니는 아이들은 월평균 43만4300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고 영어학원 비용은 가구소득 대비 11.8%를 차지했다. 기관 이용으로 인한 비용이 부담되는 편이라는 의견은 53.5%, 매우 부담된다는 의견은 20.6%로 나타났다. 영아의 6.7%, 유아의 24%가 시간제 학원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시간제 학원 중 부모 부담 비율은 영어가 11만9200원으로 가장 높았다. 

딸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박미경씨(39·가명)는 영어학원이 고민이다. 유아기에는 영어유치원을 보내거나 학습지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왔지만 초등학교에 가서는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구글 번역, 네이버 파파고 서비스가 나왔는데 영어학원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싫지만 ‘여기는 한국이니까’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부모들은 다 아이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해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싶어 하죠. 임금 격차가 크고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사회라는 것을 부모가 알고 있는데 그럴 수 있나요?”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해지는 것이다.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쓴 사회학자 오찬호는 “사교육의 효과는 부귀영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라고 말한다. “헬조선에서 ‘평균치’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우니 사교육을 멈출 수 없다. 모두가 멈추지 않으니 모두가 시작점을 앞당긴다”는 것이다. 오찬호는 ‘사교육 없이 평범하기조차 힘든 세상은 누가 만들었나’라고 묻는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9개국 대상 자녀가치 국제비교 조사에서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는 부모에게 기쁨을 준다’는 긍정적 답변도 많았지만, ‘부모의 자유를 제한한다’ ‘재정적 부담이 된다’는 부정적 인식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가치가 서양 사람들과 다르다”며 “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귀한 자식을 얼마나 잘 가르쳐서 사회에서 성공시킬까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녀와 함께하는 현재의 기쁨보다는 자녀의 앞날, 일생을 고려하면서 출산을 결정하다 보니 아이 낳기가 점점 힘들다는 말이다.

1명당 사교육비 6427만원 써야 
겨우 ‘보통사람’ 수준 될 수 있어
대학 입학 후엔 취업 활동 지원
 

신한은행이 2018년 3월 만 20~64세 금융거래 소비자 2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보면 자녀 1명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드는 교육비는 총 8552만원이다. 사교육비가 6427만원으로 75.1%를 차지했다. 대학 등록금까지 고려하면 다른 비용은 뺀 교육비로만 1억원 이상 든다는 말이다. 월평균 소득이 1000만원 이상인 가구의 자녀 1인당 총교육비는 1억4484만원으로 300만원 미만인 가구의 교육비 4766만원보다 3배나 많았다. 

■ 부모들이 책임지는 기간 점점 늘어 

대학 입학 후엔 오히려 본격적으로 돈이 들어간다. 대학 등록금, 자녀 용돈 및 생활비부터 취업이 늦어지면 취업 준비를 위한 활동도 지원해야 한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지고 청년이 갈 만한 일자리가 적으면 결국 부모 부담이 되는 구조다. 취직한다고 끝도 아니다. 결혼이 남았다. 신혼부부들이 자기 힘으로 구하기 힘든 서울의 집값은 결국 부모 부담이다. 김윤희씨(56·가명)는 딸이 대학 졸업 후 취업하는 데까지 3년이 걸렸다. 3년 동안 매달 용돈을 주고 토익학원을 다녀야겠다고 하면 학원비를 내줬다. “취업이 늦어졌는데 취업한 곳도 너무 월급이 적어 가끔 제가 도와주고 있어요. 아직 결혼도 남았는데 결혼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이에요. 서울 아파트가 몇억이라는 얘기 들으면 기가 질려요. 부모 노릇은 언제 끝나는 건가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상장사 571곳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일대일 전화조사를 한 결과 2018년 상반기 대졸 신입직원 최고령은 30.9세, 최저령은 24.4세로 집계됐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30세를 넘은 신입사원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인크루트 조사 결과 10년 사이 30세 이상 ‘늦깎이’ 신입사원 비율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취업이 늦어지니 ‘캥거루족’(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는 청년)과 ‘부메랑 키즈’(대학·사회생활 등으로 수년간 부모 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청년)도 늘고 있다. 2018년 인크루트가 성인 남녀 3086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정신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 두 가지 모두에 대해 ‘독립 전’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18.2%에 달했다.

청년들의 경제적 독립, 결혼도 모두 지연되고 있다. 2017년 초혼 연령은 남자 32.94세, 여자 30.24세로 1997년 남자 28.59세, 여자 25.71세에 비해 늦어졌다. 한국에서 성인기 이행의 비용은 가족이 책임지는 구조로 부모의 부양을 받는 청년 집단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의 양육 부담도 늘어난다는 의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 결과 국민건강보험 가입자 중 25~34세 청년이 부모 피부양자로 있는 비율은 2002년에서 2015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5~29세는 2002년 25.3%였지만 2015년 30%로 늘었고, 30~34세는 2002년 9%에서 2015년 12.8%로 늘어났다. 

■ 부모 자산으로 벌어지는 격차 

한국 사회는 자녀 부양 책임의식이 높다. 2015년 가족실태조사를 보면 ‘부모는 자녀의 대학교육비를 책임져야 한다’에 49%가, ‘자녀가 취업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에 33.7%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자녀 부양 책임의식은 역으로 부모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격차를 만들고 있다. 김수민씨(33·가명)은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아내는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고 김씨도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구청 산하기관에서 일하면서 세전 230만원 정도 번다. 대전에 사는 김씨 아버지는 일용직으로 용접 관련 일을 하고 어머니는 일을 하다가 그만뒀다. 대학 때부터 과외를 해 자취 비용을 벌었다. 아내도 스무살 때부터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조달하고 생활비는 스스로 벌었다. 지금은 은행의 전세 대출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 중 부모 자산이 넉넉한 경우를 보면 부러움을 느낀다. “주변에 드라마 <SKY 캐슬> 같은 집안이 많은데 63빌딩에서 결혼식 하는 걸 보면서 부러웠죠. 원룸 구하러 다닐 때 빌라 건물주가 1988년생인 것도 봤어요. 그런데 계약은 50대인 아주머니랑 한단 말이에요. 88년생의 엄마겠죠. 속으로 ‘서류상 건물주’는 좋겠다고 생각하죠.” 김씨는 퇴근하면 오후 7시부터 3~4시간 동안, 새벽 6시30분에 일어나 2시간 정도 공부한다. 올해 꼭 합격하고 싶다. ‘억울함’은 김씨의 동력이다. “ ‘라이선스 사회’잖아요. 한국 사회에 억울함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해요. 자산에 따른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전문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해요.” 아이는 2명 낳는 게 목표지만 당분간은 아이 낳는 것을 미루고 있다.

이지현씨(34·가명)의 경우 부모의 빚이 짐이 된 경우다. 남편 부모가 IMF 경제위기 때 빚보증 서준 게 잘못돼 채무 문제가 터질까봐 혼인신고도 안 하고 있다. 회사원인 이씨의 소득이 보험판매사인 남편보다 더 많다. 두 사람 소득을 합치면 월 500만원 정도. 10년 동안 연애한 사이지만 남편의 채무 문제를 전부 알지는 못했다. 결혼하고 더 알게 됐고 출산 계획은 미루게 됐다. “남편의 채무는 제 선택이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감당할 부분에 2세까지는 안 들어 있는 듯해요.”

실제 부의 대물림을 목격할 때 속상하다. “시댁에서 집을 해줘 적어도 5억~7억원 하는 서울 역세권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 출발선이 이미 다르게 되는 거죠.”

부모 자산이 청년 세대의 격차를 만들고 가족이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도구가 됐다. 201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한국노동패널조사 9차 연도(2006)부터 18차 연도(2015) 자료를 통해 부모와 떨어져 사는 19~39세 미혼인과 이들의 부모를 분석한 결과 부모와 자녀 모두 경제적 지원을 주고받는 경우는 다른 집단에 비해 정규직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대 간 자원 이전이 계급적 위치를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모 자산 따른 격차 대물림 막고 
아이 키우기 불안감 해소하려면
개인 단위로 복지 제도 다시 짜야
 

취·창업 준비활동 비용 지원 여부에서는 현재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영향을 주는 변수로 나타났고 하층에 비해 중간층과 상층일수록 부모가 경제적으로 더 많이 지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고교 졸업자보다 대학 졸업자가 취업 지원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계층은 자녀의 소득에 일관되게 정비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학비 지원의 경우 자산 5억원 이상일 때 학비를 지원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취·창업 준비활동 비용 지원 여부에서는 현재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영향을 주는 변수로 나타났고 하층에 비해 중간층과 상층일수록 부모가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격차 확대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성인기 이행까지의 지원 구조를 총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족이 아니라 개인 단위로 복지 제도를 다시 짜야 한다”며 “20대가 되면 부모의 경제 지원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북유럽처럼 가야 부모 자산 격차로 인해 청년들 격차가 생기지 않고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싶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부모 지원 없이도 홀로 서도록…유럽 주요국, 20대 청년층까지 포괄하는 보장제도 갖춰
 
유럽의 청년보장 제도
 

교육지원에 생활비·주거지원까지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교육에 전념하도록 하는 게 핵심
영·유아 지원 머무른 한국과 대조
 

 
 
초저출산 현상은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양육부담의 결과이다. 한국 사회도 아동·청소년 지원정책이 틀을 갖춰가고 있지만 주로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가족지원정책의 틀에 머물러 있다.
 
청년은 정책의 대상에서 소외돼, 부모의 경제적 지원에 의존하거나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교육·취업 기회가 불평등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유럽이 대학생과 직업을 구하지 못한 20대 청년층까지 포괄하는 보장제도를 폭넓게 갖춘 것과 대조적이다. 

유럽의 청년보장제도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있는 ‘성인 이전의 존재들은 개인으로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정신을 근거로 한다. 유엔헌장 등에서 아동은 18세까지로 규정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시기가 늦어짐에 따라 20대 후반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정책이 만들어지는 추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청년실업률이 급상승하면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각국의 현실에 맞는 청년보장제도를 만들 것을 권고했다. 청년보장제도는 교육지원과 공공부조, 고용지원, 주거지원, 의료지원으로 구성돼 있다. 교육지원에는 생활비와 주거지원까지 포함된다. 공공부조는 실업급여와 장애·빈곤 청년에게 주는 지원이다. 부모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불안에 내쫓겨 질 낮은 일자리로 섣불리 취업하지 않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핀란드에서는 교육비가 무료이며 17세 이상 학생에게 학업보조금이 부모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독일에는 ‘바펙’이란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 지원제도가 있다. 고등학생까지는 전액 무상지원이며, 대학생은 반액만 상환한다. 대졸 취업준비생도 12개월간 저리융자 형태로 바펙을 이용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주거급여 대상자의 경우 사회주택과 임대료 보조금을 지급하며, 연간 소득 1만5000유로(약 1918만원) 이하 저소득층의 경우 주택 구입 시 국가가 40%, 50%, 60%씩 지원한다.
 
단 한 번도 직장생활 경험이 없거나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사회초년생을 위한 생계지원도 발달해 있다. 독일, 핀란드는 직장생활 경력이 없는 취업준비생을 위한 실업급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니트(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닌 청년)가 구직활동에 뛰어드는 것을 지원하는 수당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21~26세는 취업했더라도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거나 사회에 안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수당을 지급한다.
 
한국에서 근로장려금이나 실업급여는 직장 경력이 있어야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직업훈련 보조금인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은 대학 4학년(전문대 2학년)에게만 적용된다. 올해부터 19만명을 대상으로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지급이 시작되지만 지급 요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건강보험료 기준 소득 인정액이 중위소득 120% 혹은 150% 이상 가구에 속한 청년은 제외되는데 부모가 서울에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소지가 크다. 1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정책이 부족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결국 미취업 청년 대다수는 부모의 뒷바라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부모가 청년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구조는 정책 설계에도 어려움을 준다. 형편이 어려우면 취준생 기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라 좋지 않은 일자리, 비정규직으로 취직하기 때문에 오히려 취업 준비기간이 짧다. 반대로 대학 때 전폭적으로 지원받아 바로 취업되는 경우 등을 보면 계층 간에 취업 준비기간이 제각각이다. 부모의 계층이 높을수록 취업 준비기간이 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집안 사정이 안돼서 바로 취직해 구직활동지원금을 못 받는 경우도 생겨난다. 신혼부부 주거지원도 개인 소득을 근거로 보는데 부모 자산을 받는 경우에 역전될 수도 있다. 가령 부부가 합쳐 연봉 8000만원을 받으면 신혼부부 주거지원을 못 받지만 부모가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대학원생 부부는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 청년보장제도의 기본은 국가와 시민 간의 계약”이라며 “청년 개개인에 대한 보편적 지원이 한국에서도 확산되려면 청년의 교육과 훈련에 대한 지원은 공공성을 위한 일이라는 의식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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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인구론]“천재도 울리는 AI시대, 재능 죽이는 사교육은 왜 할까요”



‘다른 인생 전략’을 찾아서

지난 4일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서울 오디세이학교 수료생인 양연주양, 안혁군(왼쪽부터)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 소장은 사람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회, 양양과 안군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알파고에 처음 패한 날. 언론 헤드라인은 이렇게 장식됐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 알파고는 거침없는 행보 끝에 세계랭킹 1위였던 중국의 대표 바둑기사 커제 9단까지 3 대 0으로 물리쳤다. 커제 9단은 알파고와의 마지막 대국 중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다. 

“커제의 울음은 사람의 두뇌가 인공지능에 패배한 상징적인 장면이 될 거예요.”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45)은 그 장면을 보고 며칠간 멍하게 보냈다. 이어 그해 전 소장은 모교인 대구대에 강의를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후배들이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모습에 “우리 때보다 더 처참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방 사립대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면서요. 기껏 20대 초반인 친구들이 그렇게 위축돼 있는 게 맞는 시대냐고요.” 

후배들에게 성공 모델이 있다고 소개하고 싶었다.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전국 평생학습관에서 요청이 왔고 강의 횟수가 70회를 넘어서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 아이의 미래는>이라는 책을 냈다. “교육 전공자가 아니에요. 내 얘기를 한 것뿐이죠. 저도 학원 엄청나게 다녔지만 하나도 안 남았거든요.”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못했지만 법학과에 진학해 ‘법의 이해’ 수업을 들으면서 잘하는 걸 알게 됐다.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개하는 시험이었다. A+를 받았다.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책 쓰는 게 꿈이었고 지금은 책을 공저까지 6권 냈으니 꿈을 이룬 거죠.”

그는 2002년 참여연대에서 처음 정보공개운동을 시작했고 2008년 정보공개 및 기록관리 전문 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만들었다. 2015년에는 협동조합 ‘알권리연구소’를 출범해 현재 대통령기록관리 전문위원, 청와대 정보공개 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민단체를 스타트업에 비유한다면 2개의 스타트업을 만들어냈고 성공시킨 셈이다. 

■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라” 

두 아들 키우는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공부로 상처주지 말고 아이들이 무언가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야
다르게 산다는 자부심만 있으면 늦게 일 시작해도 재밌게 살 수 있어


전 소장은 16세, 11세 아들 둘이 있지만 사교육을 거의 시키지 않는다. 작은아들이 태권도학원을 다니는 정도다. 

공부는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없으면 학원을 아무리 보내도 안 한다는 것이다. “공부로 상처주지 말고 무언가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때까지 아낀 돈을 줘야겠다고 생각 중이죠.” 한 달 학원비 70만~80만원을 1년 모으면 1000만원이다. 5년만 학원에 안 다녀도 5000만원이 생긴다. “아이들 공부시키는 목적이 재능을 발견하는 것인데 우리는 재능을 죽이는 데 돈을 쓰고 있는 거예요.” 

알파고가 이세돌을 물리칠 때 깨달았다. “그전에는 강남의 유치원 보내고 학원 보내고 차로 데려오고 똑같았어요. 한 달에 70만원 넘게 썼죠. 2016년부터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게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도 안 가도 된다고 말해줬습니다. 서른살 될 때까지는 기다릴 생각입니다. 저도 스물세살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공부 안 하고 장사해도 되고요.”

큰아들은 집 앞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밝혔다. “저는 그게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구나’라는 불안이 에너지가 되겠죠.” 

스스로 동기부여가 안되면 어떤 공부를 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초·중·고, 대학교까지 한 번도 자기 인생을 실존적으로 고민해보지 않는다. ‘유튜버’라는 직업을 몇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있었을까.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및 취업준비생 4147명을 대상으로 ‘미래에 사라질 직업’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1위는 번역가(31%)였고 2위는 계산원(26.5%)이었다. 5위는 비서(11.2%), 8위는 약사(9.3%)로 조사됐다. “제가 어릴 땐 말 잘하는 아이는 주의가 산만하다고 했어요. 지금은 말 잘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이 있죠. 저도 대중 강연을 하면서 느꼈어요.”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학교 교육의 80%는 앞으로 필요 없는 교육이 될 것이라고 본다. 대학도 구조조정되고 있다. 

전 소장은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것, 사람과 교감하고 나누는 능력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집 주위에 있는 평생학습센터에 등록하라고 조언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20세까지 교육시켜서 60세까지 일을 시키는 게 목표였죠. 그런데 학교 지식 사용기간이 10년도 안돼요. 저는 마흔 넘어서도 책 읽는 사람들이 인생을 지배한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놀고 나이 들면서 더 공부해야 해요.” 인생은 ‘맞고 틀리고’가 없다. ‘다른 것’이다. “다르게 산다는 자부심만 있으면 얼마든지 재밌게 살 수 있어요. 마흔 정도에 본격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40부터 80까지 일하면 되니까 청년들에게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실패할 기회가 있어야죠” 

서울 오디세이학교 수료한 양연주양·안혁군 

사람을 등급화하는 학교는 싫어… 교육은 실패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사회가 말하는 길을 못 따라갈까 걱정하지 않고 내 길을 찾는 법 배워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나서는 청소년들도 있다. 안혁군(17)과 양연주양(17)은 지난해 12월 서울 오디세이학교를 수료했다. 오디세이학교는 중학교 3학년 졸업생을 대상으로 자유학년제를 운영하는 1년 과정의 서울 공립학교다. 덴마크의 ‘애프터스콜레’를 본떠 만들었다. 애프터스콜레는 덴마크 의무교육인 9학년 졸업 후 10학년 진학 전 학생들이 1~2년 정도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학교다. 오디세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온갖 위협과 유혹을 물리치며 난파와 표류의 고비를 넘기고 고향으로 돌아온 영웅 오디세우스의 항해처럼,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아가는 ‘교육원정대’를 뜻한다. 

일반고나 자율형공립고에 학적을 둔 상태에서 1년간 배움을 거친 후 원적 학교 1학년 또는 2학년으로 진학할 수 있다. 하자센터, 꿈틀, 서울혁신파크, 민들레 등 오랫동안 교육의 본질을 고민해온 민간 대안교육기관들이 협력운영기관으로 참여한다. 학생들은 이 4곳 중 원하는 곳에서 수업을 받는다. 1년에 90명 선발한다. 

양양은 중학교 때 사람을 등급화하는 게 싫었고 공부를 왜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중3 때 성적이 잘 나오니까 친구들이 너는 시험 못 봐도 되지 않느냐고 묻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어차피 오디세이학교 갈 건데 학교 활동 열심히 한 게 아깝지 않으냐는 것이었다”며 “다들 학생회·동아리 활동을 스펙 쌓으려고 한 건데 저는 혼자 거기서 놀았구나 싶었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오디세이학교를 추천하지 않았다. 안군은 “3학년 때 학생회장을 했다. 스펙을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려는 의미가 컸는데 오디세이학교 간다니까 선생님들이 많이 반대했다”고 말했다. 

안군이 오디세이학교를 알게 된 것은 중3 때 오디세이학교 체험의날을 다녀와서다. 선생님 중 한 명이 말했다. “100년의 인생 중 한줄기 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1년 정도는 아무것도 못 찾더라도, 놀아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양양은 “다들 그저 안정적으로 대학 가면 되겠지 생각하는데 오히려 교육은 실패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오디세이학교에서는 사람과 세상을 넓게 보는 법을 배웠다. 오디세이학교는 분절적 지식 체계에서 벗어나 통합적으로 배우는 ‘넘나들며 배우기’,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배우는 ‘실행하며 배우기’, 협력과 상호작용을 통해 배우는 ‘더불어 배우기’, 노작과 수행으로 배우는 ‘몸으로 배우기’로 교육과정이 구성돼 있다. 양양은 서울혁신파크에서 전기와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제품들을 만드는 ‘비전화(非電化) 공방’ 운영진을 만난 연계수업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함께 카페 벽면을 흙으로 메우는 작업을 했는데 손으로 하는 것의 즐거움, 같이 노동을 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느꼈다. “다 같이 쪼그려 앉아 몇 시간씩 흙을 바르고 있는데 뭉클한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미래가 명확하진 않다. 입시는 여전히 숙제다. “오디세이학교를 마치면서 선생님이 수능이나 입시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수단으로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열심히 하면 재밌는 걸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뜻이었죠. 기존에 사회가 말하는 길을 못 따라갈까 걱정하지 않고 제 길을 찾으러 간다고 생각하려고요.”(안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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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1. 인구 감소, 위기인가 기회인가 
2. 다 인구 때문일까
3. 세대게임을 넘어 
4. 우리 모두는 일할 수 있을까
5. 아이 키우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6. 지방은 지속가능한가
7. 우리는 이방인을 품을 수 있을까 
8. 돌봄은 어떻게 재구성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