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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못한다고 혼내지도 못하나?"…속끓는 상사들.가중되는 기업압박! 직장 내 괴롭힘 방지法 내달 16일 시행…기업들 전전긍긍

Bonjour Kwon 2019. 6. 24. 08:52

2019.06.24

 

특정직원 집중해 지켜보기 등

괴롭힘 유형 16개 세워 적용

 

"정신적인 고통 줬다면 괴롭힘"

모호한 기준 탓에 혼란 불가피

 

기업들 "법 취지 공감하지만

노무 리스크도 커져" 우려

 

 

A회사에 다니는 직원 B씨는 회사 선배 C씨로부터 저녁 술자리를 만들라는 요구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회식 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아직도 날짜를 못 잡았느냐"며 호통이 날아오기 일쑤다.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자 급기야 "사유서를 써와라"는 식의 말을 반복하면서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압박을 받아 심리적 고통을 호소한다. 하지만 앞으로 이 같은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된다. 술자리를 강요하고 불응하는 경우 경위서를 쓰는 행위는 사회 통념상 정당하지 않은 행위이고, 피해자가 강요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LG 등 주요 기업들이 일명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 3주 정도를 앞두고 임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벌이거나 상담센터를 신설하고 취업규칙을 손보는 등 대대적인 조직문화 개선에 나섰다. 고용부는 괴롭힘 유형 16개 예시를 공개했다. 하지만 `괴롭힘`에 대한 일부 규정·정의가 애매모호해 법 시행 초기 인사·업무에 대한 불만 표출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염려도 나온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직장 내 괴롭힘이 잇달아 사회적 물의로 번지자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법안이었다. 이 법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다음달 16일부터 시행된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경우 사용자는 즉시 이를 조사하고 근무 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했음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기업들은 법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향후 노사 갈등과 경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매뉴얼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의 기준이 모호해 초기 현장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법이 인사와 업무 등에 대한 불만 표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게 현장의 염려다.

 

특히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저성과자에 대한 문제다. 성과가 떨어지고 실수가 잦은 직원에게 상급자가 반복 수정을 시키거나 질책을 하는 경우 근로자가 문제 제기를 하면 괴롭힘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고용부 매뉴얼은 `업무 평가나 승진·보상 과정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능력·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부서 이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정당한 이유 없이 훈련, 승진, 보상, 일상적인 대우 등에서 차별`도 괴롭힘으로 발전 가능한 행위로 규정한다. 그러나 `업무상 적정 범위`에 대한 판단과 `정당한` `차별` 같은 추상적 개념은 법적 분쟁 소지가 다분하다.

 

또 `괴롭힘 신고`가 악용돼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염려도 있다. 현재와 같이 괴롭힘 금지법이 없는 상황에서도 부당 징계 등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는데, 법이 시행되면 업무를 진행하고 성과를 끌어내기 위한 상급자의 조치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서는 `행위자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 행위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거나 근무 환경이 악화됐다면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D기업 인사담당자는 "의도적 괴롭힘과 저성과자에 대한 지도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기준을 정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에 재직 중인 전 모씨(31)는 "괴롭힘의 기준이 불명확하면 실제 피해를 입더라도 신고를 망설일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신고·처리 과정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점도 제기된다. 신고 접수와 피해자·가해자 조사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은 노사협의회 같은 곳에서 최소한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지만 문제는 소규모 업체다. 이러한 조직 자체가 없는 3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누가 어떻게 신고를 받고 처리해야 하는지 현장에서 혼란이 큰 상황이다.

 

[전경운 기자 /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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