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2
세탁조 클리너·요괴라면 등
기획사 주도 히트상품 늘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세탁기 통(세탁조)을 분해해 보여주는 동영상이 소비자 시선을 사로잡았다. 빨래를 깨끗하게 해주는 세탁기 통의 더러움을 보여주는 영상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세탁조 클리너로 청소한 후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해진 모습에 놀랐다. 입소문이 퍼졌고 세탁조 클리너는 빅히트 상품이 됐다. 이 상품을 기획해 동영상을 제작하고 판매한 회사는 블랭크코퍼레이션. 자체 리빙 브랜드 `공백 0100`표 세탁조 클리너를 무려 400만개 넘게 팔았다.
덕분에 `SNS 대란템`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블랭크는 제조업체나 대형 유통업체가 아닌 마케팅 전문 기획사가 젊은층 마음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방식으로 히트 상품을 탄생시키는 유통 패러다임이 변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창업 3년 된 기업이 온라인 방문판매(DD2C·Digital Direct to Consumer) 콘셉트로 `콘텐츠 커머스`라는 장르를 본격 펼쳐 마치 콘텐츠를 소비하듯 쇼핑하는 젊은층을 사로잡아 연달아 히트 상품을 내놨다. 과거에는 제품력에 기반한 매스마케팅이 히트 상품 공식이었다면 기술이 평준화되고 온라인 구매가 확산되는 시대에는 고객의 숨은 니즈를 빠르게 읽고 대응하는 상품을 어떤 패키지에 담아 어떤 이야기를 통해 소개하는지가 중요해졌다. 유통업계에서는 SNS를 매개로 동영상 등 콘텐츠를 통한 커머스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이를 콘텐츠 커머스 혹은 미디어 커머스라 부르며 미래 유통 모델로 주시한다.
2017년 소프트뱅크벤처스 투자를 받은 블랭크는 작년 8월 홍콩 대만 싱가포르 법인을 세우고 진출한 지 5개월 만에 매출 52억원을 올렸다.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해 `디지털 네이티브`로 통하는 10·20대 MZ(밀레니얼·Z)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다른 나라 젊은층과 동질적인 문화를 누리다 보니 한국 히트 상품이 해외에서 사랑받는 데도 시차가 없어졌다. K팝이 인기를 얻듯 한국 상품 영상이 SNS를 타고 콘텐츠처럼 소비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떡을 늘려 먹음직스럽게 보여주는 동영상으로 새로운 디저트라는 것을 인식시킨 `청년떡집`이나 1년 반 만에 85만개를 판 `요괴라면` 등 마케팅 집단이 히트작을 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에 비해 콘텐츠 소비가 왕성하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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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베개·요괴라면 히트시킨 상품기획사…`유통괴물`로 부상
기술 평준화 시대에는
상품기획이 경쟁력 좌우
1020세대 젊은 감성으로
SNS서 이색마케팅 열풍
◆ 유통 기획사가 뜬다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감성 편의점 콘셉트 `고잉 메리` 매장에 `요괴라면`이 진열돼 있다. [한주형 기자]
서울 종각에서 광화문쪽으로 걷다보면 `고잉 메리` 1호 매장이 보인다. 이곳은 감성편의점·분식점을 표방한 새로운 콘셉트 매장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불과 1년8개월 만에 무려 85만개(지난 7월 말 기준)나 팔린 `요괴라면`이 진열돼 있다.
대형 식품제조사나 유통업체 도움 없이 SNS만으로 히트상품에 올랐다.
이 상품과 매장을 기획한 옥토끼프로젝트를 이끄는 여인호 대표는 CJ제일제당과 오뚜기, 코카콜라 등을 고객사로 두고 제조업체와 유통 채널 사이에서 도매, 물류관리, 마케팅 등을 연결하는 기획사 겸 대행사 네오스토어도 함께 경영한다. 맛집 블로거 출신 여 대표가 디자이너, 외식업계 대표 등 어벤저스급 지인들과 결성한 `옥토끼프로젝트` 첫 제품이 바로 `요괴라면`이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10을 출시할 때 요괴라면 후속작인 `갤럭시 라면`도 탄생했다.
여 대표는 "초연결사회에서 상품 유통 방식이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기획된 첫 상품이 히트작"이라며 "고객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매개체가 우연히 라면으로 개발됐을 뿐, 앞으로 더 새로운 제품을 기존 기업들과 손잡고 기획하고 오프라인 매장은 일종의 미디어 플랫폼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달 인사동에 고잉 메리 2호점을 여는 등 오프라인 미디어도 확장할 태세다. 블랭크와 네오스토어 같은 기획사들 등장은 Z세대나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신세대의 취향과 미디어 환경 변화가 밀접하게 연결된 결과물이다. 고객의 숨은 니즈나 트렌드 변화를 빠르게 읽고 이에 대응하는 상품을 발빠르게 기획·제조해 1020세대가 빠르게 반응할 만한 마케팅으로 새로운 브랜드와 상품을 확산하는 방식이 나왔다.
유통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업 등장이 미디어 커머스 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초기 과정이라 해석한다.
강지철 베인&컴퍼니 파트너는 "디지털 경제 전환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미디어와 커머스 영역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는 트렌드가 일어나고 있다"며 "신세대가 익숙한 동영상(비디오) 미디어를 커머스로 제대로 활용하는 업체가 유통시장도 장악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많은 기획사 모델이 히트 상품을 몇 개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속적인 성공 능력을 입증하지는 못한 상태다. 만약 제대로 키우는(scale up) 회사가 등장한다면 유통업계 판도를 뒤집을 수 있고,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블랭크는 본격 미디어 커머스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으며 2017년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100억원 투자도 받았고 내년 상장을 목표로 한다. 남대광 블랭크 대표(34)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 영상이라는 콘텐츠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솔루션을 제안하는 일"이라며 "영상으로 소비자를 찾아가 설득하는 작업을 하는 방식이어서 스스로 `디지털 방문판매업`을 한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일상생활에서 소비자들이 쉽게 지나치거나, 놓칠 수 있는 `결여(공간)`를 채워주는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자체 브랜드 약 20개에서 250여 가지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티라미슈크림떡` `인생떡` 등 신개념 디저트 떡으로 인기를 모은 `청년떡집` `우주인 피자`도 마케팅 기획사 양유의 작품이다. 이 회사는 `비타500` `헛개수` `컨디션` 등 신개념 음료 마케팅에 성공을 거둔 이력에 신제품 개발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 출신들이 가세해 사업을 다각화했다. 이 회사는 제조사들과 조인트벤처를 결성해 상품력에 집중하는 전략을 고수하는 게 특징이다.
첫 히트상품 `청년떡집`도 전통 있는 떡 제조사 영의정과 제휴해 만들었고 전담팀이 관리한다. 양유 관계자는 "작년 5월 론칭 이래 초기부터 매달 매출이 2배씩 뛰었다"며 "온라인에서 시작했지만, 홈쇼핑을 거쳐 올해 5월 코스트코 디저트 섹션에 처음 입점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5개 브랜드를 유지하되 제품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민경선 커뮤즈파트너스 대표도 과거 `가누다 베개` 등 중소기업 아이디어 상품 마케팅에 성공한 경험으로 중소기업 제품을 인큐베이팅하는 모델로 발전시키다가 3년 전부터는 아예 상품기획까지 맡게 됐다. 탈모 전문 브랜드 `자올`의 샴푸와 부스터는 첫 제품 출시 2년 반 만에 누적 50만개나 팔렸다.
민 대표는 "트렌드만 보고 재빨리 제조·판매하는 모델은 지속가능성이 없다"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일종의 카테고리화되는 과정에서 브랜딩 비용을 많이 쓰기 때문에 기능이 뛰어난 제품을 선택하는 데 공을 많이 들인다"고 밝혔다. 특히 믿음직한 화장품 원료 업체 덕분에 마스크팩과 앰풀 등 기획력과 스토리로 차별화되는 화장품 업계가 대표적이다.
고건희 몬코 대표(28)는 저평가된 제품을 발굴해 키우고 유통하는 사업을 아예 창업했다. 고 대표는 "저평가된 제품을 발굴해 유통하는 게 사업모델"이라며 "기존 제조사들이 제품 개발에만 집중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미지를 풀어 판매할지 도와준다"고 말했다.
몬코 덕분에 음식물처리기로 연매출 5억원을 올리던 한 중소기업은 지난해 매출 124억원 회사로 성장했다. 소비자와 공장 직거래 플랫폼 `쇼공`을 출시한 것도 거품을 없애고 제품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25개 공장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제품 체험단을 운영하고 제조 과정을 촬영해 고객 선택을 돕는 방식이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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