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일할 자유를 뺏지 말라
박동민 기자
입력 2019.11.11 0
"주52시간 근무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건가요. 기업인도 근로자도 소상공인도 다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최근 부산에서 열린 매경 원아시아 포럼에 참석한 부산·울산·경남 지역 기업인들은 격앙돼 있었다. 그들은 정부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주장했다. 행사에 참석한 기업인 60여 명에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경제 문제를 물어본 결과 주52시간 근무제 확대를 꼽았다.
한 기업인은 "99%가 중소기업인 나라에서 당장 내년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 직원을 더 채용하든지 일을 줄여야 하는데, 하필 경기가 최악일 때 이 제도를 확대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산 소재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 모씨는 "야근이나 특근을 못하면 당장 월급이 20~30% 줄어드는데 매달 들어가는 돈은 정해져 있어 줄어든 월급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고민"이라며 "왜 나라에서 일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일도 못하느냐"고 했다.
주52시간 근무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에 만난 부산 자갈치시장이나 국제시장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로 지난해 7월부터 도입된 주52시간 근무제를 꼽았다. 32년간 국제시장에서 타월을 판매하고 있는 이 모씨는 "직장인들이 특근이나 야근을 못해 월급이 줄어 주머니에 돈이 없는데 시장에 와서 뭘 사겠느냐"면서 "올 들어 매출이 70%가량 줄었는데 내년에 주52시간 근무제가 확대되면 지금보다 매출이 더 줄 텐데 그러면 장사를 접어야 할 판"이라며 한숨지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부작용은 있게 마련이다.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찾은 직장인들도 있겠지만 밤늦게 대리운전 등을 하며 오히려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출이 급감하고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관계 악화 등으로 무엇보다 경제가 어려운 이 시기에 꼭 주52시간 근무제를 확대해야 하는 것인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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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데스크] `미래`가 실종된 한국사회
황인혁 기자
입력 2019.11.11 0
"조국한테 고맙죠."
뉴욕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종종 만났던 미국 월가의 자산관리 전문가 A씨를 최근 한국에서 다시 만났더니 뜻밖의 얘길 들려줬다. `조국 사태`가 불거진 이후 한국에 있는 거액 자산가들의 미국 투자 문의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불공정과 편 가르기가 판치는 한국에서 더는 살기 싫으니 이참에 한국의 모든 자산을 처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겠다고 했다. 조국 파문이 미국에 사는 A씨에게 뜻하지 않은 일감을 몰아준 셈이다.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건 자산가들뿐만이 아니다. 대입 제도가 `조변석개(朝變夕改)`하고 외국어고·자사고가 5년 후에 일괄 폐지된다고 하니 아예 해외 조기유학을 고려하는 학부모·학생들이 생기고 있다. 합계 출산율 1명도 안 되는 초저출산 여파로 학령인구 감소에 직면한 한국 학교들은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노동력이 생산의 중요한 요소였던 고대에는 인구가 국력의 척도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지금도 인적 자원은 국제적 위상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인이다.
B기업 경영진이 지난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로 출장을 갔다.
공장 용지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경영진이 현지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30분. 공항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주 투자청 관계자는 한국인 일행을 호텔까지 데려다주고는 그도 그 호텔에 같이 묵었다. B기업 고위 인사는 "우리의 이튿날 일정을 물어보더니 헬기를 타고 다니라면서 선뜻 내주더라"고 말했다. B기업은 미국 공장을 설립해 현지인 100여 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 100여 명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주 투자청은 갖은 정성을 다한 것이다.
인구와 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건 정상 국가라면 당연한 노력이다. 하지만 사회 균열과 제도적 갈등으로 있던 사람과 기업마저 한국을 이탈하려는 조짐이 보이니 우려스럽다. 조국 사태 이후로 너와 나를 편 가르는 진영 논리가 증폭되고 있는 게 문제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쪼개진 광장은 좀처럼 치유될 기색이 없다.
`조국 구속`과 `조국 수호`의 양극단을 달리는 집회가 매주 열리고 있다. 한 법조인은 "단군 이래 10만명 가까운 인파가 서초동에 몰린 건 처음일 것"이라며 시민들의 검찰개혁 요구를 이례적인 현상으로 해석했다. 검찰개혁이 의미 있다고 해도 이렇게 나라를 시끄럽게 할 만한 범국민적 관심사인지 반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을 이달 발족했다. 2014년 4월 16일 사고 이후 검경 합동수사,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조사, 특조위 조사 등이 잇따랐으나 추가 규명할 게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를 직접 챙긴다고 한다. 검찰의 전면 재수사로 몰랐던 위법 사실이 드러날 수 있겠지만 `야당 압박용 카드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는 찜찜한 대목이다. 한 관료 출신 인사는 "한국 사회가 또 한 번 세월호의 가슴 아픈 과거에 매몰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본 강제징용 문제도 신속한 결단이 불가피하다. 혹자는 어두운 과거를 철저히 규명하고 잘못을 단죄하는 절차가 있어야 공정한 미래가 열린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본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처단 의식은 어딘가 불편하다.
한 기업인은 한국의 과거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중국 선전의 식당에 가니 젊은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중국어를 몰라도 이들 입에서 AI니 빅데이터니 하는 말이 쏟아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 시내 식당에선 미래를 논하는 대화가 잘 안 들린다. 검찰 수사, 집회, 정치 갈등과 같은 침울한 과거와 현재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황인혁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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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반환점 도는 문재인정부 ⑤]
野, 정부 실정 비판 넘어 경제 살릴 확실한 해법 내놔야
입력 2019.11.11 0
문재인정부 전반기 여야 관계는 최악이었다. 여는 야를 적폐 집단으로 공격하고 야는 여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의심했다. 한국 정치에서 여야 대치는 늘 있어왔지만 서로의 존재론적 근거까지 공격하는 지경에 이른 것은 독재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현상이다. 어느 정권도 야당의 협조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포함한 여야 5당 대표와 함께 만찬을 했다. 문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의 회동은 7월 18일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임기 후반기 시작 첫날을 야당과 함께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끌어안고 대우하는 자세 전환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동시에 야당의 자세 변화를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본령은 의회정치에 있다. 의회에서 만드는 법이 곧 국가의 작동시스템이 된다. 의회에서 각 당은 정확하게 의석수만큼의 정치적 책임을 갖는다.
여소야대인 지금 국회에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의 책임이 결코 여당에 비해 가볍다고 할 수 없다. 여당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은 야당 본연의 역할이지만 의회 안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정부 국정평가에서 특히 점수가 낮게 나오는 것은 경제다. 소득주도성장, 세금주도 일자리, 근로시간 단축을 비롯한 친노동정책, 탈원전 등 대표 경제정책들이 역효과를 내고 있다. 야당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9월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 주도의 자유시장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의 `민부론`을 발표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폐기와 혁신적 규제개혁, 시장 존중 부동산정책, 기업의 경영권과 안정성 보장 등 주요 과제를 열거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민간 경제연구소 같은 곳에서 수도 없이 나오는 것들이다. 정당의 역할은 이런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공론화하고 현실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해 입법을 시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야당의 정부 비판은 온통 거대담론에만 머무르고 있다. 지난 6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5단체는 주52시간 근무제 보완 법안, 데이터 규제 완화 법안, 화학물질 관련 규제 완화 법안 등 3개 법안만이라도 올해 안에 처리해 줄것을 국회에 호소했다. 이른바 `친기업, 친시장`을 표방한다는 한국당은 이런 절규가 나올 때까지 도대체 무엇을 했나. 여당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면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하고 입법에 미적댄다면 재촉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당은 이들 법안에 대해 여당만 한 관심도 없어 보인다. 대부분 이렇다 할 당론도 없다. 한국당은 탈원전을 말로만 비판할 뿐 이를 막기 위한 여론 조성과 법적 대응은 일부 시민단체와 원자력전문가들에게 맡겨 두고 있다. 검찰의 `타다` 기소를 계기로 모빌리티 경제와 혁신산업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겁지만 야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검찰 기소 이전에 법무부가 청와대에 보고했는지를 따질 뿐이다. 이는 부차적인 것이다.
국가 경제를 걱정하는 야당이라면 일찌감치 모빌리티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률을 발의했어야 한다. 타다 기소는 정부 여당의 책임이 크지만 야당도 입법 불비에 책임이 있다.
야당의 힘은 한편은 정치적 명분, 다른 한편은 정책 대안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축구로 치면 여당이 `자살골`만 넣기를 기다리는 경기를 하고 있다. 실제 여권이 여러 번 실책을 거듭했는데도 야당 지지율은 조국 사태 이전으로 돌아갔다. 여당 못지않게 야당도 자살골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명분은 명분대로, 정책 대안은 대안대로 지리멸렬하다. 그 결과는 국민이 기댈 데가 없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자기 힘으로 골을 넣지 못하고 누가 더 많이 실수하느냐로 승부가 갈리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나. 정부 여당의 악법을 막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경제에 정말 중요한데도 정부가 외면하는 것,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묻고 따지고 입법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야당이 해야 한다. 민생경제 문제에서 야당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면 여당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자연히 야당의 존재감은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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