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자본주의 저물고…고객·직원·사회 배려 `새 모델` 뜬다
김명수 , 박봉권 , 윤원섭 , 유주연 , 전범수 기자
입력 2020.01.20 17
다보스포럼 21일 개막
기후변화 계속 부정해온 트럼프
포럼 현장서 비판 받을 가능성
◆ 다보스포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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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다보스에서 21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제50회 연차총회(다보스포럼) 개최를 하루 앞둔 지난 20일 메인 행사장인 콩그레스센터 외부에 참가국 국기가 걸려 있다. 개막식 기조연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할 예정이다. [전범수 MBN 기자]
21일부터 나흘간 일정으로 스위스 스키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 Forum) 제50회 연차총회(다보스포럼)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와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위협을 화두로 꺼내들었다.
WEF가 주목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기업 이익 최대화와 주가 부양을 통한 주주가치 극대화를 경영의 최고 덕목으로 삼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다.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는 게 주주자본주의의 핵심이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주주자본주의를 태동시킨 시카고대의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모든 가용 자원을 활용해 이익을 늘리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주 이익 증대"라며 주주지상주의를 설파했다.
실제로 상당수 기업들은 이익 극대화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 성과를 냈고 수십 년간 글로벌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과도한 단기 이익 집착과 탐욕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연결됐다. 또 주주 외 다른 모든 사안에 대한 기업들의 무관심 속에 극단적인 소득양극화 등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고 기후변화 문제도 심각해졌다. 이처럼 고장 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골자는 주주는 물론 직원, 소비자, 채권자,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기업을 경영해야 기업 평판이 좋아지고 결국은 영속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자에게 관심을 쏟는 한편 벌어들인 돈을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자사주 매입에 다 써버리는 대신 미래를 대비해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고 환경에도 신경 쓰는 등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포럼 현장에서 매일경제 취재팀이 단독으로 인터뷰한 뵈르게 브렌데 WEF 총재(전 노르웨이 외무장관)는 "분기 실적만을 중시하는 기업이 훌륭한 인재를 유치할 수 있을까, 이런 기업이 지속 가능할까"라고 반문하며 "미래에 대한 투자인 근로자를 중시하고 환경을 배려하는 기업이 더 지속 가능하고 궁극적으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국의 지도자라면 상당 수준의 성장을 확보해야 하고 동시에 성장을 분배할 수 있어야 한다"며 "상위 1%가 혜택의 99%를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성장의 과실 분배가 불공평해지면 칠레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시위 사태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브렌데 총재는 "이 같은 시위는 국민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며 "대중이 성장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성장을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 다수가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안정적인 사회가 아니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다만 브렌데 총재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성장보다 분배에 무게중심을 맞춘 시스템으로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성장을 죽이는 분배 중심적 접근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케이크에 비유하자면 케이크를 키워서 분배해야지, 크기가 같은 케이크를 가지고 어떻게 자를지 고민하는 것은 어리석다. 큰 케이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WEF가 이해관계자 개념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3년 비즈니스가 단순히 주주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 구성원 이해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스테이크홀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올해 WEF 50주년을 맞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비전을 담은 '2020 다보스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창립자 겸 회장은 "비즈니스는 이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것은 이익 극대화뿐만 아니라 기업의 역량과 자원을 정부·시민사회와 협력해 이 시대의 주요 현안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인 소득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분열, 정치적 극단화, 기후변화 위기 등 도전에 대한 해답을 얻는 수단으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재앙 수준의 호주 산불 사태로 기후변화 이슈도 올해 다보스포럼의 시급한 현안으로 부상했다. 올해 다보스포럼 세션 중 18%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주제로 채워질 정도다. 이와 관련해 2018년 WEF 폐막연설을 한 뒤 2년 만에 다시 다보스를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1일 개막식 기조연설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 상원 탄핵 절차에도 건재함을 과시하는 한편 미·중 1차 무역협상 합의에 대한 자화자찬, 미국 내 지지층을 겨냥한 경제 민족주의와 미국 우선주의와 같은 대중영합적 주장을 되풀이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포럼 현장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WEF가 포럼 시작 전에 공개한 리스크 리포트를 통해 지구촌 최대 위협으로 지목한 기후변화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환경보호보다 개발을 옹호하며 파리기후협정까지 탈퇴한 트럼프 대통령이 참가자들로부터 상당한 비판과 도전을 받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호주 산불 사태가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이라는 시각이 확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더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진단이다. 2년 전 폐막식 연설 때 트럼프 대통령은 청중에게 조롱 섞인 야유를 받은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는 날 기후변화 이슈를 놓고 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설전을 벌여온 10대 청소년 환경운동 아이콘인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도 세션 연사로 참석해 글로벌 리더들의 기후대응 전략 부재를 질타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과 툰베리가 처음으로 직접 만나는 장면이 연출될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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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날아온 주주자본주의 반성문[오늘과 내일/박용]
입력 | 2019-08-24 03:00:00
미국에선 ‘1대99 사회’의 적폐, 한국에선 ‘글로벌 스탠더드’
박용 특파원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세운 127년 역사의 미국 간판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은 한국 대기업의 뒷목을 잡게 한 난제 해결에 영감을 주는 경영 교과서였다. 한국 기업들은 사업 다각화 전략부터 지배구조와 전문경영인 체제와 승계, 주주 중시 경영 등 선진 경영기법을 배웠다.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도 한성대 교수 재직 때 GE식 지배구조와 승계 모델을 언급하곤 했다.
그런 GE가 요즘 체면을 구기고 있다. 주가는 우리 돈 1만 원 아래로 맴돈다. 최근 ‘엔론 사태 이후 최대 분식회계’ 의혹에까지 휘말렸다. GE 측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지만, 의혹 제기 사실만으로도 모범생 GE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후진적 지배구조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GE를 배우라는 훈수를 듣던 삼성은 미국 최고 기업으로 꼽히는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훌륭한 경쟁자”라고 견제할 정도로 건재하다.
공교롭게도 GE가 모범을 보인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도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미국 대표기업의 CEO 188명이 속한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회사는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는 주주 우선 원칙을 삭제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대신 고객, 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장기 주주 가치 등을 고려하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 경영 원칙을 선언했다. 주주자본주의가 무능한 경영진을 견제하고 성과 중심의 합리적 경영을 뿌리내리게 한 순기능이 있었지만 부작용도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단기 실적 중심의 근시안 경영, 장기 투자보다 주가와 배당을 우선하는 펀드 자본주의, 이 대가로 거액의 연봉을 챙기는 전문경영인들의 탐욕이 ‘1 대 99 사회’의 불평등을 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주주자본주의가 득세한 기간 미 제조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말 감세를 해주자, 미 기업들은 주가 부양을 위한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렸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는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한국에도 수입됐다. 현재 한국 대기업들은 주주 가치 제고라는 명분으로 주식을 매입한 지 몇 달 만에 수조 원의 배당을 요구하고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 매입을 강요하는 미국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배당은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고, 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를 하고, 세금을 내고 난 다음에 나누는 몫이다. 단기 투자로 ‘주식 알박기’를 한 다음 주주 가치를 내세우며 배당과 주가부터 챙겨달라고 위협하는 단기 투자자들은 어떻게 할 건가. 워런 버핏이 세운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나 정보기술(IT) 기업 구글 등은 차등 의결권을 도입해 경영권 위협을 막는 안전판이라도 갖고 있다.
한국 대기업의 주요 주주들이 외국인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배당=소득 분배’라는 미국식 소득 분배 공식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대기업에 배당을 압박할 때 뒤에서 웃는 이들은 따로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경영자들이 최근 관심을 갖는 이해관계자 중시 경영은 공동체 정신에 근거한 한국식 ‘유교 자본주의’ 가치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기업 경영이념에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인화(人和)’ 등 주주자본주의에서 생소한 단어가 단골로 등장했다. 유교와 군사문화 잔재가 결합한 경직된 위계질서와 ‘황제 경영’의 독단, 위기관리 소홀 등 한국식 자본주의 적폐는 없애야 하지만 잃어버린 강점은 살려야 한다. 그러자면 기업 경영에 모범답안이 있다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착시’부터 걷어내야 한다.
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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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자본주의는 끝났다 이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영국의 ‘경영구루’ 콜린 메이어 옥스퍼드 사이드비즈니스스쿨 교수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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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지금 기업은 특수한 이익집단인 주주들에 의해 공중납치(hijack)당한 상태입니다.” 콜린 메이어(Colin Mayer·60) 영국 옥스퍼드대 사이드비즈니스스쿨(경영대학원·MBA) 교수가 월스트리트가 신봉하는 주주 자본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3월 19일 콜린 메이어 교수는 지난 2월 출간한 ‘기업의 사명(Firm Commitment)’이란 저서를 들고 방한했다. 메이어 교수는 세계적 경영구루(Guru). 그는 방한 기간 동안 서울대·연세대·중앙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과 공학을 전공한 메이어 교수는 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세계 최고 비즈니스스쿨 중 하나인 옥스퍼드 사이드경영대 학장을 5년간 역임한 스타 교수다. 1986년부터 2010년까지는 옥스퍼드대 연구소인 옥세라(Oxera)를 이끌며 옥세라를 유럽에서 가장 큰 독립경제연구소로 만드는 데 힘을 기울였다. 현재 학내 방송인 보이스프롬옥스퍼드(www.voicesfromoxford.org)의 경제 분야 편집장도 맡고 있다. 사이드 비즈니스스쿨은 런던 비즈니스스쿨과 함께 영국 최고의 경영대학원으로 손꼽힌다. 런던에서 케밥 장사로 시작해 부를 쌓은 아랍계 와히크 사이드 사이드그룹 회장의 기부를 받아 만들어졌다.
콜린 메이어 교수는 지난 3월 20일 서울대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주간조선과 만났다. 이날 아침 9시 서울대를 비롯해 경북대·충남대·전남대 등으로 동시 생중계된 강연을 통해 ‘주주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그 대안’에 관해 강한 영국식 어조로 열변을 토한 직후였다. 영국 경쟁소송심사위원(공정거래위원에 해당)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주주 자본주의’ 비판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메이어 교수는 “한국에서 강연이 끝나면 주말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강연이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메이어 교수가 ‘기업 실패’를 언급하는 것은 기업이 차지하는 역할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기업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그는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고 근로자를 고용하고 재원의 투자를 집행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며 “기업은 한국을 비롯해 세계 경제 성장과 번영의 근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기업이 근로자와 소비자 같은 이해관계자들 대신 주주들의 이익만 고려한다는 데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도 최근의 기업 실패들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회계법인 분식회계(엔론), 금융위기를 촉발한 금융사 파산(리먼브라더스), 미국 멕시코만 원유 유출(영국석유),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도쿄전력), 영국 리보(런던은행간 금리) 조작(바클레이즈) 등을 최근 경제적 충격을 던진 가장 대표적 기업 실패 사례로 꼽았다.
“물론 이 같은 사고가 정부 실패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는 것을 알아요.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것은 규제뿐인데, 규제의 실패라는 거죠. 그것이 제가 말하는 바로 근본적 문제입니다. 규제에만 의존하는 모델은 지속될 수 없어요. 기업들은 너무나 쉽게 규제를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어요. 때론 이를 장려하기도 합니다. 기업들은 그들의 행위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이는 최근 연이어 터진 환경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기업들이 처음 환경문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 주식시장은 되레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2010년 4월 미국 멕시코만의 초대형 원유 유출 사고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를 친 당사자는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사회와 경영진을 가지고 있다는 영국석유(BP)였다. 주주들의 단기적 이익극대화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안전에 대한 투자를 자연히 경시하게 됐다는 것. 심지어 BP는 사고수습에서도 늑장대응 등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며 “사고 수습을 고의로 지연시킨다”는 의혹마저 일었다. 당시 BP의 주주총회장은 “BP가 염려하는 것은 주주 이익뿐이다”란 비난으로 엉망이 됐다.
“주주 자본주의가 자리 잡기 전의 기업들은 달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과거 기업들은 단순히 주주에게 돌려줄 것이 아니라공공을 위한 재화들을 생산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항로를 개척하고, 운하를 파고, 철도를 부설하는 등이 기업들이 공적 목적을 위해 한 사업”이란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반면 기업이 주주들의 단기적 이익에만 전적으로 충실하게 만든 것이 진정한 문제가 됐다. 메이어 교수는 이날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소위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가 아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했다. 단기성과에만 급급한 단기적 주주들이 아니라 기업과 장기적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경영진, 근로자, 소비자, 공급자와 같은 주체들의 이익에 부합하게 기업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이 ‘장기적 이해관계’를 가진 재단과 연금의 기업활동 참여다. 실제 일부 기업들은 재단과 연금에 의해 운영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둔다고 했다. “가족도 아니고, 단기적 주주도 아닌 연금이 장기적 투자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이 밖에 그는 “장기투자에 관심이 많은 국부펀드나 개인적인 장기투자자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예로 노르웨이의 국부펀드를 예로 들었다. 대신 정치인들에 의해 장악돼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연금의 기업지배에는 부정적 시각도 드러냈다. 그는 “공적연금은 국가가 너무 과도하게 개입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그는 인도 기업 타타를 성공적 기업 지배구조의 사례로 들었다. 타타는 재규어·랜드로버 등 자동차업체와 코러스철강을 소유하고 있는 인도의 대표적 재벌이다. 이 밖에 베텔스만미디어그룹, 칼스버그 맥주,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도 훌륭한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들로 손꼽았다. 메이어 교수는 “이들 기업은 원칙과 가치에 충실한 재단이 기업 운영을 책임진다”고 밝혔다.
물론 그가 현대 경제에서 차지하는 주식시장과 주주들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에 접근하는 것은 기업활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는 “타타와 베텔스만, 칼스버그도 여전히 주식시장에서 기업 운영자금의 상당 부분을 조달한다”고 했다. 다만 “주주들이 경영진의 장기적 성과에 관심이 많아 이해충돌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메이어 교수는 ‘재벌(Chaebol)’이라는 고유명사까지 직접 거론하며 한국 기업의 특수한 지배구조에 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삼성, 현대차, LG, SK 등 국내 대표기업을 일일이 거명하며 “한국의 기업환경은 외국과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기업도 문화의 산물인데, 가족경영에 기반한 한국 재벌들은 장기적 투자 결정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 번영의 원천이 됐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재벌이 한국 경제에 상당히 긍정적 기여를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문제점도 함께 지적했다. 그 근거로 일부 재벌기업들에 의해 빚어진 재화와 서비스의 독과점 현상을 거론했다. 그는 “이는 재벌 가족들의 이해관계가 일반인의 이해와 부딪치면서 충돌이 빚어진 현상”이라며 “미래 한국에는 재벌 모델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장기적 주주가 어떻게 이런 가족의 역할을 대체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국가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가족기업으로부터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를 아주 자연스럽게 이뤄냈다는 것. 메이어 교수는 “지배구조의 변화가 와도 기업 자체의 성격이 그리 극적으로 바뀌는 일을 없을 것”이라며 “이는 ‘에볼루션(진화)’이지 ‘레볼루션(혁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경제적으로 성공한 모델이 잘 안 보인다는 거예요. 한국의 지난 대선을 되돌아보세요. 대기업과 관련한 것이 큰 정치적 이슈가 됐습니다. 이는 기업에 정말 큰 위기입니다. 정치적 요구에 따라 정부는 기업에 더 강한 규제와 개입을 할 것이고 기업은 더 위험해집니다. 기업 스스로 신뢰를 재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신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미래 세대의 기업가정신 등을 양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구글,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기업들이 대를 이어 출현하는 것과 같은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라는 것. “이 같은 역할을 한국에서는 기업들이 대신해 다음 세대로 기술을 넘겨주고, 기업가정신을 키워주면서 경제적 번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게 그의 조언이다.
기업들이 독립된 이사회와 엄격한 도덕적 윤리관을 가져야 함은 전제조건이다. 그에 따르면 최근 대형사고를 친 리먼브라더스나 바클레이즈 역시 창업 초기 때만 해도 설립자들이 엄격한 도덕 원칙을 고수했다고 한다. 리먼브라더스의 설립자는 정기적인 병원 기부자였고, 바클레이즈 설립자는 독실한 퀘이커교도였다. 하지만 단기적 이익만 추구하는 주주들에 의해 회사가 장악되면서 대형사고를 쳤다.
또한 그는 “새 기업 환경을 위해서는 경쟁당국(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평소에는 각종 기업 활동에 침해적인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반면 그는 “만약 기업이 법과 제도적 안정성을 침해할 때 강력한 규제를 집행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국가와 재벌 간에 얽힌 유착관계를 끊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메이어 교수는 지적했다.
“사람들은 대개 존경받는 기업에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기업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공공영역은 법을 더 엄격히 세워야 하고, 환경오염, 지배적 지위 남용, 부정부패 같은 범죄들은 공공영역에 의해 엄단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 기업들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더 높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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