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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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전 세계 동시 불황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이 매일경제에 특별 기고문을 보내왔다.
권 위원장은 기고문에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온 한국의 저력을 고려해보면 이번 팬데믹이 한국 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의 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했다. 그의 기고문 전문을 다음과 같이 게재한다.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주요국 경제활동 위축과 실업 급증, 유가 폭락, 국경 봉쇄, 무역 통제 등 충격적인 뉴스가 일상화되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은 여전히 극도로 불안하고, 국민 건강도 지키면서 경제도 살려야 하니 각국의 대책 마련도 유례없이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코로나 불황의 특수성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구조적 함의를 꿰뚫어 보고 중장기 경제전략적 관점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높아지는 W형 경기순환 가능성
코로나 불황은 과잉투자나 금융위기로 시작돼 구조조정을 수반하는 전통적 경기 순환과는 완전히 다르다.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소비의 급격한 위축을 수반하고, 바이러스의 급속한 전파로 전 세계는 동시에 불황으로 진입한다. 하지만 회복기는 경제구조와 방역 능력에 따라 차별화된다. 선진국이나 내수 비중이 큰 나라는 방역 성과에 따라 경제 조기 회복이 가능하지만, 소득의 3분의 1이 해외 수요에서 나오는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국내 방역 성과 외에도 무역 상대국의 수요 회복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또 건강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과정에서 경기 침체와 회복이 단기간에 되풀이되는 W형 경기 순환의 가능성도 크다.
코로나 불황 극복 대책은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해 신속한 대규모 부양과 철저한 방역활동이라는 두 바퀴가 맞물려 추진돼야 하며, V자 회복을 견인할 수 있게끔 주요 산업 회복력 보전과 취약계층 보호, 극대화된 부양책을 신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다만 한국은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므로 상대적으로 한정된 재원의 선택과 집중에 보다 주목해 대면활동이 상대적으로 덜 요구되는 설비와 연구개발(R&D) 투자 지원, 온라인 상거래 등 비대면 소비 진작에 역점을 두며,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는 건설 부양은 방역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다. 한국은 국경 통제와 통행 제한 없이 코로나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유례없는 대규모의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긴급재난지원금, 기간산업 안정화와 고용안정 대책을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를 중심으로 신속하게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공개시장 운영대상증권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과 금융시장 안정화 정책을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점은 코로나 불황에 대한 특수성을 고려하면 매우 고무적이다. 코로나19는 1918년 스페인독감, 1957년 조류독감 이후 최악의 전염병이 될 것으로 보이며 수습 이후에도 세계 경제에 심대한 구조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국에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속화
우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할 것이다. 2018년 시작된 무역전쟁을 통해 드러난 현재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취약성은 코로나 사태로 더욱 부각됐다. 또한 한국이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 규제 조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확인했듯이 향후 글로벌 공급망은 비용 절감과 효율성 일변도에서 안정성, 신뢰성, 유연성이 중요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 사태처럼 극단적 상황에서 정보의 투명성과 경제활동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방역에 성공적인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대체 공급지 주요 후보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말 주요 20개국(G20) 특별화상정상회의에서 제안한 '기업인 이동보장 제도화'를 한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강점인 보건안전관리 역량을 활용해 기업인이 한국에 출입국할 때 특화된 무감염증명서를 국가가 보증하는 '코로나 프리 패스포트제도'(가칭)를 협력 여건이 비교적 양호하고 인적 교류가 관리 가능한 수준인 북방 지역 국가를 중심으로 시범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이를 다른 국가에 확산해 제도적 기반에 올려놓게 되면 한국은 인적·물적 이동이 자유로운 안전한 대체생산지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투명하고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한국형 수출관리제도를 확립하면, 소재·부품·장비의 글로벌 공급망 허브로 도약도 가능하다. 지금도 외교부와 관계부처의 노력으로 예외적 입국이 일부 국가에서 다행스럽게 허용되고 있지만, 더 나아가 이를 제도화함으로써 무역과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근원적으로 줄이고, 의료진과 많은 시민의 노력으로 얻은 코로나 방역 모범국이라는 명성을 좋은 일자리 창출과 국민 생활 수준 향상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 위축·내수주도 성장
둘째, 지난 70여 년간 세계 경제 질서의 기반이 된 자유무역 위축과 함께 내수 주도 성장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국경 통제가 강화되고 물류에 차질이 생겨 수출이 곤란해지면서 중국마저도 수출 의존형 경제 체제에서 탈피하고자 자국 산업 부흥과 내수 진작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막대한 규모의 구도심 재생사업을 통해 제철, 시멘트 등 굴뚝산업을 부흥시키면서도 5세대(5G) 설비와 데이터센터 등 신형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해 생산성 향상과 혁신을 추진하는 중국의 코로나 불황 대응 방안은 과거 세계 금융위기 때 중국이 수출 일변도 전략하에서 취한 대규모 산업도시 확장과 내구재 소비 부양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이웃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통한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겨냥한 전략적 투자 진출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2000년대 초 MP3플레이어나 싸이월드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창의성과 신속성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협소한 내수 시장으로 규모의 경제 실현에는 근본적 제약이 있어 자유무역이 위축될수록 그 한계는 심화될 것이다.
앞으로는 제3국 수출을 목표로 한 외국으로의 산업단지 진출 외에 바이오, 보건의료, 뷰티, 헬스 등 내수 중심 서비스업과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생산성 향상을 견인할 수 있는 첨단기술 분야 진출에도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러시아 투자펀드 설립이나 중국이 이웃 국가들과 새로운 경협 모델의 시범사업으로 지린성에서 추진 중인 한중 국제협력시범구는 이런 점에서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중요한 전략적 의미가 있다.
美 달러의 전략적 위상 강화
셋째, 달러의 전략적 위상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코로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5조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양적 완화를 단행하고, 달러 유동성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브라질 등 9개국 중앙은행과 임시 통화스왑을 체결했다. 또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미국채 담보대출 창구를 설치했다.
연준의 이 같은 조치는 달러 자금시장의 안정적인 작동을 담보하고 동시에 달러 스왑 라인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화할 것이며 중국 위안화 국제화 노력을 배가시킬 것이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 선진경제 국가로 분류돼 있고 국제 채권시장에서도 선진국 채권으로 거래되고 있는 만큼, 동북아시아에서 거시 안정성 보호를 위한 역내 지도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중 하나였던 싱가포르가 아세안(ASEAN)의 금융 허브 역할을 하듯이 한국은 중앙아시아 국가와 통화, 금융 협력에서 지도적 역할을 할 공간이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지역 중앙은행들과 단계적 협력 확대가 기본 요건일 것이며, 나아가서는 협의체 등 기구화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언택트 경제활동 강화
마지막으로 감염 예방을 위해 대면 접촉을 회피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비대면(언택트) 경제활동이 강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통신기술 혁신이 거듭되고, 전자상거래 중심 비대면 유통 체계가 강화될 것이다. 대면 기피 소비자들이 온라인 기반 서비스를 선호하면서 관련 기술과 제품 개발이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래서 반도체와 5G, AI 등에서 비교우위가 있는 한국 기업에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이러한 기술과 교육, 보건 산업 등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면 한국은 언택트 경제 선도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 변화는 늘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수반한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온 한국의 역사와 위기 앞에 단결하고 양보하는 국민들의 위기 극복 DNA를 고려해보면 이번 코로나 사태도 한국에 '기회의 창'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4대 열강의 벽에 싸인 우물에 갇힌 한반도가 아니라 동북아에서의 거시 안정성 보호와 다자주의 활성화를 위한 역내 지도력의 발원지로 도약하는 한국의 미래를 꿈꿔본다.
▶▶ 권구훈 위원장은…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권구훈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인사 배경은 단연 화제였다.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아닌 '책'으로 맺어진 사이였기 때문이다. 권 위원장은 2015년 한 TV 강연 프로그램에서 '왜 경제통일인가'를 주제로 강연했고 이후 그 내용이 책으로 출간됐다.
'독서광'인 문 대통령이 2018년 여름휴가 때 이 책을 읽고 그의 통찰력을 평가해 위원장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1962년 경남 진주 출생 △진주고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ABN암로은행 런던지점 이코노미스트 △IMF 모스크바사무소 상주대표 △골드만삭스 아시아 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장관급)
※ 권구훈 위원장의 특별 기고문은 북방경제협력위원회 홈페이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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