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4
현재 중국 지도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미·중 갈등과 경착륙 위기다. 미국이 제기한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에 이어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서 골이 깊어진 미·중 갈등은 `신냉전` 시대를 앞당기며 양국 간 `대결별(The Great Decoupling)` 위기로 발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경제는 지난 1분기 코로나19 여파로 -6.8%를 기록한 이후 서서히 온기를 되찾고 있지만 대내외 요인이 발목을 잡고 있는 불안 형국에 놓여 있다. 특히 중국 경제와 미·중 관계가 상호작용을 하는 변수라는 점에서 중국 지도부는 최근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충돌 정세가 자국 경제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까 염려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이 우방국들과 연대해 반중 전선을 강화하면서 `고립화`에 대한 국제정치학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중국은 이 같은 대내외 불확실성을 타개하기 위해 비상계획을 꺼내 들었다. 비상계획 핵심은 그동안 고수해왔던 `개방형 경제 발전 모델`을 잠시 내려놓고 14억 내수 시장에 기댄 `자립 경제 모델`을 가동하는 것이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세계화 추세가 위축되자 내수 확대를 통해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털)을 탄탄히 다지는 전략이 현시점에서 유효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3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제13기 3차 연례회의에서 "중국은 세계경제 불황, 변동성이 커진 글로벌 금융시장, 보호주의와 일방주의, 지정학적 정치 위험 상승 등 요인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중국은 내수 순환이 지배적 역할을 하는 새로운 경제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완벽한 내수 체제 구축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내수 진작을 통한 부양책으로 소비 증대가 생산 자극을 유도해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길 기대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지난달 22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5조7500억위안 넘는 초강력 경기 부양책을 내놓은 이유다.
중국이 구사하는 전략의 상위에는 그 지향점이 담긴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개방형 발전`을 심화시켜온 중국은 시진핑 정권 들어 `네이롄와이퉁(內聯外通·안을 연결하고 밖으로 통한다)`을 개방형 경제의 비전으로 삼았다. 이 비전은 시 주석 숙원 사업으로 꼽히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와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중국의 꿈)`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갈등으로 중국몽 여정에 제동이 걸리자 중국은 `네이롄네이퉁(內聯內通·안을 연결하고 안으로 통한다)`을 애초 비전의 대용으로 꺼내 들었다. 중요한 사실은 중국 지도부가 위기 시국에 `네이롄네이퉁`을 한시적으로 차용한다는 것과 `네이롄네이퉁`을 대외적으로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자칫 중국몽 포기로 오인될 소지를 막기 위함이다.
네이롄네이퉁 골자는 중국을 권역별로 나누고 지역별 특성을 살린 연계형 발전과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를 통한 내수 시장 확대를 꾀해 자립 경제 기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 지도부는 지난달 22일 전인대 정부업무보고에서 국토 개발 전략인 `국가 중대 구역 전략에 대한 중요 조치`를 강도 높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일 발표된 하이난 자유무역항 개발 조치까지 포함하면 중국은 현재 총 8개 권역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중 중국 지도부가 올해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권역은 웨강아오다완취, 창장 삼각주, 서부, 중부, 하이난 등이다. 선전 등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를 잇는 메가 경제권인 웨강아오다완취는 첨단 기술 기반 선진 제조 허브로 육성해 미국 등 선진국 의존에서 벗어나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데 활용할 방침이다. 또 광둥성과 홍콩 간 금융펀드 상품을 교차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홍콩과 금융을 통합하는 데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창장 삼각주 일체화 개발은 창장(양쯔강) 하류 경제 중심도시인 상하이시와 저장성, 장쑤성, 안후이성을 단일 경제권으로 묶는 프로젝트다. 중국은 창장 삼각주를 첨단 교통운수·통신 인프라 요충지로 육성할 방침이다. 서부대개발과 중부 굴기는 시진핑 정권 이전부터 추진돼 온 지역 개발 전략이지만 이번엔 선진화한 동부 지역에서 중부를 거쳐 서부로 이어지는 내수 연결 고리를 탄탄하게 다지겠다는 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부는 코로나19 충격이 가장 심각한 후베이성 우한이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중국 지도부가 지역경제 회복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국토 개발 전략에는 국제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 웨강아오다완취 개발을 통해 `홍콩의 중국화`에 속도를 내고 이 지역 바다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대만에 대한 영향력도 키우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과 체제가 다른 대만과 홍콩을 고리 삼아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방어 정책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이 홍콩에 대해 특별지위 박탈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홍콩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하이난`을 개발하겠다고 선포한 것도 같은 속내가 담겨 있다.
중국은 미국 측 반중 전선에 따른 고립화를 피하기 위해 동북아 지역과 경제협력 강화, 중화 경제권으로 시장 외연 확대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의지를 드러내면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 = 김대기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