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칼럼.논설.

사람 잡는 개혁.서민 50만명을 사채로 내몬법정 최고금리 인하도강사 2만명을 해고로 내몬강사법도 `선의`로 시작

Bonjour Kwon 2020. 8. 20. 08:17

[매경포럼] 몇 사람 벼랑 떨어져도…사람 잡는 개혁
최경선 기자
입력 2020.08.20 00:08


서민 50만명을 사채로 내몬
법정 최고금리 인하도
강사 2만명을 해고로 내몬
강사법도 `선의`로 시작했다
마음만 앞선 개혁 걱정이다
855272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공약으로 '4대 비전'을 제시했다. 그중 두 번째가 '더불어 성장으로 함께하는 대한민국'이었다. '더불어'라는 단어와 '함께'라는 단어가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문재인정부 출범 후 3년3개월이 지났다.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많은 정책들이 벼락치듯 시행됐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고 있는가. 이달 들어 매일경제가 다룬 기사 중 몇 가지를 되짚어 보자.

우선 법정 최고금리다. 정부는 2018년 2월 대부업체 최고금리를 연 24%로 4%포인트가량 낮췄다. 서민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도움 받은 소비자도 있겠지만 그 후 2년 동안 대부업체 대출 이용자가 50만명 정도 줄어들었다. 인위적으로 대출금리를 내리면 신용도가 낮은 사람부터 대출받기가 어려워지는 건 당연한 원리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수 없게 된 이들 중 상당수는 불법 사채시장으로 향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2년 동안 사채 관련 피해 민원이 50%가량 급증한 사실이 그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강사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시행된 이 법도 대학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선의'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방학 때에도 월급을 주고 4대 보험과 퇴직금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인건비가 늘어나면 많은 시간강사들이 해고될 것"이라는 걱정 탓에 법 시행을 7년 동안이나 미뤄왔는데 문재인정부는 그냥 밀어붙였다. 결과는 걱정했던 대로다. 이 법 시행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2만여 명이 줄었다. 대학 강사 30% 정도가 해고된 것이다.

정규직 전환 역시 그런 식이다. 인천공항공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상징이 된 곳이다. 이런 곳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최근 '졸속 정규직화'를 규탄하면서 항의 삭발까지 했다. 이들은 당초 인천공항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었으나 인천공항공사가 직접 고용으로 선회하면서 공개경쟁시험을 거치게 됐다.



그 과정에서 47명이 탈락해 일자리를 잃게 되자 이런 분란이 일어난 것이다.

'다 함께 더불어 잘살아 보자'는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누군가를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고만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최저임금 인상도 그렇다.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민들은 경비원 100명 정도를 직접 고용하다가 2018년 초 위탁관리 방식으로 바꾸겠다며 해고를 통보했다.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 데다 주차대행과 같은 업무 외 지시를 할 수 없도록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된 게 이유였다. 이를 두고 법원은 1심에서 부당해고라고 판단했지만 최근 2심에서는 정당한 해고라고 판결했다. 사회적 약자를 도우려던 개혁이 그들 중 일부를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게 된 순간이다.

"개혁을 하다 보면 그 정도 아픔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변할지 모른다. 벼랑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해 보라. 참 무책임하고도 냉혹하게 들릴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세종대왕 사례를 거론하며 개혁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세종대왕은 '전분 6등법, 연분 9등법'으로 불리는 토지세금을 도입하면서 중국 사례를 빠짐없이 검토한 데 이어 놀랍게도 백성 17만명의 뜻을 묻는 여론조사까지 실시했다. 또 찬성 여론이 높았지만 특정 지역에서 시범 실시를 하면서 부작용을 따졌다. 그런 식으로 25년에 걸친 연구와 검증 끝에 세금개혁안을 내놓았다.

임기 5년짜리 대통령에게 그런 여유가 있을 리 없지만 그렇다고 마음만 조급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21대 국회에서 여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자 벼락치기식 정책에 대한 걱정은 한층 커졌다. 개혁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더 고민하고 더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최경선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