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함(Equity)』은 모든 사람이 재화를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만큼 재화를 받음으로써 같은 조건에 서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그림이 하나 있다. 야구장 펜스 밖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상황을 비교한 두 개의 그림이다.
한쪽 그림에서는 키가 다른 세 사람이 똑 같은 높이의 상자를 하나씩 딛고 서 있다. 그 중 키가 작은 사람은 경기를 아예 볼 수 없다.
다른 한쪽 그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 가장 작은 사람에게 자신의 상자를 양보했다. 가장 작은 사람이 두 개의 상자를 딛고 올라서면서 세 사람 모두가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그림에는 『평등은 정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Equality doesn’t mean justice.)』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평등함(Equality)과 공평함 (Equity)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의 세 사람이 밟고 선 상자들은 사회의 공공자산과 같다. 세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도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공존이 상생의 길임을 놓치지 않을 때 기울어진 운동장을 복원하는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계층 간의 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고, 이제는 계층 간 이동도 힘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사회이동성이 낮아지면 우리 사회의 자원이 대물림과 같은 덜 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분배되고, 결국에는 국가 전체의 생산성과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런 현상이 그 사회의 통합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그 해법을 놓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다.
불평등은 한두 가지 정책만으로 해결할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고용과 노동, 성장과 분배, 대기업과 중소기업, 조세형평성, 교육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정부나 정책이라도 단기간에 빠른 효과를 내려고 한다면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가용자원을 국민의 인생주기에서 최대한 이른 시점에 투입하는 것이다.
2018년 사립 유치원 사태에서도 드러났지만,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이미 유아기 때부터 시작되고 성인이 될수록 더욱 고착화된다. 따라서 이 단계에 가능한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면 출발 시점에서의 격차를 줄여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미국 시카고대 제임스 해크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유아기가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가장 높은 단계라고 한다. 즉, 저소득층 대학생에 대한 등록금 지원이 투자한만큼 1:1의 효과를 낸다면, 초중등 단계에서는 1:3, 유아 단계에서는 1:8의 효과를 낸다고 한다.
해크먼 교수는 “저소득층 유아에게 집중 투자한다면 이들의 소득이 늘어남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빈곤율 감소 측면에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하버드대 라지 체티 교수 연구팀이 미국을 700여 개 지역으로 나누어 지역별 사회이동성과 여러 지역 특성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대학 이전 시기의 교육에 대한 투자가 높은 지역일수록 사회이동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크게 벌어진 격차를 줄여 나가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애초에 모두의 출발선이 같도록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선택을 늦출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림 설명 : 『공평함(Equity)』은 모든 사람이 재화를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만큼 재화를 받음으로써 같은 조건에 서는 것이다.
** KBS 명견만리 제작팀, 『명견만리(明見萬里), 모두를 위한 공존의 시대를 말하다』, p. 35 ~ 41
p.s. 전문코치의 일원으로서 향후 청소년 코칭을 통한 사회공헌을 염두에 두어왔으나, 이 글을 통해 앞으로는 저소득층 유아에 대한 코칭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인사이트를 받았습니다. 유아 심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할 숙제가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