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2020.08.20
새로운 가전제품이나 기계를 구입하면 항상 설명서가 포함되어 있다. 처음 써보는 컴퓨터, 세탁기, 자동차…. 고장 내지 않고 제대로 활용하려면 기계의 본질과 한계를 이해하는 건 당연히 중요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하나 있다.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느 기계보다 더 복잡하고 중요한 기계를 아무 설명도, 매뉴얼도 없이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인간의 '뇌'다.
수천만 년에 걸친 진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뇌. 최첨단 슈퍼컴퓨터보다 더 정확히 물체를 인식하고, 그 어느 인공지능 기계학습 알고리즘보다 더 뛰어난 학습 능력을 자랑하지만 반대로 싸구려 전자계산기보다 곱셈을 못하고 지난주 수요일 점심에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아물아물하다. 왜 그런 걸까. 뇌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참과 거짓을 구별하도록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위험하다.
그리고 뇌는 이 위험한 세상에서 나와 '내 편'의 생존 확률을 극대화하도록 만들어진, '인생'이라는 '극한직업'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존도구인 것이다.
더구나 지난 30만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 뇌의 기본 하드웨어는 본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사냥과 채집을 위해 최적화됐지만 문명과 도시를 만든 우리는 이제 그런 뇌를 사용해 철학책을 쓰고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현대인의 행동과 판단에는 '인지적 악센트'가 포함되어 있다. 마치 성인이 되어 배운 외국어 발음에서 모국어 억양을 들을 수 있듯 말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기존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 인간(homo economicus)'과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인지적 악센트를 소개한다.
기존 선택에서 벗어나길 싫어한다는 '현상유지 편향', 현재에 비해 미래가치를 너무 급격하게 과소평가한다는 '쌍곡할인', 그리고 새로 얻는 것을 통한 행복보다 가진 것을 잃는 불행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손실회피 편향'. 그렇다면 비슷하게 질문해볼 수 있겠다. 기존 정치와 외교에서 가정하는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인간(homo politicus) 역시 뇌의 기본 성향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250년 전 태어난 독일 철학자 헤겔 덕분일까. 우리는 여전히 역사에는 의미와 목표가 있고 역사의 방향성은 이성을 기반으로 한 '세계 정신(Weltgeist)'을 통해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인간과 세상을 마치 잘 길들여진 증기기관으로 착각했던 19세기식 난센스다. 뇌의 대부분 판단은 비이성적이고 자연과학적 필연과 확률적 우연의 결과인 역사에 무슨 절대목표가 있겠는가. 더구나 '유전적 내 편'을 들도록 하드웨어 차원으로 코딩되어 있는 인간에게 정치와 외교는 대부분 이성의 실천이 아닌 나와 너, 내 편과 상대편,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식별 알고리즘에 불과하다. 덕분에 내 편의 말은 언제나 옳고 정의롭지만 상대편의 주장은 들을 가치조차도 없다. 미국인에겐 미국, 이란인에겐 이란, 유대인에겐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인에겐 대한민국이 언제나 가장 정의롭고 옳다는 착시 현상이 생기는 이유다.
그리고 내 편보다 더 중요한 존재는 물론 나 자신이겠다. 내가 없다면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무의미할 테니 말이다. 덕분에 우리 두개골 속 뇌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정의롭고, 내가 더 불쌍하고, 내가 더 옳다고. 물론 반대로 언제나 나는 틀리고 타인이 옳다는 말이 아니다. 뇌는 언제나 자신의 정당성을 가장 과대평가하기에 지금 내게 가장 확실한 것이 어쩌면 가장 틀리고, 나에겐 상식이 어쩌면 가장 비합리적이고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20세기 초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렇기에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유란 항상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라고.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