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20-09-01 04:06
정부 부동산 정책을 바라보는 경제학자들의 차가운 시선이 설문조사 결과로 드러났다. 경제학자 10명 중 7명은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 현상의 원인이 정책 탓이라고 평가했다.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이 임차인의 임대부담을 더 늘릴 거라는 의견도 다수였다. 치솟은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최근까지 견지해 온 정부의 시선과 배치되는 결과다.
한국경제학회는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인식이 반영된 설문조사 결과를 31일 공개했다. 5가지 문항으로 구성된 이번 설문조사에는 문항별로 35~37명이 참여했다.
수도권 주택가격 폭등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6%는 공급 부족과 양도소득세 중과, 임대사업용 주택 장기보유가 맞물린 결과라고 평가했다. 설문에 참여한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조치가 강화되면서 (다주택자가) 수요가 높은 지역 부동산을 제외하고 매각하자 오히려 선호 지역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임대차 3법이 부정적 영향을 미칠 거라는 응답도 72%에 달했다. 이들은 임대인들이 장기적으로 전세계약 자체를 회피하면서 전세매물이 부족해지고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나타나 임대부담이 더 늘어날 거라고 내다봤다. 정부의 생각대로 임대차 3법으로 임차인 권리가 강화되고 보호될 거라고 평가한 이는 14%에 불과했다.
취득세와 보유세, 양도소득세를 모두 강화한 ‘7·10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정책에 동의하는 이는 3%에 그쳤다. 반면 응답자의 56%는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강화하는 한편 취득세와 양도세는 낮춰야 한다고 응답했다. 홍인기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취득·양도세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취해야 할 부동산 목표에 대해서는 ‘안정’을 꼽았다. 응답자의 54%가 서민·청년 주거 안정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주택 가격 안정’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23%를 차지했다. 반면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이 정책 목표가 돼야 한다는 응답은 9%에 그쳤다. 부동산 시장 자체가 순리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공급 정책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8%로 압도적이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택 공급과 함께 거래 활성화를 위한 조세제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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