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13.10.13
국내총생산(GDP) 대비 금융산업 부가가치 비중을 10년 내 10%로 높이는 `금융비전 10-10` 달성을 위해 자본시장의 역할이 특히 강조된다. 이런 가운데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해 줘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투자일임업은 펀드업과 함께 자산운용산업의 양대 축을 이루는 것으로, 투자자로부터 주식, 펀드, ELS(주가연계증권) 등 금융투자상품 등에 대한 투자 판단을 일임받아 투자자 개별 계좌로 운용해주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국내에선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들이 기관 또는 개인투자자 자금을 랩어카운트, 위탁운용의 형태로 약 367조원의 자금(지난 6월 말 기준)을 운용하고 있다.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해 준다는 것은 결국 은행도 자산운용 시장에 끼어들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일대일 맞춤형 자산운용서비스인 투자일임업은 지금도 은행이 자산운용 자회사를 통해 겸업(兼業)을 하고 있는데, 이를 직접 겸영(兼營)까지 하자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국내 금융산업 내의 밥그릇 싸움 차원이 아니라 자산운용업을 하는 은행의 출현이 자본시장에 도움이 될지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 금융비전 10-10, 나아가 금융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우선 투자일임 겸영은 은행산업에 약이 되지 않는다. 지금 은행산업이 겪고 있는 성장성 정체는 그간 은행이 추구해 온 국내시장 중심의 성장전략의 한계를 보여준다. 은행의 미래 먹거리 문제는 결국 해외시장 진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런 마당에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 지주회사 방식의 금융겸업체제를 허물면서까지 또 다른 내수시장인 투자일임업에서 다시 동력을 찾으려는 주장은 과거의 교훈을 애써 외면하는 것일 수 있다.
글로벌 금융규제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산업은 금융안정을 위해 겸영에서 겸업(영국), 겸업에서 분리(미국)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만 유독 현행 지주회사 방식의 겸업체제에서 유럽식 겸영체제로 거꾸로 가야 하는 합당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금융정책의 신뢰성과 예측가능성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또 자산운용업의 금융벤처 속성과도 충돌한다. 자산운용업은 자본력보다 투자 아이디어와 전략이 중요한 창조금융 업종이자 자율과 창의를 먹고사는 고부가가치 업종이다. 은행의 자산운용업 진출은 과거 금융지주에 인수된 증권사 사례에서 보듯 조직문화를 보수화시키고 기존 자산운용회사를 은행의 하위위탁 운용회사로 전락시켜 금융벤처로서 속성이 약화될 것이다. 수익의 대부분은 은행의 몫이 되고, 경제적 인센티브가 약화된 위탁운용사의 혁신동력은 약화될 것이다. 펀드시장도 위축될 것이다. 은행 지점들이 운용보수와 판매자문보수를 모두 취할 수 있는 투자일임상품을 권유하는 데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라는 측면에선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동양증권 사태에서 보듯 투자상품의 불완전판매는 제조와 판매의 분리를 통해 예방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다. 세계적인 추세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 판매조직을 가진 은행이 자산운용회사가 된다는 것은 투자상품 제조와 판매의 분리 흐름과 역행한다. 그 위험은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키코, 퇴직연금의 과도한 자사상품 편입, 계열사 펀드 중심의 판매관행 등으로 은행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 마당에 유사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정책을 되풀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자일임이 아니라 계열 상품 판매를 줄이고 개방형 판매채널로 나아가 신뢰를 쌓는 것이다. 그래야 자산관리산업도 커지고 투자자도 행복해진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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