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재건축

공공주도 정비사업 날벼락 맞은 '서울역 쪽방촌'.동자동 "동네가 초상집 분위기… 땅 뺏어간다는 정부, 북한보다 더하다"

Bonjour Kwon 2021. 2. 14. 19:34

누구 하나 죽어봐야 정신 차릴 건가"… 

설 연휴에도 적막감만 감도는 동자동 "동네가 초상집 분위기… 땅 뺏어간다는 정부, 북한보다 더하다""두 눈 시퍼렇게 뜨고 내 땅 뺏기게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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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17:28

용산재개발 참사의 악몽, 그보다 더할 수도

 

▲ 13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대에는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서울역 쪽방촌' 주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주도 정비사업에 대해 "쪽방촌에 산다는 무시도 참아가며 살아온 삶의 터전을 나라가 빼앗아 가려 한다"며 "누구 하나 죽어봐야 정신차릴거냐"고 호소했다. ⓒ노경민 기자

설 다음날인 13일 오후 본지 취재진이 찾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일명 '서울역 쪽방촌' 일대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명절 연휴인데도 동네를 오가는 가족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쓸쓸함이 가득했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새해를 맞은 설렘보다는 근심·걱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감안하더라도, 이날 동자동 곳곳을 돌아다니던 취재진에겐 문을 연 가게보다 문을 닫은 가게를 찾는 게 쉬웠다. 한마디로 '죽은 동네'나 다름없었다. 이 일대에 불어닥친 공공개발 악재로 지역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된 탓이었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내 땅 뺏기게 생겼는데 명절은 무슨 명절이야? 이 동네 지금 초상집 분위기야. 보면 몰라?"

 

공원 앞에 앉아 멍한 얼굴로 골목만 바라보던 72세 송모씨. 취재진이 송씨에게 "명절 연휴인데 어디 놀러 안 가시나"라고 말을 건네자 이처럼 다짜고짜 윽박질렀다. 그러더니 이내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면 몰라? 동네가 초상집이라고"

 

 

송씨는 "내가 평생을 이 동네에서 살았어. 재개발된다 재개발된다 하니까 가진 거 없이 그거만 바라보고 버텼단 말이지"라며 "그런데 정부가 갑자기 땅을 뺏어간다는데 이런 날벼락이 어딨어? 이제 길바닥에 나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간 서울역 쪽방촌 주민들은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번듯한 새 집을 장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수십년을 버텨왔다고 송씨는 하소연했다.

 

"내가 여기 살면서 집이 좁아서 손주 녀석들 놀러오란 말도 못해. 기자양반, 길 좀 한 번 둘러봐요. 어디 차 댈 마땅한 곳 하나 있나. 그래도 내가 버티고 버틴 건 우리 자식한테 도움이라도 되려고, 그거 하나였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동자동 토지 소유자의 한탄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내 땅 강탈당할 지경… 누구 하나 죽어봐야 정신 차릴거야?"

 

그는 "'쪽방촌'에 산다는 사실이 혹시 자식들에게 부끄러움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나 하나 조금만 고생하면 그래도 애들에게 뭐 하나는 남겨줄 수 있겠지'라는 생각만으로 살아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런데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나라가 내 땅을 맘대로 뺏어간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진짜 누구 하나 죽어봐야 정신 차릴거냐고"라고 언성을 높였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주도 정비사업은 서울역 쪽방촌 일대에 악재가 됐다. 정부는 지난 4일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총 84만6000가구에 이르는 공공주택을 5년 동안 공급하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했다. 

 

공공 주도로 기존 재개발·재건축 구역의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고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 주거지를 새롭게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공공 주도로 저렴한 주택을 대량 공급하면 집값이 안정화되고 전·월세난도 해소될 것이라는 게 정부가 내건 명분이다.

▲ '서울역 쪽방촌' 주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주도 정비사업에 대해 "왜 정부가 공익이라는 목적으로 내 땅을 뺏어가느냐"며 "북한보다 더 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노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