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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잔혹사]① 반복되는 스캔들 ‘임상 성공’ 뻥튀기 왜 계속되나?국내서 글로벌 3상 성공-상업화는 사실상 도박.◇ 한국 바이오스타트업, 美 FDA 허가 ‘0건’.기술매각이최선?

Bonjour Kwon 2021. 3. 2. 08:45


[바이오잔혹사]① 반복되는 스캔들 ‘임상 성공’ 뻥튀기 왜 계속되나
입력2021.03.02.조귀동 기자

성공 드문 美 시판 허가 내세우다 ‘수습 불가’
국내서 글로벌 3상 성공-상업화는 사실상 도박
장기 투자 필요한 산업이지만 주가에 일희일비

신약개발 업체 바이오 기업 에이치엘비(028300)가 미국 내 임상시험 3상 결과를 허위공시했다는 혐의로 금융 당국 조사를 받고 제재 심의를 앞두고 있다는 게 알려지자 바이오 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였던 신라젠 경영진이 미국 임상 시험 실패 사실을 숨기고, 지분을 매각한 사건을 비롯해 지난 1~2년간 유독 바이오 신약 개발사들에서 임상 시험 실패로 촉발된 스캔들이 이어져 왔다"며 "금융 당국이 제재에 나설 수밖에 없던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산업 안팎의 전문가들은 유독 신약 개발 회사들, 그것도 스타트업에 가까운 업체들에서 집중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국내 바이오산업의 글로벌 신약 상용화 경험이 아직 일천(日淺)하다는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최종 통과한 바이오 스타트업이 한 곳도 없다.

그럼에도 코스닥 시장 등 공모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신약 개발 상황에 대한 일관된 발표 기준이 없다는 점이 자본시장에서 ‘거품’을 만든다. "임상개발에 대한 진행 상황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발표하는 소수의 업체에서 집중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게 임정희 인터베스트 전무의 설명이다.

신약개발이 진척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의 출구전략이 없다는 것도 스캔들을 유발하는 또 다른 배경이다. 신약 성공 기대감에 몰려든 자금들에 대한 부담에 회사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것이다. 기대 심리에 급격히 오른 주가에 경영진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경우는 그나마 낫다. 신라젠(215600)처럼 임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먼저 팔거나, 헬릭스미스 같이 투기적인 금융투자에 나섰다가 대규모 손실을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신약개발 산업은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내에서 생태계 형성이 늦은 편이고, 적합한 가치 평가와 상장 전 투자 모델이 안착하지 못했다. 성공 확률이 낮고, 기술 평가가 어려운 산업이라면 벤처캐피털(VC) 등이 주된 자금 공급원이 되거나, 아니면 대형 바이오 회사가 협업에 나서면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관련 생태계 조성이 초기 단계고, 워낙 신약 개발에 요구되는 자금이 많다는 한계가 있다.

임상 2상 통과 정도에서 기술을 매각하는 성공 모델은 안착 단계지만, 그보다 리스크가 큰 임상 3상은 성공 사례도, 실패할 경우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프랙티스(행동 양식이나 방침)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결국 공모시장에서 기업이 알아서 자금을 확보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 기업들에 의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 한국 바이오 스타트업, 美 FDA 허가 ‘0건’

지난 2~3년간 스캔들을 일으킨 바이오 업체들은 대부분 신약 개발 스타트업이다. 이 업체들은 대개 미 FDA 허가를 목표로 내세우고, 조만간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처럼 발표해 주가가 급등했다가 결국 장기간 신약 개발이 난항을 겪으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심한 경우 경영진의 경영 행태가 논란거리가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2020년 초 한올바이오파마(009420)의 미국 임상 3상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당시 주가가 26%가량 떨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한올바이오파마는 미국 임상 시험 결과가 알려지지 불과 닷새 전까지 임상 3상에 성공했다고 발표해왔다.

국내 바이오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의 개발·상용화 역량을 고려하면 글로벌 3상 상용화라는 목표가 아직 ‘허상’에 가깝다고 본다. 한 바이오 업체 CEO는 "자본시장에서 문제가 된 업체들 대부분이 스타트업인데, 국내 스타트업 중 미국 임상 3상 통과 사례는 아직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기업인 입장에서 긍정적인 면이지만, 이걸 투자 재료 삼아 기업 한 곳에 수조원의 자금이 몰리면 탈이 나기 십상이다"고 말했다. 바이오 신약 기업들의 주가가 지나치게 과대 평가된 게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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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국내 제약·바이오사에서 미국 FDA의 문턱을 넘은 제품은 현재까지 모두 22종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를 제외한 신약은 6종에 불과하다. LG화학, SK바이오팜, 동아ST 등이 개발한 약들이다.

전통 제약사와 대기업을 제외하고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이 신약 허가 최종 관문인 임상 3상을 통과해 미국 FDA로부터 허가를 받은 사례는 ‘0건’이다. FDA에 따르면 한 후보물질이 임상1상에 들어가 2상, 3상을 거쳐 신약허가 신청까지 통과할 확률은 9.6%에 그친다.

문제는 여기에 자금이 대규모로 투입된다는 것이다. 약에 따라 다르지만, 유한양행이 2상 후 얀센에 기술 수출에 성공한 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의 경우 2000억원에 가까운 개발비가 들었다. 3상으로 넘어갈 경우 조 단위 자금이 들었을 거라는 게 제약업계의 설명이다.

FDA 승인을 받는다고 해도 상용화라는 또 다른 난관을 넘어야 한다. 미국 등 해외 의료기관들이 신약을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의료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마케팅 능력과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 "신약 분야는 정보기술(IT) 산업과 다르게 글로벌 업체와 협업하지 않으면 제품 개발과 상용화 자체가 어렵다"는 게 바이오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 될 법한 신약이면 1~2상서 기술 수출이 일반적

국내 바이오 회사들의 글로벌 진출 경로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임상 1~2상에 성공한 뒤 후보물질을 기술 수출하는 것이다. 이른바 ‘임상 2상 후 라이선스 아웃(license out)’ 전략이다.

실제 사람을 상대로 실시되는 3상 이전 단계에서 혁신적 기술임을 보인 뒤, 신약 개발 경쟁력과 자본력을 가진 글로벌 제약사에 로열티를 받고 기술이나 특허권을 판매하는 형태다. 한 바이오 업체 CEO는 "통상 바이오 벤처가 개발한 혁신 신약 후보물질은 임상 1상과 2상 사이에 글로벌 제약사 등에 기술 이전되는 사례가 다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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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복지부 신약개발분야 R&D사업의 주요 기술수출 성과. /보건복지부

기술 수출은 바이오 스타트업이 가장 큰 성과를 내는 분야 중 하나다.

레고켐바이오(141080)가 지난해 항체-약물 복합체(ADC) 항암제 후보 물질인 ‘LCB67’ 기술 및 전 세계 판권(한국 제외)을 미국 픽시스온콜로지에 판매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계약 규모는 3300억원이었다. 이 회사는 영국 익수다테라퓨틱스에 4970억원 규모의 원천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레고켐바이오 뿐 아니라 알테오젠(196170), 보로노이, 올릭스(226950), 퓨쳐켐(220100)등 다수의 바이오스타트업들이 수천억원 대의 대규모 기술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바이오 업계가 달성한 기술수출 계약은 총 13건(9개 기업)으로 전체 규모는 10조1500억원이었다.

글로벌 임상 3상에 도전한다는 바이오 신약 회사의 경우 그야말로 ‘모험’을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글로벌 3상에 도전한다는 스타트업들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헬스케어 펀드 운용역은 "글로벌 3상 성공 가능성만을 내세우는 기업의 경우 역설적으로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에 가까운 업체가 글로벌 3상을 내세우면 도리어 기술 경쟁력이 낮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다른 바이오업체 관계자는 "자본력이 없는 국내 순수 바이오 스타트업이 임상 1상부터 3상까지 모두 다 해낸다고 주장하는 것은 막연한 허상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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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이 지난 16일 인터넷 동영상서비스 유튜브를 통해 미국 내 임상시험 허위공시 혐의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에이치엘비

◇ "실패하면 퇴로 없어 솔직하기 어려워"

바이오 신약 개발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을 경우 퇴로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퇴로가 없다 보니 투자자들이 두려워서라도 신약 개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감추거나, 멋대로 해석해 분칠하는 경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 바이오 업체 재무담당 임원은 "개발이 순항할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개발 실패나 지연 등의 상황에 대처할 역량을 갖췄느냐가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다른 신약으로 선회하거나 아니면 인수합병 등으로 기업을 정리해야 하는데 국내 여건상 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다"라고 귀띔했다.

바이오 신약 개발 회사들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돼 있고, 시가총액이 많으면 수조원에 달한다는 것도 ‘실패’를 인정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증시 투자자들의 반발과 저항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바이오담당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에게 거짓말을 유도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한 바이오 스타트업 재무담당 임원은 "성난 투자자들을 상대하는 게 두렵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신약개발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고위험 투자’다. 통상 신약개발은 임상 1상(수개월~1년, 20~80명), 임상 2상(1~2년, 100~400명), 임상 3상(3년~5년 최소 1000명~1만명 이상)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은 통상 10~15년. 5000~1만개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살아남는다. 비용도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 이상이 든다. 혁신 신약 개발에만 드는 비용은 1조5000억~1조7000억원이 든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성공확률은 9.6%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성공 확률이 낮고 자금이 많이 소요되지만, 성공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산업은 장기 투자를 하는 VC가 전주(錢主)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내 VC의 경우 아직 바이오산업에 투자할 만큼 규모가 크지 않고 전문성이 부족하다.

한 VC 운용역은 "상장 후 지분 매각을 통해 빠져나가는 게 주요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사업 성과가 없어도 기술력이 인정되면 코스닥 시장에 상장 가능한 특례상장제도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여러 건의 바이오업체 창업 경험이 있는 차형준 포스텍 교수는 "IT와 달리 개발 단계에 대규모로 자금이 소요되는 바이오산업에서 국내 VC 역할은 제한적이다"고 설명했다. 결국 공모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몇몇 불량 기업들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 조성되는 셈이다.

[조귀동 기자 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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