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2 15:35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정부가 재건축 단지 조합원이 분양권을 얻으려면 2년간 실거주하게 하려 한 규제가 백지화됐다.
12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날 국토법안소위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빼기로 했다.
재건축 조합원의 실거주 의무 부여 방안은 작년 6·17 대책의 핵심 내용이었으나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 통과가 지연되다 결국 이날 법안에서 빠지게 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법안은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이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해당 단지에 2년 이상 실거주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서울 강남권의 오래된 재건축 단지는 집이 낡고 협소해 집주인이 대부분 외지에 살면서 전월세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조합원에 2년 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상 재건축 사업의 중단으로 인식됐다.
갑자기 집주인이 조합원 분양권을 얻기 위해 재건축 단지로 들어가려 하면서 애꿎게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정부나 여당에서도 최근 이와 같은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공유됐다.
특히 작년과 달리 최근은 주택 공급의 중요성이 부각하면서 정부 내에 '백묘흑묘'론까지 제기되며 민간 개발사업도 공익성이나 시장안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선 적극 지원한다는 기류로 바뀌어 이 규제의 폐기 가능성이 일찌감치 거론됐다.
보통 법안이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등 중요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자동폐기될 때까지 내버려 두는 관행이 있었으나 당정은 이날 이 법안을 안건에 올려 처리했다.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화 추진 여부에 대한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앤다는 취지다.
이번 정부에서 숱하게 주요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중요 규제가 철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합원 실거주 의무 부여 방침이 발표된 이후 서울 압구정동 등 초기 재건축 단지의 사업 속도만 올라갔다.
당정의 후속 입법이 추진된 작년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강남구 개포동 주공 5·6·7단지를 비롯해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방배동 신동아,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 양천구 신정동 수정아파트 등이 재건축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압구정동에서도 올 2월 4구역을 시작으로 5·2·3구역 등이 잇달아 조합설립 인가를 얻었다.
banana@yna.co.kr
ㅡㅡㅡㅡ
“전셋값만 올려놨다”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 1년만에 백지화
정순우 기자
입력 2021.07.12 17:31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이 나중에 새 아파트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간 실거주하도록 한 정부 규제가 1년 1개월 만에 전면 백지화됐다. 투기를 막는 순기능보다 집주인들의 입주로 기존 세입자들이 밀려나고 전셋값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반(反)시장적 규제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설익은 정책으로 애꿎은 세입자 피해와 재건축 시장의 혼란만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12일 법안소위를 열어 재건축 2년 실거주 조항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실거주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해 ‘6·17 대책’에서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화 규제를 발표했고, 그해 9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후속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조합원의 실거주를 의무화하는 정책과 세입자를 보호하는 임대차법 사이에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삭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과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서울시와 협의하는 등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투기 방지 장치는 어느 정도 마련됐다”고 덧붙였다.
애초 정부와 여당이 재건축 실거주 규제를 만든 것은 개발 이익을 노린 갭 투자(전세 낀 매매) 등 투기를 차단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작년 7월 말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등 주택임대차법에다 재건축 아파트 실거주 규제까지 맞물리면서 최악의 전세난을 불러오는 역효과를 낳았다.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가 2년 기한을 채우려고 실거주를 결정하면서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후 아파트에서 살던 세입자들이 밀려나 ‘전세 난민’으로 떠도는 상황이 벌어졌다. 가뜩이나 전세 물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전셋값도 급등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2678만원으로 1년 전(4억9148만원)보다 28% 뛰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낡은 아파트에 입주하거나 비워두게 된 집주인들도 불만을 쏟아냈다. 심지어 실거주 의무 법안을 낸 조응천 의원이 본인 소유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권을 받으려 자녀를 입주시킬 계획을 세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도 “재건축 조합원 실거주 의무 규제가 투기는 못 잡고 세입자들만 잡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비판 여론이 들끓은 탓에 재건축 2년 실거주를 담은 법 개정안은 1년 넘도록 국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다가 이날 핵심 내용이 삭제된 상태로 소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작년 6월 이후 정부 발표를 믿고 행동에 나선 집주인과 그 세입자들은 굳이 안 겪어도 될 불편과 재산상의 손해까지 입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에 살다가 지난 5월 집주인 이주로 새로 전셋집을 구한 40대 직장인은 “새 전셋집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그동안 모은 돈을 다 털어 넣고 은행 대출까지 받았다”며 “잘 살고 있던 국민을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 게 과연 국가가 할 일이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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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마아파트 수천만원 인테리어하고 들어간 집주인 '부글부글'
입력2021.07.13
국회 국토위 법안심사 소위서
재건축 2년 실거주 철회 결정 이후…
"오락가락 대책에 집주인도 세입자도 피해자"
"전세매물 줄지는 않지만…전셋값 하락도 어려워" 전망
대치동 은마아파트. 열악한 주거환경에도 주변 교육여건이 좋아 한 때는 '전세천국'으로 불렸었다. / 자료=한경DB
"국민들 O개 훈련시키나요", "정책이 애들 장난입니까?", "쫓겨난 세입자, 수천만원 인테리어하고 들어간 집주인도 있습니다. 피해자가 한두명이 아닌데, 소송 갔으면 좋겠네요", "사과 한마디 없이 뒤집으면 다 인가요?", "부랴부랴 조합 설립하고, 집값은 폭등했는데 정부의 의도가 대체 뭐였나요?"…(부동산 카페 커뮤니티)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권 취득을 위한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가 1년여 만에 '없던 일'이 되자 부동산 커뮤니티와 단체채팅 방에는 성토글이 넘쳐나고 있다. 전문가들 또한 정부의 설익은 정책에 국민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이번 백지화로 인해 시장에 나온 전세물량은 다소 늘겠지만, 이미 오를대로 오른 전셋값을 내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고 있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법안심사 소위를 열어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규정을 삭제한 채 통과시켰다. '2년 실거주 의무'는 지난해 6·17 대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내용이다. 그동안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 통과가 지연되고 시행이 미뤄졌고, 투기자금 유입이라는 본래 취지 보다 세입자 주거 불안 우려가 더 크다고 판단에 이번에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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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보면 시행되지 않은 법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없어야 하지만, 시행을 감안해 미리 움직인 조합원과 세입자 등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가장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은 '낡은 주택이라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았던 세입자'다. 지난해 임대차법이 시행되고,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가 예고되면서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와 살게 되면서 쫓겨난 이들이다.
은마아파트 수천만원 인테리어하고 들어간 집주인 '부글부글'
전세매물은 줄고 전셋값은 오르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버티거나 외곽으로 내몰린 무주택자들이다. 대표적인 재건축 아파트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전용 84㎡의 전셋값이 2년 만에 4억원 이상 올랐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7월만 하더라도 5억원 초반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달 나온 전세계약은 최고 10억원에 달했고, 호가는 11억원까지 올라 있다. 계약갱신이 된 가구를 제외하면 신규로 진입하기 쉽지 않은 금액대다.
대치동의 A공인중개사는 "워낙 이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다보니 실거주를 감안하고 매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이번 조치로 전세매물이 크게 늘어나는 등 분위기가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2년간 매매·임대가 금지되고 실거주를 해야 한다. 대치동은 지난해 6월 지정되고 매매가가 잠시 주춤했을 뿐 꾸준히 집값이 상승했다. 지난달 전용 84㎡에 26억원 거래가 나오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는데, 작년 6월 최고가(22억1500만원)와 비교하면 4억원가량 오른 수준이다.
또다른 B공인중개사는 세입자들의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몇 년 전만해도 애들 교육 때문에 4억~5억원에 참고살았던 세입자들은 몽땅 나갔다고 보면 된다"며 "이사하고 아이들 전학시키면서 세입자들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그 돈(5억원가량)들고 경기도 쪽에 일찌감치 집 산 사람들은 양호하다"며 "전세계약 갱신하면서 버티고 있는 분들은 이번에 집을 빼게되면 꼼짝없이 갈데가 없다보니 걱정이 많더라"라고 했다.
실거주 의무를 앞두고 조합설립이 되면서 집값이 급등한 압구정 현대아파트. / 자료=한경DB
실거주 의무를 앞두고 조합설립이 되면서 집값이 급등한 압구정 현대아파트. / 자료=한경DB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시장에서 전세매물이 더이상은 줄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향후 전망에서는 강남과 나머지 지역이 엇갈렸다. 집주인들의 실거주 비율이 높은 강남 전세시장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지만, 노원구나 양천구의 재건축 아파트에서는 전세매물이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시장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정부의 이번 백지화 조치는 잘했다고 본다"면서도 "6·17대책 당시 전문가들이 모두 반대했던 대책을 밀어붙이다가 중간에 피해자들이 나오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본의 아니게 쫓겨난 세입자들에게 사과가 필요하다"며 "실거주 의무를 피하겠다고 무리하게 조합을 설립한 아파트들의 후폭풍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 교수는 "강남은 매매시장으로 전환됐고, 임대차시장은 월세로 변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강남에서 전세매물은 워낙 귀한데다 집주인들이 이사를 나가면서 전셋값을 확 올려서 받을 가능성도 있어 전셋값이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목동이나 상계동 등에 대해서는 "재건축 단계가 멀었거나 다주택자들의 경우에는 전세매물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도 "보유세 부담이 있다보니 가격조정이 바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가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방침을 밝힌 후 재건축 단지들의 조합설립이 빨라졌다. 때문에 1970~1980년대에 지은 압구정, 신반포 등 재건축 아파트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실거주 의무를 감안해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가 살면서 임대차 물건은 줄어들고 전셋값과 월세가 동시에 급등했다. 이러한 영향은 서울 외곽과 경기·인천까지 확대되면서 수도권 전반적인 집값 상승의 신호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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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재건축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곳은 강남구 개포동 주공 5·6·7단지를 비롯해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방배동 신동아,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 양천구 신정동 수정아파트 등이다. 압구정동에서도 지난 2월 4구역을 시작으로 5·2·3구역 등이 조합설립 인가를 받으면서 거래되는 집마다 최고치를 경신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정부가 재건축 단지 조합원이 분양권을 얻으려면 2년간 실거주하게 하려 한 규제가 백지화됐다.
12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날 국토법안소위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빼기로 했다.
재건축 조합원의 실거주 의무 부여 방안은 작년 6·17 대책의 핵심 내용이었으나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 통과가 지연되다 결국 이날 법안에서 빠지게 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법안은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이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해당 단지에 2년 이상 실거주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서울 강남권의 오래된 재건축 단지는 집이 낡고 협소해 집주인이 대부분 외지에 살면서 전월세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조합원에 2년 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상 재건축 사업의 중단으로 인식됐다.
갑자기 집주인이 조합원 분양권을 얻기 위해 재건축 단지로 들어가려 하면서 애꿎게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정부나 여당에서도 최근 이와 같은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공유됐다.
특히 작년과 달리 최근은 주택 공급의 중요성이 부각하면서 정부 내에 '백묘흑묘'론까지 제기되며 민간 개발사업도 공익성이나 시장안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선 적극 지원한다는 기류로 바뀌어 이 규제의 폐기 가능성이 일찌감치 거론됐다.
보통 법안이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등 중요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자동폐기될 때까지 내버려 두는 관행이 있었으나 당정은 이날 이 법안을 안건에 올려 처리했다.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화 추진 여부에 대한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앤다는 취지다.
이번 정부에서 숱하게 주요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중요 규제가 철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합원 실거주 의무 부여 방침이 발표된 이후 서울 압구정동 등 초기 재건축 단지의 사업 속도만 올라갔다.
당정의 후속 입법이 추진된 작년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강남구 개포동 주공 5·6·7단지를 비롯해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방배동 신동아,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 양천구 신정동 수정아파트 등이 재건축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압구정동에서도 올 2월 4구역을 시작으로 5·2·3구역 등이 잇달아 조합설립 인가를 얻었다.
bana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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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만 올려놨다”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 1년만에 백지화
정순우 기자
입력 2021.07.12 17:31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이 나중에 새 아파트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간 실거주하도록 한 정부 규제가 1년 1개월 만에 전면 백지화됐다. 투기를 막는 순기능보다 집주인들의 입주로 기존 세입자들이 밀려나고 전셋값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반(反)시장적 규제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설익은 정책으로 애꿎은 세입자 피해와 재건축 시장의 혼란만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12일 법안소위를 열어 재건축 2년 실거주 조항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실거주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해 ‘6·17 대책’에서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화 규제를 발표했고, 그해 9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후속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조합원의 실거주를 의무화하는 정책과 세입자를 보호하는 임대차법 사이에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삭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과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서울시와 협의하는 등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투기 방지 장치는 어느 정도 마련됐다”고 덧붙였다.
애초 정부와 여당이 재건축 실거주 규제를 만든 것은 개발 이익을 노린 갭 투자(전세 낀 매매) 등 투기를 차단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작년 7월 말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등 주택임대차법에다 재건축 아파트 실거주 규제까지 맞물리면서 최악의 전세난을 불러오는 역효과를 낳았다.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가 2년 기한을 채우려고 실거주를 결정하면서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후 아파트에서 살던 세입자들이 밀려나 ‘전세 난민’으로 떠도는 상황이 벌어졌다. 가뜩이나 전세 물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전셋값도 급등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2678만원으로 1년 전(4억9148만원)보다 28% 뛰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낡은 아파트에 입주하거나 비워두게 된 집주인들도 불만을 쏟아냈다. 심지어 실거주 의무 법안을 낸 조응천 의원이 본인 소유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권을 받으려 자녀를 입주시킬 계획을 세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도 “재건축 조합원 실거주 의무 규제가 투기는 못 잡고 세입자들만 잡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비판 여론이 들끓은 탓에 재건축 2년 실거주를 담은 법 개정안은 1년 넘도록 국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다가 이날 핵심 내용이 삭제된 상태로 소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작년 6월 이후 정부 발표를 믿고 행동에 나선 집주인과 그 세입자들은 굳이 안 겪어도 될 불편과 재산상의 손해까지 입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에 살다가 지난 5월 집주인 이주로 새로 전셋집을 구한 40대 직장인은 “새 전셋집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그동안 모은 돈을 다 털어 넣고 은행 대출까지 받았다”며 “잘 살고 있던 국민을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 게 과연 국가가 할 일이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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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1.07.13
국회 국토위 법안심사 소위서
재건축 2년 실거주 철회 결정 이후…
"오락가락 대책에 집주인도 세입자도 피해자"
"전세매물 줄지는 않지만…전셋값 하락도 어려워" 전망
대치동 은마아파트. 열악한 주거환경에도 주변 교육여건이 좋아 한 때는 '전세천국'으로 불렸었다. / 자료=한경DB
"국민들 O개 훈련시키나요", "정책이 애들 장난입니까?", "쫓겨난 세입자, 수천만원 인테리어하고 들어간 집주인도 있습니다. 피해자가 한두명이 아닌데, 소송 갔으면 좋겠네요", "사과 한마디 없이 뒤집으면 다 인가요?", "부랴부랴 조합 설립하고, 집값은 폭등했는데 정부의 의도가 대체 뭐였나요?"…(부동산 카페 커뮤니티)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권 취득을 위한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가 1년여 만에 '없던 일'이 되자 부동산 커뮤니티와 단체채팅 방에는 성토글이 넘쳐나고 있다. 전문가들 또한 정부의 설익은 정책에 국민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이번 백지화로 인해 시장에 나온 전세물량은 다소 늘겠지만, 이미 오를대로 오른 전셋값을 내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고 있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법안심사 소위를 열어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규정을 삭제한 채 통과시켰다. '2년 실거주 의무'는 지난해 6·17 대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내용이다. 그동안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 통과가 지연되고 시행이 미뤄졌고, 투기자금 유입이라는 본래 취지 보다 세입자 주거 불안 우려가 더 크다고 판단에 이번에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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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보면 시행되지 않은 법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없어야 하지만, 시행을 감안해 미리 움직인 조합원과 세입자 등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가장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은 '낡은 주택이라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았던 세입자'다. 지난해 임대차법이 시행되고,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가 예고되면서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와 살게 되면서 쫓겨난 이들이다.
은마아파트 수천만원 인테리어하고 들어간 집주인 '부글부글'
전세매물은 줄고 전셋값은 오르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버티거나 외곽으로 내몰린 무주택자들이다. 대표적인 재건축 아파트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전용 84㎡의 전셋값이 2년 만에 4억원 이상 올랐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7월만 하더라도 5억원 초반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달 나온 전세계약은 최고 10억원에 달했고, 호가는 11억원까지 올라 있다. 계약갱신이 된 가구를 제외하면 신규로 진입하기 쉽지 않은 금액대다.
대치동의 A공인중개사는 "워낙 이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다보니 실거주를 감안하고 매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이번 조치로 전세매물이 크게 늘어나는 등 분위기가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2년간 매매·임대가 금지되고 실거주를 해야 한다. 대치동은 지난해 6월 지정되고 매매가가 잠시 주춤했을 뿐 꾸준히 집값이 상승했다. 지난달 전용 84㎡에 26억원 거래가 나오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는데, 작년 6월 최고가(22억1500만원)와 비교하면 4억원가량 오른 수준이다.
또다른 B공인중개사는 세입자들의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몇 년 전만해도 애들 교육 때문에 4억~5억원에 참고살았던 세입자들은 몽땅 나갔다고 보면 된다"며 "이사하고 아이들 전학시키면서 세입자들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그 돈(5억원가량)들고 경기도 쪽에 일찌감치 집 산 사람들은 양호하다"며 "전세계약 갱신하면서 버티고 있는 분들은 이번에 집을 빼게되면 꼼짝없이 갈데가 없다보니 걱정이 많더라"라고 했다.
실거주 의무를 앞두고 조합설립이 되면서 집값이 급등한 압구정 현대아파트. / 자료=한경DB
실거주 의무를 앞두고 조합설립이 되면서 집값이 급등한 압구정 현대아파트. / 자료=한경DB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시장에서 전세매물이 더이상은 줄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향후 전망에서는 강남과 나머지 지역이 엇갈렸다. 집주인들의 실거주 비율이 높은 강남 전세시장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지만, 노원구나 양천구의 재건축 아파트에서는 전세매물이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시장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정부의 이번 백지화 조치는 잘했다고 본다"면서도 "6·17대책 당시 전문가들이 모두 반대했던 대책을 밀어붙이다가 중간에 피해자들이 나오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본의 아니게 쫓겨난 세입자들에게 사과가 필요하다"며 "실거주 의무를 피하겠다고 무리하게 조합을 설립한 아파트들의 후폭풍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 교수는 "강남은 매매시장으로 전환됐고, 임대차시장은 월세로 변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강남에서 전세매물은 워낙 귀한데다 집주인들이 이사를 나가면서 전셋값을 확 올려서 받을 가능성도 있어 전셋값이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목동이나 상계동 등에 대해서는 "재건축 단계가 멀었거나 다주택자들의 경우에는 전세매물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도 "보유세 부담이 있다보니 가격조정이 바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가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방침을 밝힌 후 재건축 단지들의 조합설립이 빨라졌다. 때문에 1970~1980년대에 지은 압구정, 신반포 등 재건축 아파트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실거주 의무를 감안해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가 살면서 임대차 물건은 줄어들고 전셋값과 월세가 동시에 급등했다. 이러한 영향은 서울 외곽과 경기·인천까지 확대되면서 수도권 전반적인 집값 상승의 신호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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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재건축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곳은 강남구 개포동 주공 5·6·7단지를 비롯해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방배동 신동아,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 양천구 신정동 수정아파트 등이다. 압구정동에서도 지난 2월 4구역을 시작으로 5·2·3구역 등이 조합설립 인가를 받으면서 거래되는 집마다 최고치를 경신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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