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 시진핑의 신시대②]선부론 넘어 공부론....양극화 해소는 시진핑 최대의 도전과제
중앙일보 2017.10.23
중국 공산당 대회 이틀째인 지난 19일, 각 지방 대표단별 회의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비공개리에 진행되는 중앙위원 선출ㆍ당장 개정안 이외의 비교적 덜 민감한 토론 내용을 공개하면서 언론 보도를 유도하는 일종의 홍보성 이벤트였다.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성ㆍ직할시 서기들이 앞다퉈 강조한 내용은 지역별 탈빈(脫貧), 즉 빈곤퇴치 성과였다. 푸젠(福建)성 서기 유취안(尤權)은 “푸젠의 빈곤인구는 2012년 130만명에서 현재 20여만명으로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후난성 회의에서는 “극빈촌 스빠둥(十八洞)촌의 산간 광천수를 상품화해 수백년 가난에서 해방됐고 주식 15%는 주민 몫이 됐다”고 홍보했다.
극빈촌이었던 스빠둥촌은 환골탈태했다. [출처: 이매진 차이나]
지방 서기들이 역내총생산(GRDP) 성장율 등 경제성장 실적을 과시하기에 바쁘던 몇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지역별 성장율을 서기 평가의 최우선 잣대로 삼아왔던 것을 지난해부터 확 바꿔 빈곤퇴치 목표 달성 여부로 평가하고 목표에 이르지 못하면 엄중 문책키로 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특히 빈곤 인구가 많은 22개 성의 서기들에게 시기별ㆍ내용별로 구체적인 빈곤퇴치 계획서를 제출토록 했다. 그 이후 전국 산간벽지 곳곳에서 빈곤 퇴치 운동이 일어났고 ‘탈빈 공정’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연상시키는 국가 프로젝트가 됐다. 하지만 여기에 투입되는 인력과 자금의 규모는 새마을 운동에 비할 바 아니다. 대기업 헝다(恒大)그룹은 구이저우성 다팡(大方)촌의 주택ㆍ학교 건설과 일자리 창출 등에 110억위안(1조 8700억원)을 쏟아부었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가운데)이 빈곤 지역 중 하나인 구이저우성 비제시에서 노인을 만나고 있다. [출처: 구이저우 민족보]
탈빈 공정 지역 중 하나였던 구이저우 성 비제시. [출처: 차이나닷컴]
빈곤지역으로 꼽히던 구이저우성 비제시 다팡촌은 탈빈공정을 통해 말끔하게 변했다.[출처: 차이나닷컴]
시 주석이 탈빈공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배경은 18일 당대회 연설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중국 사회에 새로운 모순이 출현했다”며 ‘생활수요와 불균형ㆍ불충분 발전간의 모순’을 신(新)시대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이전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모순은 ‘물질문화 수요와 낙후한 생산 사이의 모순’(1981년 11기 6중전회) 이었다. 실용주의자였던 덩은 낙후된 생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잘 살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잘 사는’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했다. 잘사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며 절대 평등주의에 갇혀있던 당시 중국으로선 혁명적 전환이었다.
중국은 소강사회를 열기 위해 재정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반면 시 주석은 도농(都農)ㆍ지역간 균형 발전과 소득 분배 격차의 해소를 통해 공동부유의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식 공부론(共富論)인 셈이다. 시 주석은 “2020년까지 7000만명에 이르는 연간소득 6200위안(105만원) 이하의 빈곤인구를 없애겠다”고 공언해왔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극빈층 구제 사업일 뿐이다. 극빈층은 줄어들어도 중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인 양극화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소득 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는 0.465(지난해 말)로 1년전에 비해 더 높아졌다. 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불균등함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4를 넘으면 심각하게 불평등한 사회로 간주된다. 서민들을 절망으로 몰아 넣는 부동산 폭등이나 부의 세습 문제는 시 주석 집권 이후 더 심해졌다.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도 발목이 잡힐 뿐 아니라 사회 불안의 요소가 된다. 중국의 꿈(中國夢)의 첫 단계는 모든 인민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고 여유를 누리는 소강(小康) 사회 실현이다. 그 목표 시점은 시 주석 임기 내인 2020년이다. 양극화 해결은 소강 사회로 가는 첫 관문이자 시진핑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셈이다.
시 주석 “중국 사회에 새로운 모순 출현”
도농, 지역간 불균형 발전과 양극화 문제 제시
지니계수 0.465로 여전히 ‘심각하게 불평등’
모두가 잘 사는 공동부유 사회가 목표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ㅡㅡㅡㅡ
경향신문
공부론(共富論)의 부상
베이징 오관철
2015.12.01
중국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 주민들의 생활을 얘기할 때 “소금이 있는데 간장은 뭐하러 사?”라는 말이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적이 있다. 구이저우(貴州)성의 한 빈농이 했던 말로 기억된다.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화교 출신의 게리 로크는 지난해 2월 이임을 앞두고 “베이징 같은 대도시는 중국을 대표할 수 없다”면서 “외딴 지역의 작은 마을들을 방문해야 중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농촌에서 정부가 정한 빈곤선인 연간 2300위안(약 41만원)을 밑도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인구는 7017만명으로 남북한을 합친 수와 맞먹는다.
[특파원칼럼] 공부론(共富論)의 부상
중국에서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이 최근 화두로 떠올랐다.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 성장의 과실을 공동으로 누리자는 말이다. 지난 10월 하순 열린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8기5중전회) 이후 부쩍 강조되고 있다. 이 회의가 내년부터 5년 동안 진행되는 13차 5개년 계획을 집중 논의한 만큼 공동부유론은 향후 중국 국정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3·5 계획은 단순한 경제발전 계획이라기보다 총체적인 국가발전 전략이다.
지난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관련 회의에서 “빈곤을 제거하며 민생을 개선하고 점진적으로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며 당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 중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공동부유다.
공동부유론은 줄여서 공부론(共富論)으로도 불린다. 선부론(先富論·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부유해지는 것)과 함께 중국에서 치열한 노선 다툼의 대상이 돼 왔다. 공부론은 선부론이 득세하면서 빚어진 불균형 성장과 빈부 격차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논쟁은 2011년 당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서기와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서기 간에 벌어졌다. 보시라이는 “중국이 파이를 잘 분배할 때”라며 공공임대주택 건설, 호적개혁 등 빈곤층을 겨냥한 정책을 주장하면서 신좌파의 기수로 각광받았다. 반면 왕양은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며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당내 개혁파를 대변했다. 보시라이는 시진핑 체제의 전복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반부패의 덫에 걸려 실각한 인물이다. 그의 몰락과 함께 공부론도 덩달아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물론 공부론이 보시라이의 전유물은 아니었고 역대 지도자들도 언급하긴 했지만 보시라이는 강한 추진력으로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중국인들에게 남겼다.
중국 지도부가 국민들에게 보시라이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공부론을 부각시키는 것은 중국 내 빈부격차가 갖는 심각성을 반영한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소홀해졌던 사회주의적 가치와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이며 백성을 잘 먹이는 것이 진짜 공산당이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신호이기도 하다. 공부론은 사회안전망을 중시하는 만큼 중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중국은 앞으로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것뿐 아니라 국내 소비도 더 늘려야 한다. 내수 위주의 경제구조 전환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국민들의 주머니를 채워줘야 하고 소득분배 개선은 필수적이다. 보시라이와 격돌했던 왕양 부총리가 국무원(행정부) 빈곤퇴치 영도소조(태스크포스)를 이끌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중국 공산당은 2021년 창당 100주년을 맞는다. 그전까지 빈곤인구를 해방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빈곤층 껴안기가 포퓰리즘으로 매도당하고 있진 않다. 진보와 보수 간 정권 교체가 불가능한 중국이지만 성장과 복지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지만은 툭하면 포퓰리즘 논란이 불거지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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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7.10.23
중국 공산당 대회 이틀째인 지난 19일, 각 지방 대표단별 회의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비공개리에 진행되는 중앙위원 선출ㆍ당장 개정안 이외의 비교적 덜 민감한 토론 내용을 공개하면서 언론 보도를 유도하는 일종의 홍보성 이벤트였다.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성ㆍ직할시 서기들이 앞다퉈 강조한 내용은 지역별 탈빈(脫貧), 즉 빈곤퇴치 성과였다. 푸젠(福建)성 서기 유취안(尤權)은 “푸젠의 빈곤인구는 2012년 130만명에서 현재 20여만명으로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후난성 회의에서는 “극빈촌 스빠둥(十八洞)촌의 산간 광천수를 상품화해 수백년 가난에서 해방됐고 주식 15%는 주민 몫이 됐다”고 홍보했다.
극빈촌이었던 스빠둥촌은 환골탈태했다. [출처: 이매진 차이나]
지방 서기들이 역내총생산(GRDP) 성장율 등 경제성장 실적을 과시하기에 바쁘던 몇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지역별 성장율을 서기 평가의 최우선 잣대로 삼아왔던 것을 지난해부터 확 바꿔 빈곤퇴치 목표 달성 여부로 평가하고 목표에 이르지 못하면 엄중 문책키로 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특히 빈곤 인구가 많은 22개 성의 서기들에게 시기별ㆍ내용별로 구체적인 빈곤퇴치 계획서를 제출토록 했다. 그 이후 전국 산간벽지 곳곳에서 빈곤 퇴치 운동이 일어났고 ‘탈빈 공정’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연상시키는 국가 프로젝트가 됐다. 하지만 여기에 투입되는 인력과 자금의 규모는 새마을 운동에 비할 바 아니다. 대기업 헝다(恒大)그룹은 구이저우성 다팡(大方)촌의 주택ㆍ학교 건설과 일자리 창출 등에 110억위안(1조 8700억원)을 쏟아부었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가운데)이 빈곤 지역 중 하나인 구이저우성 비제시에서 노인을 만나고 있다. [출처: 구이저우 민족보]
탈빈 공정 지역 중 하나였던 구이저우 성 비제시. [출처: 차이나닷컴]
빈곤지역으로 꼽히던 구이저우성 비제시 다팡촌은 탈빈공정을 통해 말끔하게 변했다.[출처: 차이나닷컴]
시 주석이 탈빈공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배경은 18일 당대회 연설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중국 사회에 새로운 모순이 출현했다”며 ‘생활수요와 불균형ㆍ불충분 발전간의 모순’을 신(新)시대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이전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모순은 ‘물질문화 수요와 낙후한 생산 사이의 모순’(1981년 11기 6중전회) 이었다. 실용주의자였던 덩은 낙후된 생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잘 살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잘 사는’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했다. 잘사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며 절대 평등주의에 갇혀있던 당시 중국으로선 혁명적 전환이었다.
중국은 소강사회를 열기 위해 재정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반면 시 주석은 도농(都農)ㆍ지역간 균형 발전과 소득 분배 격차의 해소를 통해 공동부유의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식 공부론(共富論)인 셈이다. 시 주석은 “2020년까지 7000만명에 이르는 연간소득 6200위안(105만원) 이하의 빈곤인구를 없애겠다”고 공언해왔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극빈층 구제 사업일 뿐이다. 극빈층은 줄어들어도 중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인 양극화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소득 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는 0.465(지난해 말)로 1년전에 비해 더 높아졌다. 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불균등함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4를 넘으면 심각하게 불평등한 사회로 간주된다. 서민들을 절망으로 몰아 넣는 부동산 폭등이나 부의 세습 문제는 시 주석 집권 이후 더 심해졌다.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도 발목이 잡힐 뿐 아니라 사회 불안의 요소가 된다. 중국의 꿈(中國夢)의 첫 단계는 모든 인민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고 여유를 누리는 소강(小康) 사회 실현이다. 그 목표 시점은 시 주석 임기 내인 2020년이다. 양극화 해결은 소강 사회로 가는 첫 관문이자 시진핑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셈이다.
시 주석 “중국 사회에 새로운 모순 출현”
도농, 지역간 불균형 발전과 양극화 문제 제시
지니계수 0.465로 여전히 ‘심각하게 불평등’
모두가 잘 사는 공동부유 사회가 목표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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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공부론(共富論)의 부상
베이징 오관철
2015.12.01
중국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 주민들의 생활을 얘기할 때 “소금이 있는데 간장은 뭐하러 사?”라는 말이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적이 있다. 구이저우(貴州)성의 한 빈농이 했던 말로 기억된다.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화교 출신의 게리 로크는 지난해 2월 이임을 앞두고 “베이징 같은 대도시는 중국을 대표할 수 없다”면서 “외딴 지역의 작은 마을들을 방문해야 중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농촌에서 정부가 정한 빈곤선인 연간 2300위안(약 41만원)을 밑도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인구는 7017만명으로 남북한을 합친 수와 맞먹는다.
[특파원칼럼] 공부론(共富論)의 부상
중국에서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이 최근 화두로 떠올랐다.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 성장의 과실을 공동으로 누리자는 말이다. 지난 10월 하순 열린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8기5중전회) 이후 부쩍 강조되고 있다. 이 회의가 내년부터 5년 동안 진행되는 13차 5개년 계획을 집중 논의한 만큼 공동부유론은 향후 중국 국정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3·5 계획은 단순한 경제발전 계획이라기보다 총체적인 국가발전 전략이다.
지난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관련 회의에서 “빈곤을 제거하며 민생을 개선하고 점진적으로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며 당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 중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공동부유다.
공동부유론은 줄여서 공부론(共富論)으로도 불린다. 선부론(先富論·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부유해지는 것)과 함께 중국에서 치열한 노선 다툼의 대상이 돼 왔다. 공부론은 선부론이 득세하면서 빚어진 불균형 성장과 빈부 격차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논쟁은 2011년 당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서기와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서기 간에 벌어졌다. 보시라이는 “중국이 파이를 잘 분배할 때”라며 공공임대주택 건설, 호적개혁 등 빈곤층을 겨냥한 정책을 주장하면서 신좌파의 기수로 각광받았다. 반면 왕양은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며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당내 개혁파를 대변했다. 보시라이는 시진핑 체제의 전복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반부패의 덫에 걸려 실각한 인물이다. 그의 몰락과 함께 공부론도 덩달아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물론 공부론이 보시라이의 전유물은 아니었고 역대 지도자들도 언급하긴 했지만 보시라이는 강한 추진력으로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중국인들에게 남겼다.
중국 지도부가 국민들에게 보시라이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공부론을 부각시키는 것은 중국 내 빈부격차가 갖는 심각성을 반영한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소홀해졌던 사회주의적 가치와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이며 백성을 잘 먹이는 것이 진짜 공산당이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신호이기도 하다. 공부론은 사회안전망을 중시하는 만큼 중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중국은 앞으로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것뿐 아니라 국내 소비도 더 늘려야 한다. 내수 위주의 경제구조 전환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국민들의 주머니를 채워줘야 하고 소득분배 개선은 필수적이다. 보시라이와 격돌했던 왕양 부총리가 국무원(행정부) 빈곤퇴치 영도소조(태스크포스)를 이끌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중국 공산당은 2021년 창당 100주년을 맞는다. 그전까지 빈곤인구를 해방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빈곤층 껴안기가 포퓰리즘으로 매도당하고 있진 않다. 진보와 보수 간 정권 교체가 불가능한 중국이지만 성장과 복지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지만은 툭하면 포퓰리즘 논란이 불거지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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