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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페달 탄소중립]③ 설비 투자만 수백억.. 中企 "탄소 절감은 언감생심"_“탄소중립이요? 한국에서 제조업 하지 말란 소리입니다.”중소기업들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

Bonjour Kwon 2021. 10. 10. 01:04
2021. 10. 08.

문재인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이달 중 확정할 예정이다. 산업계는 정부가 제조업 위주의 국내 산업 구조, 탄소저감 관련 기술 개발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고 지적한다. 탄소중립과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탈원전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탄소중립 정책이 산업계에 미칠 영향과 선진국의 탄소중립 준비 현황을 살펴본다.[편집자주]

“탄소중립이요? 한국에서 제조업 하지 말란 소리입니다.”

경남 밀양시에서 40년 가까이 열처리업체를 운영해온 대표 A씨는 최근 공정 내 탄소 배출 저감 장치를 설치하려 했으나, 견적서를 받아보고 마음을 접었다.

연간 매출 250억원의 절반에 달하는 110억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A씨는 “수년 뒤 설비를 교체하려면 또 비슷한 규모의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다”며 “코로나19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수백억원을 투자해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건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들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감산(減産)뿐”이라고 했다.

정부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배출량의 35% 이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중소기업 업계에서는 정책의 속도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당장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얼마인지도 모를뿐더러, 탄소 배출 절감을 위한 공정 개선과 업종 전환에 투자할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인상과 탄소세 부담까지 현실화되면 중소기업의 부담은 가중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간 매출 규모와 투자 여력 등이 천차만별인 만큼 정부의 지원책이 맞춤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열처리 작업 과정 모습. /한국생산성기술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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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처리 작업 과정 모습. /한국생산성기술연구원 제공
◇ 중소기업들 탄소중립 필요하지만 대응 계획 못 세워

8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올해 초 319개 중소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향조사에서 응답기업의 80%가 탄소중립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준비를 마쳤거나 준비 중인 기업은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 절반 이상은 탄소중립에 대응할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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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들이 탄소중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수긍하면서도 대응을 주저하는 이유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내 전체 발전 비중의 60%를 차지하는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해나갈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40% 이상으로 늘리면 전기요금은 오르게 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면 2030년까지 전기요금이 10.9%(2017년 대비) 오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에너지 컨설팅기업 우드맥킨지는 약 24%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전기요금 인상은 중소기업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주보원 한국금속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제조기업 일부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전기요금으로 내고 있는데 탄소중립으로 전기요금이 더 오르면 도산할 수밖에 없다”며 “전용요금제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현재도 전기요금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탄소 배출이 가장 많은 제조업체의 경우 전기요금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전체 지출액의 10~30%에 달한다. 중기중앙회가 지난달 중소기업 31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에너지비용 부담 현황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10곳 중 9곳은 산업용 전기요금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 발의된 탄소세 법안까지 통과되면 중소기업의 부담은 더 가중될 수 있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배출원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탄소세 법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온실가스 1t당(tCO₂) 4만원을, 2025년에는 8만원을 단계적으로 부과하는 것으로 돼 있다. 재계에선 탄소세가 t당 25달러(약 3만원)만 부과돼도 전기 산업군이 부담하게 될 생산비용이 직간접적으로 12%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차금속, 운수, 석유, 화학 등의 산업군에서도 최소 1.5% 이상의 생산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경북 천북산단 한 공장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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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천북산단 한 공장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산업 재편도 ‘발등의 불’

탄소 감축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발생하는 산업 재편도 중소기업계의 걱정거리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 부품 업계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내연기관차 시장이 축소하면 부품이 줄고, 결과적으로 자동차 부품 업계의 매출이 향후 15%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바뀌면 엔진과 변속기 등에 들어가는 부품 1만개가 사라진다”며 “차량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절반 이상이 필요 없게 되는 상황인데,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의 속도가 너무 빨라 업종 전환에 대비할 새도 없이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정부의 계획대로 2018년 순 배출량 대비 35% 이상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차가 약 385만대 이상 보급돼야 한다. 기존 NDC 목표(26.3%)인 364만대보다 약 21만대 늘어나는 것이다. 경북의 한 자동차엔진 부품업체 대표는 “산업의 패러다임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정부가 밀어붙이는 탄소감축 속도를 중소기업이 쫓아가려면 역성장하면서 투자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부품업체 185개 가운데 미래차용 부품 생산 체계로 전환한 업체는 39.6%에 불과했다. 하지만 연 매출 500억원 이하 중소 부품업체로 범위를 좁히면 전환 비율은 16.1%에 그쳤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차량 내구성이 좋아지면서 차량 부품사들의 수익성이 나빠진 경향도 있다”면서 “정부는 회사 운영비를 지원해주는 식의 단발적인 정책보다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연구개발(R&D)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그룹 산하 스코다의 소형차 파비아를 부품별로 늘어놓은 모습. 미래 전기차 시대가 되면 이 많은 자동차 부품 중 70% 가까이가 사라진다. /스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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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그룹 산하 스코다의 소형차 파비아를 부품별로 늘어놓은 모습. 미래 전기차 시대가 되면 이 많은 자동차 부품 중 70% 가까이가 사라진다. /스코다
◇ 중소기업 “연착륙 위한 대책 업종별로 필요”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 시행에 따른 효과를 보려면 중소기업의 참여가 필수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10인 이상 광업·제조업체 중 32.6%가 고(高)탄소 업종에 포함되는데, 이 가운데 97.9%가 중소기업이다. 최근 경기도가 도내 중소수출기업 45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탄소중립과 관련해 필요한 지원사업으로 ‘설비공정, 사업전환, 원료대체 관련 기술컨설팅 지원’을 가장 많이 꼽았다.

중소기업의 정책 참여를 높일 수 있는 정부 지원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중소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현황조차 파악이 되지 않았다. 중소기업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올해 초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탄소중립 경영혁신 바우처 사업 등 신규 사업을 개시했지만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온다. 고탄소배출 업종에 탄소중립 컨설팅과 스마트공장 도입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것 외에는 아직 명확한 방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업체 간 매출 규모 차이나 투자 여력 등이 다르기 때문에 탄소 감축 정책도 맞춤형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각 업체가 탄소 감축 목표와 방안을 제시하면 정부가 이를 평가해 정책자금을 지원하거나 융자를 해주는 등의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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