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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페달 탄소중립]② 신재생 설비에 약 1000조·ESS에 1248조원… 결국 국민 부담철강·석화·시멘트 업종 탄소중립 비용 최소 400조수천조원 이상 예상되는데 정부는 비용 계산 없어

Bonjour Kwon 2021. 10. 10. 01:06

[과속페달 탄소중립]② 신재생 설비에 약 1000조·ESS에 1248조원… 결국 국민 부담
철강·석화·시멘트 업종 탄소중립 비용 최소 400조
수천조원 이상 예상되는데 정부는 비용 계산 없어

송기영 기자
입력 2021.10.06 06:00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문재인 정부 탄소중립 정책의 문제점 중 하나로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에 따른 비용 추산이 없다는 점을 꼽고 있다. 산업별로 탄소중립에 필요한 비용을 추산하고 이에 맞는 지원 대책과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과정 없이 산업계에 탄소중립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예산 역시 정확한 근거 없이 ‘깜깜이’로 책정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제조업 비중이 크고, 탄소 배출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탄소중립은 획기적인 에너지·산업 기술의 혁신으로도 달성이 불확실해 쓰레기 분리수거,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 확대 등으로 이뤄낼 수 없다”며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철강, 시멘트, 조선, 반도체, 화학 등 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고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선진국과 조건 다른데, 정부는 목표치에만 집착

문재인 정부는 2030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보다 35% 줄이는 것에서 40% 줄이는 것으로 목표치를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15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대해 “문 대통령은 ‘(35% 정도로는) 국제사회에 제출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며 “‘최소 40% 이상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문승욱(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주요 기업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승욱(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주요 기업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NDC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이 스스로 목표를 정해 국제 사회에 발표하는 일종의 약속이다. 한국은 11월에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NDC를 발표한다. 탄소중립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한국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이 목표치를 40%로 상향해 국제 사회에 발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NDC가 국제 사회에 공표하는 목표인 만큼 목표치 상향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나치게 과도한 목표를 설정했다가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국제 사회의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탄소배출이 감소세에 있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과 같은 NDC를 설정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미국의 탄소배출량은 2005년 대비 21.5%포인트(P) 가량 줄었다. 트럼프 정부 때 탄소 배출량이 일시적으로 증가하긴 했지만, 바이든 정부 들어 다시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유럽연합(EU) 역시 1990~2017년 동안 탄소배출량이 22% 줄었다. 이에 따라 EU는 NDC를 1990년 대비 40%에서 55%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과 EU 등 선진국은 탄소감축 목표 기준 시점을 모두 탄소 배출량이 정점을 기록한 해로 정했다. EU는 1990년, 미국은 2005년이 기준이다. 탄소 배출이 감소세에 있었고, 감축 기간도 길기 때문에 NDC를 50% 수준으로 정할 수 있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분석에 따르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EU는 1990년 대비 연평균 1.7%, 미국은 2005년 대비 연평균 2.2%의 탄소를 줄이면 된다. 2018년을 기준으로 정한 한국은 32년간 연평균 3.1%를 감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2030년 NDC를 40%로 상향할 경우 연평균 탄소 감축량은 이보다 늘어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2030년 NDC 상향 조정은 우리 수출과 산업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문가와 기업 등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지금이라도 산업계와 협의하고 기업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의견을 들을 기회를 마련하기 바란다”고 했다.

◇ 천문학적인 탄소중립 비용, 누가 어떻게 마련하나

정부는 내년도 탄소중립 예산을 올해보다 60% 이상 늘린 12조원으로 책정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에 비해서는 여전히 적은 수준이고 이조차도 명확한 비용 추산 없이 이뤄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탄소중립에 필요한 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 8월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하면서 필요 예산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탄소중립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산업별 필요 비용을 추산하고 이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고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생략한 것이다.


현재 탄소중립에 필요한 비용은 대략적으로도 집계된 것이 없다. 탄소중립위가 지난 7월 전문위원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61.9%까지 늘릴 경우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에만 최대 1248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한 자료만 최근 공개됐다. 재생에너지는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를 저장할 설비가 필수다.

탄소중립에 필요한 비용이 일부나마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 자료는 지난 8월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에선 제외됐다. 탄소중립위는 “극단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 추산”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효율적인 재생에너지 운영을 위한 전력계통(전력의 생산 및 수송에 필요한 설비) 안정화에도 ESS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비용은 1248조원보다 많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산업계에서는 각 협회 차원에서 탄소중립 비용을 조사하고 있다. 앞서 산업연구원은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3개 업종의 탄소중립 비용만 최소 400조원이 들 것이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석유화학협회는 2050년 석유화학업계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최대 270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석유화학 업계의 경우 설비 뿐 아니라 원료까지 모두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비용은 이보다 더 들 것으로 협회는 추정했다. 현재 석유 원료를 바이오 기반과 신재생 수소로 전환할 경우 2050년까지 218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탄소중립의 직격탄을 맞은 철강업종의 경우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적용하는 데만 109조원이 필요하다는 철강협회의 연구 결과도 있다. 수소환원제출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 철을 만들 때 수소를 이용하는 기술로, 탄소중립위가 철강업계 탄소중립을 위해 도입하기로 한 차세대 기술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기술을 2030년에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철강업계에서는 2050년에나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전남 영광 태양광 단지. /연합뉴스 제공
신재생 에너지 확대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이종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의 분석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면서 현재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설비 투자비 등에만 1394조원에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신재생에너지는 단순 설비뿐 아니라 용지 확보 수급 불안에 따른 에너지저장장치 등 부대 시설 비용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비용에는 ESS 비용 약 400조원이 포함돼 있다. 국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아직 탄소중립에 필요한 비용을 추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 비용을 정확히 계산하는 데만 최소 2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비용 추산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탄소중립 추진에 따라 한국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소비자 물가는 오를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은행은 2050년까지 완전한 탄소중립을 달성할 경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평균 0.32%포인트(P)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또 소비자물가 연평균 상승률은 같은 기간 0.09%P 높아진다는 게 한은의 전망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탄소중립 이행을 완료하는 2050년까지 기후변화 대응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추진에 따라 예상되는 이행 리스크에 대응하고 성장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7년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시작으로 NDC 감축 목표 상향까지 논의가 지나치게 빨리 이뤄졌다”면서 “감축 목표가 지나치게 높게 잡히면서 우리나라는 NDC 상향에 따른 파급효과가 가장 큰 나라가 될 것이며, 산업혁명 이전으로 돌아가야 할 수준으로 경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