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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한 떡잎, 먼저 잡아라” 요즘 돈이란 돈은 스타트업으로 우르르

Bonjour Kwon 2021. 11. 27. 23:55

2021.11.26

미디어 스타트업 ‘EO’의 유튜브 채널에는 지난달 말부터 스타트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유니콘하우스’가 업로드되고 있다. 패스트벤처스·퓨처플레이 등 국내 주요 벤처캐피털(VC) 4곳이 2개월에 걸쳐 오디션에 지원한 스타트업 12곳에 과제를 내고 경영 조언을 해주며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한 스타트업은 상금 5000만원, 2위 팀은 1500만원, 3위 팀은 500만원을 받게 된다. 벤처캐피털 업계가 참신한 스타트업을 찾기 위해 오디션까지 개최한 것이다.

한국 스타트업 투자와 육성의 공식이 바뀌고 있다. 2~3년 전만 해도 초기 스타트업 지원은 정부나 일부 엔젤 투자자(개인 투자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기업과 벤처캐피털들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초기 스타트업 투자와 발굴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우아한형제들, 쿠팡, 당근마켓처럼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초기 스타트업의 투자 가치가 치솟고 있다”면서 “투자한 수십개 스타트업 중에 하나만 성공해도 된다는 실리콘밸리식 투자가 한국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망 스타트업 먼저 잡아라

벤처캐피털은 앞다퉈 조기 투자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벤처캐피털은 시장에서 사업성을 인정받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창업 초기 사업 모델 검증에 뛰어들기보다는 사업 확장 시기에 투자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은 데다, 투자 회수도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벤처 업계에 자금이 몰리자, 스타트업의 몸값이 오르기 전에 시드(seed·첫 번째 자본) 투자를 해 지분을 확보하는 벤처캐피털이 늘고 있다. 한예로 벤처캐피털 TBT는 올해 설립한 지 1년을 갓 넘긴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와 ‘오늘의픽업’ 등 스타트업 20곳에 약 300억원을 투자했다.

대기업들 역시 스타트업에 경쟁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에 공을 들이고 있고, LG전자 역시 지난 9월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생활 가전 분야 스타트업을 뽑는 경진대회 ‘LG 홈 테크 이노베이터’를 개최했다. GS는 올 초부터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스타트업을 선정하는 ‘더 지에스 챌린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SK텔레콤도 지난달 5G 분야 스타트업을 모집하는 공모전을 열었다.

재계 3·4세들도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직접 조직을 이끌며 스타트업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GS그룹은 허서홍 GS 미래사업팀 전무 주도로 이달 소상공인 데이터 스타트업 한국신용데이터에 수십억원을 투자했다. 한화그룹 3세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도 미국 실리콘밸리 대체육 스타트업 뉴에이지 미트 투자를 주도했다.

정유·제철 등 굴뚝 산업 기업들은 재활용·친환경 초기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회사 이미지를 미래 지향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데다 수익성까지 노리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인형 등을 만드는 ‘우시산’, 시동이 꺼져도 트럭의 냉장·냉동 성능을 유지하는 기술을 개발한 친환경 벤처기업 ‘소무나’ 등을 육성·지원하고 있다. 포스코도 폐자원을 활용해 고강도 복합 소재를 만드는 ‘이옴텍’ 등에 투자했다.

대기업 입장에선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새로운 기술·아이디어를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망한 기술이나 사업 아이템을 확보하기 위해 벤처기업 한 곳을 통째로 인수·합병하는 것보다 초기 스타트업 여러 개를 투자·지원하면서 협업 관계를 맺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투자 열기 지나치다” 시각도

벤처캐피털과 대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면서 국내 벤처 투자 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이 됐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벤처 투자 액수는 5조2593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80% 이상 늘었다. 지난해 벤처 투자 총액이 4조3045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3분기 만에 5조원을 넘긴 것이다. 임정욱 TBT 공동대표는 “코로나 이후 모든 일상생활을 플랫폼에 의존하게 되면서 관련 스타트업들이 쏟아져 나왔고, 풍부한 유동성으로 인해 비상장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사모펀드 등 투자기관이 스타트업 투자에 나선 결과”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의 스타트업 열기가 지나치다는 우려도 나온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투자 열기는 시중에 돈이 흘러넘치는 과잉 유동성이 촉발한 측면이 강하다”면서 “당장 버블이 꺼진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