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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올려줘" "못해"…재건축 현장 곳곳이 시한폭탄,“시공사가 수주 과정에서 제안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부담을 감수하는 게 맞지만, 그 이후 불가항력적인 물가 상승률로 인해 발생한 추..

Bonjour Kwon 2023. 2. 3. 07:36

2023.02.02 13:21

[땅집고]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래미안 원베일리 사업장 조감도. /반포레미안 원베일리 홈페이지

[땅집고] 인건비 및 원자재값 인상 여파가 수도권 재건축 공사현장에 불어 닥치고 있다. 주요 건설 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시공사와 재건축 조합 간 갈등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래미안 원베일리’ 재개발 사업의 경우 조합과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지난해부터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삼성물산이 지난해 8월 조합 측 요구에 따라 품질 향상을 위한 차별화 설계를 반영하며 추가 공사비 1560억원을 요청했지만, 공사비 지급이 이뤄지지 않으며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조합 집행부는 추가 지급을 결정했지만 일부 조합원이 비대위를 통해 지급 반대에 나선 탓이다.

공사비 지급이 늦어지자 삼성물산은 조합에 공사비 지급 협상에 임하지 않으면 사업비 통장 인출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여기에 공사 감리업체 두 곳도 미납 용역비 31억원을 지급하지 않으면 공사 현장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업 중단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결국 지난 29일 조합과 시공사가 증액 공사비에 대해 한국부동산원에 검증을 의뢰하는 데 합의했고, 이후 조합이 검증 안에 동의하면서 사업비 인출이 이뤄졌고, 시공사측이 감리업체에 대금을 지급하면서 공사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도권 내 다수 재건축 정비 사업장들은 공사비 증액에 따른 협의에 이르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센트레빌프리제’ 사업장은 이달 초부터 공사가 중단됐다. 2021년 12월 착공한 이 단지는 올해 10월 입주를 예정했으나 공사 진행률 40%에서 공사가 멈췄다. 시공사인 동부건설이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조합과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1구역 재건축 사업 역시 공사비 협상을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 이 사업은 GS건설과 현대건설이 공동 시공사를 맡은 곳으로 지난해 6월 착공, 11월 분양을 목표로 했지만, 공사비 증액 부담을 두고 협의에 이르지 못해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물가 상승에 따라 공사 원가가 너무 올랐는데 여기에 금리 인상까지 겹치면서 공사비가 30% 가까이 오른 상태다. 이를 시공사가 다 짊어지면 적정이윤이 남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이에 따라 조합에 증액분 지급을 요구했지만, 조합이 이를 거부하면서 공사비 지급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공사비 증액분을 가지고 씨름하는 사업장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급등한 원자재값을 모두 떠안고 공사를 강행할 수 없고, 조합 입장에서는 분양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사비 증액분을 모두 지급할 수 없어 협의가 어려운 것이다. 양측 모두 손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갈등 해결이 지지부진하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증액에 따른 공사 중단 사태에 대해 “물가 상승으로 인해 공사비가 이례적으로 급증하면서 발생한 문제로 물가 상승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통 공사비 증액 범위는 소비자물가지수나 건설공사비지수를 기준으로 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사업시행계획인가 전에 시공사를 정한 상태에서 이후 공사비 증액 비율이 10%를 넘게 되면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할 수 있다.
 
설령 공사비 검증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반드시 반영해야 할 강제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시공사의 부당한 공사비 증액을 막기 위해 도입된 공사비 검증 제도는 도입 첫해인 2020년 13건에서 2021년 22건, 2022년 32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물가가 급등하면서 공사비 부담이 늘었지만, 정비사업 표준계약서에 업황 변화에 따른 현실적인 수준의 공사비 증액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업 추진 중 설계 변경으로 인해 변동된 부분이 공사비 검증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며 “시공사가 수주 과정에서 제안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부담을 감수하는 게 맞지만, 그 이후 불가항력적인 물가 상승률로 인해 발생한 추가 비용에 대해서는 적정한 책임 분배가 될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 공사비 검증, 인허가 절차 등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비용에 대한 책임은 조합원이나 시공사뿐만 아니라 예비 분양자나 입주예정자까지 전가될 수 있다. 시공사가 추가 공사비용을 지급하고 공사를 진행한 경우 결국 조합원 분담금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협의에 이르지 못해 공사가 중단되면 ‘제2의 둔촌주공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앞서 둔촌주공은 조합과 시공단의 공사비 갈등으로 분양 일정이 늦어지면서 사업비가 급격히 늘어났다. 2020년 6월 3조2000억원에서 4조3400억원가량으로 늘었고, 이에 따라 조합원 분담금은 1인 평균 1억2000만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일반 분양가 또한 900만원 이상 올라 2020년 평당 2900만원에서 2022년 평당 3829만원으로 올랐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