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4.04.21 오전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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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업계에 인수·합병(M&A)의 태풍이 또다시 몰아닥칠 전망이다. 경영 위기에 처한 그룹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물류 자회사를 매각하려는 움직임이 여럿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택배업계에 따르면 업계 빅3 중 한곳인 현대로지스틱스를 비롯해 용마로지스가 매물로 나왔다. 또 지난해 11월부터 매각을 추진 중인 동부익스프레스까지 더해져 물류시장 판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업계는 이와 관련한 눈치싸움이 한창이다. 특히 국내 택배시장은 CJ그룹의 CJ대한통운을 필두로 한진의 한진택배, 현대그룹의 현대로지스틱스 등 빅3가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어 현대그룹의 현대로지스틱스가 매각될 경우 시장의 물동량 이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내 택배업계는 향후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향방에 따른 시장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대기업 위주 새판짜기 돌입하나
당초 현대그룹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현대로지스틱스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해 왔지만 지분매각을 추진하는 방안도 최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자금 조달이 보다 유리한 쪽으로 최종 결정하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롯데그룹, GS그룹, 베이링PEA 등이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택배를 비롯해 종합적인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물류회사다. 현재 시장에서 추정하는 이 회사의 몸값은 약 3000억원. 하지만 이 가격을 시장이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동부그룹도 사모펀드인 KTB 프라이빗에쿼티에 동부익스프레스 매각을 추진 중이다. 현재 이야기 되는 매각 규모는 약 3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동부익스프레스를 포함해 동부하이텍, 동부메탈, 동부발전당진 지분 등을 매각해 약 3조원을 마련하겠다는 자구계획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자구책 중 하나로 업계에서는 동부익스프레스가 첫번째 제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동부익스프레스의 우선인수대상자인 KTB 프라이빗에쿼티는 교원공제회, 서울보증보험 등의 투자자를 모집하는 데 성공했으며, 4월 중에 매각을 완료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인 용마로지스도 대형 물류기업과 통합될 가능성이 커졌다. CJ대한통운이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용마로지스는 모기업인 동아쏘시오홀딩스 계열의 의약품 수송을 독점하며 지난해 매출 1246억원, 영업이익 55억원을 기록했다. 용마로지스가 CJ대한통운에 인수될 경우 의약품 물류 부문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측은 "다른 대형 택배사와 함께 티저레터(매각안내서)를 받은 상황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검토 중"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 같은 대기업 위주의 택배시장 지각변동을 두고 글로벌 물류시장 진출을 위한 '몸집 불리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 2010년 기점 물류사 매각성격 변해
물류자회사 매각을 추진하는 그룹들의 목적은 2010년을 기점으로 크게 변했다. 2010년 전만 해도 그룹들이 물류회사를 매각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매각한 물류기업들의 규모도 달랐다. 2010년 이전 물류자회사를 매각한 기업으로는 삼성물산, 신세계그룹 등을 꼽을 수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2006년 택배전문 자회사였던 HTH를 CJ GLS에 매각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2008년 그룹 계열 택배회사였던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를 한진에 매각했다. 2010년 이전에 진행된 그룹 내 물류자회사 매각의 대표 사례인 두 건 모두 그룹의 경영 상태와는 전혀 상관없이 진행됐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진행된 그룹 내 물류자회사 매각 추진 건들은 모두 그룹의 위기 상황에서 비롯됐다. 유진그룹의 로젠택배, 금호그룹의 CJ대한통운에 이어 최근 동부그룹의 동부익스프레스, 현대그룹의 현대로지스틱스까지 모두 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인해 팔려가는 모양새다.
지난 2010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자구계획을 추진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한통운을 매각하기로 전격 결정하고, 2011년 CJ그룹에 매각했다. 유진그룹 역시 그룹 차원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로젠택배의 매각을 추진, 미래에셋-나이스 사모투자전문회사에 800억원에 넘겼다.
지난해 재무구조 개선에 돌입한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을 매각해 유동성 자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그룹의 전략에 금융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현대증권의 저조한 실적과 경영불안 등으로 인수대상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최근 KDB산업은행이 현대증권의 공식 매각 절차에 나서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런 와중에 현대그룹은 절대 내놓지 않을 것 같았던 현대로지스틱스의 매각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현대증권 지분 매각 소식이 전해졌을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음은 물론 순환출자구조가 해결되면 흑자로 전환될 수 있는 기업이 바로 현대로지스틱스이기 때문. 매물로 나오는 기업의 차이는 있겠지만 최근 M&A시장에 물류기업들 매물로 나왔을 때를 살펴보면 인수희망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업계의 예상을 깨고 높은 가격을 받은 곳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물류기업 매각을 추진하는 기업들 역시 일정부분 지분을 남겨놓고 매각을 추진하거나 일정기간이 지나 재매각을 추진할 경우를 대비해 우선협상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불가피하게 매각을 추진할 수밖에 없지만 기업의 성장성을 고려했을 때 매각하기 아까운 매물인 만큼 일정부분 지분을 보유하려는 기업이 많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