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4
업계 1위 삼성생명을 비롯한 주요 생보사들이 과거 팔았던 고금리 상품의 역풍을 맞아 역마진 홍역을 앓고 있다.
“올 것이 왔다.”
최근 생명보험업계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태풍을 바라본 한 관계자의 관전평이다.
업계 총자산은 600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등 적어도 외적 성장은 이뤄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곪을 대로 곪았다는 말이 딱 맞다. 자산을 굴려 버는 것보다 고객들에게 되돌려줘야 하는 돈이 많아지는, 이른바 ‘역마진(잠깐용어 참조)’ 공포가 생보업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빅3(삼성·한화·교보)’는 이미 구조조정 칼을 빼들었다. 구조조정 태풍은 중소형사로도 차례차례 불어닥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상품구조 다양화와 투자자산에서의 수익률 승부가 생보업계 향방을 판가름할 것이라 내다본다.
그동안 생보업계는 가파른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덩치를 급속도로 키워왔다. 올 1분기 기준 25개 생명보험사의 총자산은 609조원. 1999년 총자산 100조원 시대를 연 뒤 2010년에는 400조원을 돌파했다. 이후 연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2012년 500조원을 넘어선 뒤 1년 11개월여 만에 600조원 고지에 올라섰다. 거의 2년마다 자산을 100조원씩 불려왔던 셈이다. 덩치는 커질 대로 커졌지만 요즘 생보업계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무엇보다 순익이 자꾸만 쪼그라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년 4월부터 12월까지 생보업계 전체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때보다 10% 가까이 줄었다. 총자산 규모는 52조원 정도 늘었지만 보험 신규 판매액인 초회보험료가 52%나 급감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빅3 당기순익도 8~14% 정도 줄었다. 올 1분기 실적은 허리띠를 졸라맨 덕분에 반짝 증가세를 보였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지난해와 별반 달라진 건 없다.
당연히 구조조정 바람도 거세게 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6월 교보생명은 15년 차 이상 직원 중 480명을 희망퇴직시켰다. 당초 예상 인원(300명)보다 180명이 더 많다. 이 회사 전체 직원(4700여명)의 10%에 달하는 숫자다. 앞서 한화생명은 희망퇴직자 300명을 이미 내보냈다. 삼성생명도 지난해 250여명을 줄인 뒤 올 초 지점 95곳도 문을 닫았다. 외국계 생보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알리안츠생명은 200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그렇다면 유독 생보업계가 이렇게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 까닭은 뭘까. 위탁받은 자산을 투자해 거기서 나는 수익 중 일부를 약속한 이율로 고객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모든 금융기관이 똑같다. 그중에서도 생보업계가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고객에게 약속한 이율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생보사업계의 운용자산 이익률은 4.5%인 데 반해 보험료 적립금 평균 이율은 5.2%에 달했다. 역마진 폭이 0.7%포인트나 된다. 쉽게 말해 1000원을 투자해 45원을 벌었는데 고객에게는 52원을 돌려줘야 하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구조인 셈이다.
역마진율 매년 0.2%포인트씩 올라
최소 10년 걸릴 것이란 분석도 나와
금융당국 규제완화로 일단 숨통은 터
이처럼 역마진에 더 취약한 구조는 사실 생보업계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1997년부터 2000년 초중반까지 생보사들은 높은 이자를 주겠다며 고금리확정형 보험을 경쟁적으로 팔았다. 생보업계의 보험료 적립금은 지난해 말 기준 405조9000억원인데 이 중 188조2000억원이 금리확정형 계약이다. 이 가운데 연 6% 이상 고금리확정 계약이 112조4000억원으로 60%에 달한다.
이는 손보사와 가장 대조되는 부분이다. 저금리 기조로 자산운용이 힘든 건 매한가지지만 손보사는 당장 구조조정을 검토할 정도는 아니다. 고금리 장기 상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했던 생보사와 달리 손보사들은 자동차보험 같은 중·단기 상품을 많이 팔았다. 때문에 과거 금리가 높던 시절 판매했던 상품들이 아직까지 발목을 잡는 경우가 드물다. 2013년 말 기준 생보사의 금리확정형 상품 비중은 46%로 손보사(9%)보다 월등히 높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손보사는 화재·건설·해상 등 일반 손해보험, 건강보험 등 장기 손해보험, 자동차보험 등으로 상품 포트폴리오가 다양하다. 반면, 생보사는 개인을 담보로 한 상품만 취급하다 보니 성장동력 확보에 제약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라고 털어놨다.
줘야 할 이자는 높은데 운용은 안일하게 해 높은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다른 금융권 업체들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대체투자를 모색한 데 반해 생보사 자산운용은 안전자산인 채권 일변도로 이뤄졌고 결국 이게 발목을 잡았다.
더 암담한 것은 이런 역마진의 늪을 언제 벗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확정금리 계약이 많은 대형사는 역마진율이 매년 0.2%포인트 안팎 높아지고 있다.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석도 나온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지금처럼 연 3% 안팎으로 유지될 경우 해마다 1000억~1500억원의 역마진이 예상된다. 시중금리가 하락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국고채 금리가 연 2%대 중반으로 내려앉으면 최소 10년 동안 연 2000억~3500억원의 역마진에 시달려야 한다”고 털어놨다.
해법은 없을까.
최근 정부가 보험산업규제개혁방안을 내놔 일단 숨통은 트였다. 금융위원회는 보험사 수익성 개선을 위한 핵심 조치로 꼽혀온 공시이율 변동 폭을 10%에서 20%로 늘리기로 했다. 공시이율은 은행 이자와 비슷한 개념이다. 공시이율이 떨어지면 가입자에게 주는 보험금이나 중도해지 시 받는 환급금이 줄어든다. 반대로 공시이율이 높아지면 이 금액이 늘어난다. 지금까지는 공시이율의 움직임이 정부 통제를 받았기 때문에 시중금리 하락 속도를 반영 못 해 수익 악화가 불가피했다. 변동 폭을 늘린 만큼 저금리 환경에 대응할 수단을 하나 더 갖춘 셈이다. 보험사 적립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표준금리 산정 방식도 시중금리 변화를 반영할 수 있게 바뀐다.
그러나 무엇보다 업계 스스로 체질을 뜯어고치는 게 급선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신상품을 적극 개발하고, 금리 변동에 덜 민감한 보장성 보험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새로 짜야 한단 얘기다. 지금은 전체 개인보험 상품 중 약 65%가 저축성 보험에 몰려 있어 금리 변동에 특히 취약하다.
이석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들은 특정 판매 채널과 특정 상품에 편중되기보다는 다양한 판매 채널을 통해 균형 잡힌 상품 포트폴리오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며 “감독, 정책 측면에서는 RBC 관련 제도 개선 지속, 유배당 상품 활성화, 방카슈랑스 제도의 보장성 상품 판매 규제 폐지 등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부동산 등 대체투자로 투자자산을 다변화하는 것도 역마진을 완화시키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최근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을 비롯한 대형사가 해외 부동산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장기 투자 성격이 강한 보험업 특성상 특정 자산으로의 쏠림 현상은 위험할 수 있다. 일본이 생생한 사례다. 일본 생보사들은 저금리를 극복하겠다며 부동산 등 위험자산 비중을 지나치게 늘렸다가 버블 붕괴기를 거치면서 줄도산을 맞았다.
“보험회사의 경우 고수익 추구보다는 장기적인 임대수익을 추구하는 안정적인 핵심 부동산 위주의 단계적인 전략을 추구하는 방향이 맞다. 국내 보험사들은 대체투자 노하우가 축적되기 전까지는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나 현지 회사와의 제휴, 협력 관계를 통해 점진적으로 투자를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박선영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의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잠깐용어 *역마진
보험업계 용어로는 ‘이자율차 역마진’이라고 부른다. 보험사들은 1990년 후반~2000년 초반 고금리 상품을 경쟁적으로 팔았다. 하지만 저금리 기조가 깊어지며 고객들에게 약속했던 ‘높은 금리’를 주기 어렵게 되면서 ‘역마진’이란 부메랑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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