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선박펀드

퇴출·법정관리만 80社…"한국 해운 벼랑끝 섰다"1000%대 부채비율에 선박발주 엄두 못내 머스크등 글로벌船社는 몸집불리기 한창

Bonjour Kwon 2014. 9. 16. 22:33

 

2014.09.15

◆ 위기의 해운산업 ① ◆

 

A해운사 영업부 곽 모 부장(46)은 최근 한국 해운의 초라한 위상을 실감했다. 10년 넘게 거래하던 한 화주를 최근 중국 선사에 빼앗긴 것이다. 곽 부장은 "그 화주가 중국 해운사 측에 `한국 해운업체는 언제 망할지 모르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전해들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올해 들어 해운시장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미래 해운시장을 선점하려는 각국 정부와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해운업계가 처한 상황은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경쟁에 사용할 무기를 모두 소진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를 위해서라도 해운업을 지원해야 할 시기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세계 해운교역 2.5배 성장 전망

 

15일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인 머스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6억7000만달러(약 1조6610억원)에 달했다. 이에 비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해 각각 7122억원, 585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부채 비율 역시 큰 차이가 난다. 머스크의 작년 말 부채 비율은 고작 22%인 반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1000%가 넘는 부채 비율을 기록했다.

 

세계적인 해운분석기관인 로이드는 2010년 현재 연간 90억t 규모인 해운 교역 규모가 2030년에는 220억t으로 지금보다 2.57배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또 전 세계 바다 위에 떠 있는 벌크선의 총 규모는 2010년 약 3억t에서 2030년 6억5000만t 수준으로, 컨테이너선 규모는 2010년 1억5000만t에서 2030년 4억t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 국내 업체 경쟁력 추락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 해운산업의 자생력은 바닥난 상태다. 국내 대표 벌크선사인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대한해운은 법정관리 후 타 기업에 매각되는 등 2008년 이후 80여 개 해운사가 퇴출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1990년대 세계 컨테이너선사 가운데 규모 5위와 8위를 자랑하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2014년 현재 각각 9위, 20위까지 추락했다. 살아남은 선사도 신규 선박 발주 등은 엄두도 못 낸다.

 

반면 덴마크의 머스크와 스위스의 MSC 등 외국 업체들은 정부 지원을 토대로 삼아 이번 위기를 `경쟁사를 고사시킬 좋은 기회`로 삼고 공격적인 몸집 불리기를 진행하고 있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전무는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선사들은 투입할 배가 없어 일감을 해외 업체에 빼앗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 외국 정부는 원스톱 서비스

 

싱가포르는 자국항에 들어오고 나가는 선박을 대상으로 급유, 선용품, 선박 수리 등 선박운항과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해운 관련 금융의 발달로 배를 사려는 선주들이 세계 어느 국가보다 쉽게 대출받을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 국적선에 대해 운항소득 면세, 톤세제 적용과 항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해운 관련 사업자에 5~10%의 소득세 감면 혜택은 물론 선박관리ㆍ중개, 해운 인력 공급과 법률 서비스 제공 등에도 세금 10%를 면제해 준다. 중국을 등에 업은 홍콩 정부는 `국가 5개년 계획`에 의거해 새로운 해운 전담 공공기관을 발족시킬 예정이다.

 

이 기관은 정부정책 개발 및 연구개발(R&D), 해운전문인력 양성 및 훈련, 국내외 정부 및 업계 간 원스톱 커뮤니케이션 체제 구축 등을 담당하게 된다.

 

■ 35조 외화벌이 효자산업…한해50만개 일자리 생겨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건 2008년까지 이어지던 해운업 호황에 취해 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국내 해운사들 탓도 크다. 일부 대형 해운사는 높은 신용도를 이용해 싼값에 배를 빌린 뒤 중소형 해운사에 비싼 값에 다시 빌려주는 `돈장사`를 하다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남북이 분단된 우리나라로선 해운업은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다. 우리나라 해운업 역시 연간 350억달러(35조원)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석유ㆍ반도체ㆍ자동차ㆍ조선과 비교해도 작지 않은 규모다. 연관 산업을 포함하면 연간 145조원의 수익 및 50만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

 

한국 해운업을 되살리기 위해선 먼저 신규 투자를 위한 `금융지원`이, 장기적으로는 외국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김우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은 "먼저 금융지원을 통해 해운업계의 기초체력을 회복시키는 일이 시급하다"며 "이후 정부와 해운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외국 대형 선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