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6
핀란드항공(핀에어) 여객기 중 하나는 KDB대우증권, 싱가포르항공 여객기 중 하나는 경찰공제회 소유다?
사실이다.
통상 항공사 여객기는 항공사가 살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해외여행객이 늘어나면서 항공사들이 외형 확장을 하고 싶은데 당장 자금 사정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항공기를 빌려 쓰기도 한다. 금융사들은 이런 수요를 예측해서 미리 항공기를 사두고 임대해준 다음 일정 수수료를 받는다. 소위 항공기 리스 시장의 구조다.
그런데 이 수수료가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꽤 쏠쏠하다. 국내에선 이제 익숙한 자동차 리스 금융상품처럼 구조만 잘 짜면 연 4~8%대 수익률을 노릴 수 있다. 그래서 최근 국내 연기금, 금융사들이 신규 먹거리로 항공기 리스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포문은 2013년 교직원공제회가 처음 열었다. 교직원공제회는 700억원을 들여 최신 화물기 ‘보잉 777-200LRF’ 2대를 구매했다. 이는 바로 중동계 항공사로 임대돼 내부수익률(IRR) 연 6% 안팎을 거둬들이고 있다. 임대 기간은 12년이다.
KDB대우증권과 경찰공제회 역시 지난해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흥국생명도 지난해 9월 아랍 에미레이트항공, 올해 2월엔 에티하드항공에 항공기 리스를 했다. 하이투자증권과 교보증권은 이런 국내외 시장 흐름을 읽고 A380에 투자하는 3억달러(약 3300억원) 규모의 항공기 투자 펀드를 조성했는데 국내 연기금과 금융사들이 몰려 목표 운용액을 다 채웠다는 후문이다. 그 밖에 산은캐피탈, 롯데손해보험, 동부화재 등도 관련 시장 투자에 적극적이다.
국내 금융사들이 이 시장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는 뭘까.
일단 관련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게 크다.
보잉캐피탈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만 해도 전체 항공기 시장의 0.5% 정도가 리스 시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0년에는 전 세계 상용 항공기 약 9100여기 가운데 15%가 항공기 리스에 해당할 정도로 늘었다. 이 비중은 2012년엔 37.7%까지 급증했다. 항공업계에서는 2020년이 되면 전 세계 항공기의 절반가량이 항공기 리스 시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신흥국 수요 증가로 2013~2032년 20년간 4조8000억달러 시장(약 5280조원, 보잉캐피탈 자료)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중 절반이 리스 시장으로 재편된다는 말이다.
이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국내 중대형 항공사들은 리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항공기 리스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데 오히려 국내 금융사들의 항공기 리스 시장 진출은 다소 늦은 감이 있는 셈이다. 제주항공만 해도 GECAS, AerCap 등 해외 금융사를 통해 리스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항공기 공급이 수요 못 미쳐
재무 취약한 항공사 주의해야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제한적인 특수한 상황도 리스 시장 성장 배경이다.
보잉캐피탈 자료에 따르면 항공여객 수요의 경우 매 15년을 주기로 그 수요가 약 2배 정도 증가해 온 반면 신규 항공기 공급 규모는 매 20년 정도 돼야 2배 늘어나는 수준이다. 항공기 제작사 시장에선 보잉, 에어버스 양강구도로 굳어지다 보니 공급이 수요를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항공사가 보잉, 에어버스와 같은 항공기 제작사에 의뢰해 구매계약을 한다 해도 발주 후 여객기 인도까지 여러 해가 걸리는데 리스는 말 그대로 금융사가 보유한 항공기를 바로 임대하는 형식이다 보니 절차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또 재무제표상으로도 리스는 유리하다. 일반적으로 항공사가 자체 항공기를 사들이려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항공사의 부채가 증가한다. 반면 리스는 비용으로 처리되니 재무제표상 자산 건전성이 나빠질 이유가 없다. 그래서 항공기 리스 시장이 앞으로도 더 클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케네스 강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상무의 설명이다.
비교적 상품구조가 단순하고 또 돈을 떼일 위험이 덜하다는 것도 이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다.
기관투자자, 금융사들은 리스사가 짜놓은 다양한 항공기 리스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데 선순위로 대출해주는 방식의 리스상품은 연 4~5% 수익률을, 후순위는 연 6~8%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아예 증권사, 리스사가 특수목적법인 혹은 펀드를 만들면 기관 혹은 금융사가 지분을 사거나 운용액을 나눠 대는 방식도 있다.
투자를 고려한다면 항공기 리스구조를 먼저 알아 두는 것도 좋다. 항공기 리스는 크게 운용 리스와 금융 리스 두 가지로 나뉜다. 리스 계약 만기 시 사용 항공기를 임대인 측에 반납하는 조건이 들어가 있으면 운용 리스, 임대기간 만료 후 항공기를 매입하는 경우 금융 리스라 한다.
이경용 경찰공제회 금융2팀장은 “통상 리스는 10년에서 12년 정도 계약기간을 설정하고 이후 항공기를 되팔면서 차익을 얻는데 항공기 관련 보험이 이중삼중으로 돼 있어 후순위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또 10년 이상 된 비행기를 찾는 신흥국 항공사로부터의 수요도 많아 꼭 해당 항공사가 안 산다 하더라도 팔 수 있는 곳은 많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대체 투자거리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다만 항공사나 지역별로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전 세계 항공 시장을 놓고 보면 성장세라지만 개별 회사들 사정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차례 대형 사고가 난 말레이시아항공의 경우 소비자 신뢰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러시아 항공사들 사정도 비슷하다. 연말 러시아의 대형 항공사 트란스아에로는 경영난에 봉착, 러시아 정부가 90억루블 규모의 국가보증을 하기도 했다. 잇따른 M&A(인수합병)로 사세를 확장하던 에어아시아 역시 지난해 대형 사고 하나로 신뢰를 단번에 잃을 정도로 항공사는 잠재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고객들은 불안한 항공사를 외면하는 경향이 커 이미지가 나빠진 회사는 얼마 안 가 부진한 실적에 봉착한다. 이를 만회하고자 항공 편수를 늘리려 재무 상황이 취약한 항공사들이 높은 리스료를 감내하겠다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항공사가 부도날 경우 리스료 회수도 어려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업계에서는 자금 사정이 좋고 신용등급과 안전등급이 모두 높은 항공사를 1군 그룹 항공사로, 그 이하 등급 항공사는 2군 그룹 항공사로 칭한다. 전문가들은 2군 그룹 항공사들이 리스 수수료율은 더 높지만 그만큼 위험요소도 많아 투자엔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반인들이 투자할 방법은 없을까.
유병수 하이투자증권 대체투자팀장은 “현재까지는 기관, 사모펀드 등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는 방식이 대세지만 3~5년 내에는 공모펀드, ETF(상장지수펀드) 등 일반인도 항공기 리스 시장에 투자할 수 있게 다양한 투자상품이 나올 것”이라 예상한다.
항공기 인기 기종은 무엇
저가항공用 A320·737NG 대세
현재 하늘에서 가장 많이 날아다니는 항공기 기종은 뭘까. 항공산업 관련 리서치 회사인 FG어드바이저리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운항 중(2014년)인 항공기 가운데 에어버스 A320과 보잉 737NG가 각각 23%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 항공기는 200석 이하의 중형 여객기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1~4시간 거리를 날아다닐 수 있으면서 비교적 많은 인원을 태울 수 있는 효율성 높은 여객기다 보니 저가항공사들이 많이 주문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국내선 용도는 물론 동남아 각국 수도 간 전통적인 고수요 노선에 투입되는 저가항공 주력 기종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 인기 기종으로는 보잉 777(16%), A330(10%), EJets(6%)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저가항공 중심의 항공기 주문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한다. 항공기금융 전문업체인 CIT에어로스페이스에 따르면 특히 아시아 시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고서는 “아시아지역 저가항공은 약 20%의 점유율을 기록한 반면 유럽은 45%다. 아시아에서 2014년 기준 향후 20년에 걸쳐 새로운 항공기 1만3000대가 필요한데 이때 저가항공 비중이 유럽만큼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 중소형 제트비행기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덩달아 신난 건 보잉, 에어버스 등 항공기 제작사들. 이미 아시아 항공사들이 너무 많은 항공기를 주문해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다. 시장 기대감이 더해져 관련 주식도 연일 오르고 있다. 한국 역시 이들 회사에 비행기 부품을 납품하는 KAI, 아스트 등의 주가가 고공행진 중이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95호(2015.02.11~02.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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