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 3.0 시대(상)
2015-04-29 11:36:43 게재
기술금융에 대한 은행권 인식이 '선택'에서 '필수'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앞장서 기술금융을 부르짖을 때만 해도 '정권 코드 맞추기용'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선 '신성장동력'으로 대접하는 추세다.
저금리 기조 지속, 사상 최저 수준의 순이자마진(NIM), 낮아지는 평판과 신뢰도 등 사면초가 속에서 돌파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파르게 느는 기술금융 실적 = 기술금융은 창업 초기 단계에 있거나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들에게 새로운 금융기법을 활용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의 담보대출 위주의 금융관행으로는 이런 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힘들었지만 지식재산권, 기술력평가 등을 활용하면 자금지원이 가능하다. 리스크 측면에서 본다면 은행으로선 쉽지 않은 방향일 수 있다.
실제 지난해 7월 금융당국이 기술금융을 강조할 때만 해도 은행권 분위기는 미온적이었다. 전 정권에서 강력하게 밀었던 '녹색금융'처럼 곧 사라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국의 의지가 예상보다 강했던 것은 물론이고 은행 쪽도 시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의 대출수요가 점점 줄어드는 데다 가계부문 역시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은행들이 중소기업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신생기업)에 대해선 여전히 경계하는 시각이 남아 있지만 문턱이 낮아진 것은 확실하다.
기술금융 실적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7월만 해도 486건, 1922억원에 불과하던 시중은행들의 기술금융 대출은 연말에는 1만4413건, 8조9247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 들어서는 누적 대출건수가 3만건을 넘어섰고 금액으로 따지면 20조원에 육박한다. 은행연합회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3월말 기준으로 은행들의 기술금융 대출잔액은 19조8994억원(3만537건)을 기록했다. 기업은행이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당국 "기술금융, 은행권에서 비은행권으로 확산" = 금융당국은 올해야말로 기술금융 3.0 시대를 열겠다며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술금융 인프라를 구축했던 1.0 시대, 금융기관 내 기술금융을 정착시키는 2.0 시대를 넘어 기술기반 투자를 확대, 인프라를 고도화시킬 수 있는 3.0 시대로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대출보다는 투자 중심으로 끌어가겠다는 구상이 명확하다.
올 초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와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7차 투자활성화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기술금융을 은행권뿐 아니라 벤처캐피탈 등 비은행권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기술정보데이터베이스(TDB) 서비스 이용기관을 은행에서 자산운용사, 벤처캐피탈, 사모투자펀드(PEF) 등으로 확대해 기술부문에 대한 지원 확대 및 기술정보가 쌓이는 효과를 노리겠다는 의도다.
◆"성장동력 확보 위해 필수" vs "무리한 실적 경쟁" = 다만 속도전 방식으로 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지적은 귀 담아 들을 만하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을 줄 세우는 방식으로 독촉하는 데에는 반감이 쌓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실적 쌓기에 매달리다가 부실화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기술금융) 방향이 옳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속도전을 하거나 실적경쟁을 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임원은 "기존 거래처도 기술금융 실적을 낼 수 있는 절차를 거치다 보니 오히려 속도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가시적인 실적에 목을 매다가 창업 벤처나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제때 하자는 기술금융 취지에 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