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2015.11.24
국가신용등급 적용 대출 우선상환 받아 최대 9% 수익률 기대
연기금·보험·운용사.. 대체투자처로 떠올라
국내 연기금들이 최근 저금리.저성장 기조를 극복하고자 미주개발은행(IDB) 등 세계 개발은행의 개발도상국 개척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세계 개발은행이 추진하는 사업은 국가 신용등급과 동급이어서 리스크도 적고 인프라 개발로 인한 수익률도 최대 9%까지 확보할 수 있어 국내 보험사와 공제회들도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개도국 개발로 해외진출 교두보 마련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부 자산운용사들이 세계 개발은행들의 중남미 개척 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몇몇 대형 보험사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규모는 500억~1000억원 수준이다. 이를 추진 중인 자산운용사들은 보험사, 공제회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여는 등 자본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세계 개발은행의 개도국 개척사업은 '구조화 금융'의 하나다. 세계 개발은행이 직접 대출하는 'A론'과 민간자본이 참여하는 'B론'이 함께하는 것이다. 미주개발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세계 개발은행이 금융주선사로서 민간자본을 모집하는 구조다. 세계 각국의 민간자본들은 자국이 세계 개발은행의 지분을 보유한 만큼 투자를 집행한다.
국내은행들은 홍콩법인을 통해 세계 개발은행의 개도국 개척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측의 사업을 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996년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은행들이 세계 개발은행의 사업에 많이 참여했으나 외환위기 등으로 은행산업이 위축되면서 개도국 투자 비중도 크게 줄었다.
지난 해 KEB하나은행은 국제금융공사(IFC)의 개도국 투자 20위권에 들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지난 해부터 ADB의 사업을 많이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도국의 정보가 많지 않아 투자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와 보험사는 여전히 투자를 꺼리고 있다. 그나마 IFC가 국내 자산운용사 측에 투자요청을 한 것은 터키 키리칼레 화력발전소 투자 건 때문이었다.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국민연금 등 일부 기관투자자의 모집을 독려했고, IFC가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투자욕구를 알아본 것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세계 개발은행들이 한국의 민간자본들을 알아본 이상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일본과 프랑스의 민간 금융회사들이 세계 개발은행의 사업에 참여해 해외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것처럼 국내 금융회사도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국가부도 시 대출 우선 상환받아
B론에 참여하는 민간자본들은 세계 개발은행의 신용등급을 적용받고, 그들의 권리를 공유할 수 있다. IDB의 신용등급은 스탠다드앤푸어스가 'AAA'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신용등급(AA+)보다 높은 수준이다. 개도국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인 'BB+' 이하라고 해도 세계 개발은행의 신용등급인 'AAA'를 적용받기 때문에 개도국의 투자 리스크를 상쇄시킬 수 있다.
특히 개도국이 외환위기나 국가부도 상황일 때도 세계 개발은행의 B론에 참여한 민간자본은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돼있다. 개도국의 외환위기 시 개도국이 보유한 외화(달러)를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다.
또 개도국이 부도상황일 경우 채권국가들의 채무상환조정에 참여하지 않고 우선적으로 대출을 상환받는다. 이는 세계 개발은행이 보유한 '우선적채권자지위(PCS)'라는 권리로 B론에 참여한 민간자본이 모두 공유할 수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세계 개발은행은 B론에 참여한 민간자본의 자금을 최대한 상환해줄 의무가 있다"며 "세계 개발은행의 보증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들의 권리를 공유함으로써 실제 보증받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초장기 투자로 연금의 장수리스크 방어
세계 개발은행의 인프라 사업은 20~30년 이상의 기간으로 대출해주는 초장기 투자다. 연기금과 보험사들의 초장기 수익률 확보에 도움이 된다. 특히 연금상품에 대한 장수리스크를 헷지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연기금과 보험사들의 장수리스크를 헷지하는 방안으로 장수채권이 부각되고 있지만 이 같은 낮은 리스크의 인프라 투자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국내 보험사들이 적극 참여해 대체투자 수단을 늘리면서 장수 리스크도 헷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개발은행의 인프라 투자에 참여하는 것은 은행과 증권, 보험사들의 동남아와 중남미 지역에 대한 진출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들은 개도국의 인프라 투자를 통해 각 사무소와 지점 등을 개설하기도 했다.
스페인의 빌바오비스카야 아르헨타리아 은행(BBVA)은 해외지역 중 중남미 지역의 법인이 가장 규모가 크다. BBVA도 IDB의 중남미 인프라 투자에 함께 하면서 해외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maru13@fnnews.com 김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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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개발은행 인프라 투자 노하우 배운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 2015.11.25 17:55 | 수정 : 2015.11.25 17:552015년 11월 26일자 14면
경제적 수익은 물론 현지 기업·금융기관 등과 네트워크 형성에 큰 이점
펀드 조성으로는 한계 증권·운용사 직접투자 AIIB 참여 비중 키워야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에 나서는 등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투자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세계 개발은행의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은행들이 1990년대부터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인프라 투자에 참여하고 있으나 비중이 여전히 작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보험사는 세계 개발은행의 인프라 투자를 접하지 못하고 있다. AIIB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는 인프라 투자에 대한 노하우를 쌓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AIIB, 중앙아시아 투자에 IDB와 신경전
자산운용업계는 중국이 AIIB 설립에 나선 이유 중 하나로 미국의 미주개발은행(IDB)을 꼽았다. IDB는 중남미 지역의 인프라 투자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투자하고 있다. IDB의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인프라 투자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 AIIB라는 설명이다.
세계 개발은행들은 개도국 인프라 투자를 통해 해당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도로와 항만 건설에 투자하는 대신,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기 때문에 개도국의 인프라는 세계 개발은행들의 소유물이나 다름없다. 세계 개발은행의 '세계 개발은행이 직접 대출하는 A론+민간자본이 참여하는 B론'에 참여하는 민간자본들은 개도국의 기업과 거래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고, 현지 금융기관과의 제휴로 개도국 진출을 확대하기도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도쿄미쓰비시UFJ은행이나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등 일본 은행들이 비이자수익이나 해외수익을 늘릴 수 있었던 것도 세계 개발은행의 인프라 투자에 참여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AIIB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IDB에 참여하는 비중이 많고, 정치적으로 미국을 배신하기도 어려웠던 점도 있지만 경제적으로도 IDB의 확대가 일본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중국도 이 같은 세계 개발은행들의 수익구조를 알고 AIIB 설립을 서둘렀다는 게 IB업계의 중론이다. 유럽도 IDB의 독식을 막기 위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과 중국의 전략적 제휴를 환영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인프라 투자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 은행들은 미국채 투자 이외에 다른 자산운용에 대한 노하우가 사실상 전무하다. 중국계 은행 관계자는 "안방보험 등 일부 중국 보험사들이 해외 부동산이나 금융회사에 투자하기 시작했지만 은행들은 자산운용에 대한 개념이 충분치 않다"며 "AIIB를 성공시키려면 인프라 투자의 노하우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AIIB 목소리 키워야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개도국 인프라 투자를 통해 대체투자의 노하우를 쌓아야 우리나라가 AIIB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AIIB의 창립멤버로는 한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몽골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 이외에 유럽과 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 총 57개국이다.
이들 가운데 인프라 투자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은 유럽 국가들이 전부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EBRD를 통해 개도국의 인프라 투자를 추진해왔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한국도 은행을 중심으로 해외인프라투자펀드를 조성했지만 그보다는 개도국 투자에 직접 참여해 해외투자 노하우를 익혀야 한다"며 "정부도 AIIB에서의 목소리를 키우려면 은행뿐만 아니라 보험사와 증권사의 인프라 투자를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