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6
[스페셜] 4대 곡물메이저·투기 금융자본 세계 곡물 가격 쥐락펴락
2000년대 이후 세계 곡물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주인공은 ‘4대 곡물메이저’ 기업과 투기적 성격의 ‘금융자본’, 그리고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거대 ‘종자’ 기업들이다. 4대 곡물메이저들은 수십 년 전부터 세계 곡물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다. 4대 곡물메이저는 카길(Cargill), ADM(Archer Daniels Midland), LDC(Louis Dreyfas), 벙기(Bunge), 이 네 개의 다국적 곡물기업을 지칭한다.
이들은 농산물 중개나 농사만 짓는 기업이 아니다. 종자 개발과 공급은 물론, 거대 저장시설 운영과 곡물 유통·운송을 위한 항만과 선박 사업까지 한다. 여기에 유전자 변형 농산물 사업과 비료 개발과 생산, 식품 가공은 물론, 각종 중개 금융 및 투자 사업, 바이오에너지 생산 등 곡물과 농업 부문에서 상상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사업을 하고 있는 초거대 기업들이다.
4대 곡물메이저는 전 세계 곡물 교역량의 약 80%, 전 세계 곡물 저장시설의 75%를 점유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곡물을 운송할 수 있는 선적 능력 역시 47%에 이른다. 이들 4대 곡물메이저를 통하지 않고서는 곡물의 국제 거래, 저장, 운송이 쉽지 않을 만큼 이들은 세계 곡물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4대 메이저 국제기구에도 영향력 행사
4대 곡물메이저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기업이 카길이다. 카길은 미국 미네소타주(州)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다른 곡물메이저들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금융사업에 집중 투자하여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2003년 100억달러 규모의 ‘블랙리버에셋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다.
또 다른 곡물메이저 ADM은 미국 일리노이주를 기반으로 한다. 브라질 등 남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에너지사업에 집중하며 다른 메이저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다. 놀랍게도 ADM은 다국적 농업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최대의 에탄올 생산기업으로 올라선 신재생에너지 기업이기도 하다. ADM은 옥수수 등을 원료로 에탄올을 만들어 내는 바이오에탄올사업을 통해 미국 에탄올 생산량의 13%를 책임지고 있다.
벙기는 4대 곡물메이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1818년 네덜란드에서 출발, 남미의 아르헨티나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특히 곡물 유통에 강점을 갖고 있다.
LDC는 1968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유럽계 업체다. 곡물 유통에도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닭 등 가금류 가공 및 유통 사업에 큰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 4대 곡물메이저의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농산물 교역과 관련해 개별 국가는 물론 심지어 국제기구와 가격 같은 교역조건 등을 놓고 벌이는 협상에서 이들은 특히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미국을 대표해 협상을 주도한 인물이 당시 카길의 부회장 대니얼 암스테드였다고 한다. 2003년 멕시코에서 열린 WTO(세계무역기구) 협상에서도 미국 정부의 협상안에 카길이 제안한 내용이 그대로 반영돼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2011년 G20 정상회의에서 ‘급격한 식량 가격 폭등을 규제해 보자’는 프랑스의 의견을 미국이 반대했다. 그런데 그 배후에 카길 등 미국계 곡물메이저가 있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이들 곡물메이저는 특히 곡물 가격 상승기에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높은 공급 가격이 유지될 때 공급량을 확대하는 전략을 써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뒤를 미쓰이와 미쓰비시 등 일본계 종합상사들이 세계 곡물시장에서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위협하는 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주자가 듀폰(DuPont)이다. 210년 전 설립된 듀폰은 ‘나일론’ 등을 생산하며 전 세계 화학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화학 기업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듀폰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농업 기업이다. 듀폰의 전체 사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농업이다. 총 매출의 37%를 농업 분야에서 올리고 있다. 특히 ‘종자’ 산업에서 세계 2위일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4대 곡물메이저 중 하나인 벙기와 손을 잡고 곡물 거래, 식품 등에까지 진출, 세계 곡물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세계 최대 종자 기업인 몬산토(Mon santo) 역시 곡물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청양고추의 특허를 가지고 있다. 몬산토가 청양고추 종자를 공급하지 않으면 한국은 청양고추를 재배할 수 없다. 몬산토가 곡물 가격, 공급량 등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최대의 유전자변형농산물(GMO) 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GMO 콩의 획기적인 공급량 확대를 통해 기존 곡물메이저들을 위협하고 있다.
2008년 이후 폭등 주범은 금융자본
2000년대 이후 세계 곡물시장에는 새로운 강자가 등장한다. 바로 헤지펀드 등의 금융자본이다. 특히 투기적 금융자본이 곡물 가격 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곡물시장에서 금융자본은 곡물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중개 금융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상품선물시장의 수익률 확대를 노린 헤지펀드들이 대거 곡물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국과 유럽의 초저금리 정책과 미국이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양적 완화로 세계 자본시장에는 천문학적 돈이 풀렸다. 이 돈이 투기자본의 곡물시장행을 부채질했다.
고수익을 노리고 상품선물시장으로 유입된 투기적 자본은 예측이 쉽지 않은 이상기후, 국가 간 조약, 정책, 세금 등으로 특히나 변동성이 큰 밀·옥수수·콩의 선물상품에 유입됐다.
이들은 밀·옥수수·콩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에 베팅한다. 강력한 자금동원력을 이용해 자신들이 베팅한 방향으로 곡물 가격을 유도하는 등, 곡물 가격을 인위적으로 왜곡해 막대한 수익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의혹 수준이 아니라 농업 관련 국제기구에 의해서도 확인되는 상황이다. 2011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곡물 관련 선물 거래에서 실제 농산물 거래는 불과 2%이고, 나머지 98%가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적 금융자본들의 거래”라고 폭로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이들 투기적 금융자본뿐 아니라 초대형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농업 및 상품 인덱스펀드와 ETF(상장지수펀드) 등 대형 투자금융 자본 역시 고수익을 찾아 세계 곡물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형 투자금융 자본인 인덱스펀드와 ETF는 헤지펀드 같은 투기 금융자본보다 더 막강한 자금을 동원하고 있다.
이런 대형 금융자본들이 세계 곡물시장에 뛰어들면서 최근 발생하고 있는 국제 곡물 가격의 급등락은, 결국 이들 투기적 금융자본은 물론, 인덱스펀드와 ETF 등 대형 투자금융 자본의 수익률 보전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더욱 짙게 제기되고 있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의 투자금융 자본 역시 세계 곡물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의 투자금융 자본은 특히 ETF를 중심으로 세계 곡물시장에 뛰어들었다. 밀·옥수수 등 주요 곡물 전체에 베팅하는 EFT는 물론, ‘콩 선물’ 단 한 품목에 베팅하는 ETF까지 등장해 있다.
2008년 이후 세계 곡물 가격 폭등은 이상기온 등 작황의 영향도 있지만 ‘세계 곡물메이저들의 영향력 확대’와 ‘금융자본의 투기적 투자’가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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