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원개발

日,유전·광산 쌀 때 쓸어담는데…한국은!.일본은 원자재 가격하락 지금 투자 적기로. 한국은 2017까지 ‘공기업 정상화’ 방침에6조팔아야

Bonjour Kwon 2016. 3. 23. 21:43

2016.03.23

 

미국 애리조나주(州)의 ‘모렌치(Morenci) 광산’은 세계 최대 규모 구리 광산이다. 매장량이 32억t에 달한다. 그런데 이 광산에서 채굴되는 구리의 4분의 1은 일본 종합상사 스미토모가 가져간다. 스미토모는 지난달 중순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에 지분 13%를 추가로 사들여 전체 지분율이 28%까지 올랐다. 광산업계 관계자는 “구리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자 일본 기업들이 지분 확대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 자원 개발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이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지금이 투자 적기(適期)라고 본다. 저평가된 유전(油田)·가스전·광산 등을 공격적으로 쇼핑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자원 개발 사업이 사실상 올스톱됐다. 보유 중인 자산마저 급매(急賣)로 내놓고 있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일본은 쌀 때 사서 비쌀 때 이익을 내는데, 우리는 비쌀 때 사고 쌀 때 파는 ‘역주행’ 자원 투자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달릴 때, 한국은 멈췄다

 

일본 기업 미쓰비시는 지난 1월 미국 석유·가스 기업인 ‘시마 에너지’를 완전 합병했다. 2020년까지 14조원을 투자해 석탄과 동(銅) 생산량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미쓰이물산은 지난해 아프리카 모잠비크 탄광과 호주 가스전 지분 인수에 8억달러 넘게 쏟아부었다. 이 회사는 2017년까지 최대 1조4000억엔(약 15조원)을 에너지와 금속광 프로젝트에 투자할 방침이다.

 

반면 한국은 올 들어 3월까지 단 한 건의 신규 자원 개발 투자도 없었다. 오히려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방침에 따라 2017년까지 보유 중인 해외 자산 6조원어치를 매각해야 한다. 지금처럼 저유가 시대에 급하게 팔면 헐값 매각도 우려된다. 실제 한국석유공사는 2009년 1조원에 샀던 캐나다 정유회사를 10분의 1도 안 되는 900억원에 팔았다.

 

자원 개발 관련 인력과 조직도 쪼그라들고 있다. 석유공사는 해외 자회사 인력을 30% 이상 줄였다. 미국·이라크 등 5개 해외 사무소도 폐쇄하기로 했다. 이미 조직의 17%를 줄인 한국광물자원공사도 내년까지 전체의 22%인 118명을 더 줄인다. 해외 사무소도 11곳 중 8곳을 폐쇄할 예정이다. 민간 사업자도 비슷하다. 포스코대우는 자원 개발 인력이 24명으로 1년 만에 40% 정도 감소했다. SK네트웍스는 최근 자원본부가 석탄사업부로 축소됐다.

 

자원 개발 투자액도 줄었다. 2010년 11조원에서 지난해 8조원 밑으로 추락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투자액은 45조원에서 119조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세계 10대 광물 자원 업체(광물 자산 보유 기준)에 일본 기업은 미쓰비시(4위·588억달러), 미쓰이(7위·422억달러), 이토추(8위·216억달러), 스미토모(9위·213억달러) 등 4곳이나 이름을 올렸다.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지금이 투자 적기…국가적 전략 필요”

 

한국이 최근 일본과의 자원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뭘까.

 

일단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 올해 한국 정부 예산은 지난해(3594억원)보다 70% 넘게 줄어든 958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지난해보다 13% 늘어난 6500억원에 달한다. 민간 자원 개발 사업을 돕는 ‘정책금융’ 지원 규모도 한국은 2조7000억원으로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해외 자산 인수·합병(M&A)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금융·세제 혜택, 원자재 펀드 활성화 같은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보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일본이 자원 개발에 처음 나선 것은 1940년대부터다. 70년 가까이 사업을 벌이면서 다양한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반면 한국의 자원 개발은 1980년대 이후로 일본보다 40년 이상 늦었다. 가스업계 관계자는 “지금 같은 저유가 상황에서는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라며 “인맥과 정보망이 뒤처진 결과 얼마 없는 매물까지 일본이 쓸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쓰이물산은 호주의 산토스가 급히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소식을 발빠르게 파악하고 협상에 나서 가스전 매입에 성공했다.

 

기초 체력에서도 격차가 크다. 일본 자원 개발 기업들은 연 매출액이 75조~200조원대로 한국 기업의 2~4배에 달한다. 일본 기업들은 유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상쇄할 저력이 있는 것이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2011~2015년 사이 광물 가격이 94% 폭락했지만 미쓰비시의 순익은 14% 떨어지는 데 그쳤다”며 “지금의 투자 확대는 향후 유가가 오르면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해외 자원 투자를 한번 실기(失機)하면 10년 후에 땅을 치는 법"이라며 "국가 어젠다 차원에서 거대한 밑그림을 그려서 자원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집 서울대 객원교수는 "자원 개발은 실패 확률이 높아 어느 분야보다 전문가 양성이 필수적인 사업"이라며 "미국 등 자원 선진국의 개발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개발 노하우를 쌓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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