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원개발

박근혜 정부 출범이 우울한 그들? . 해외자원개발업계..2013.01.11 중앙일보

Bonjour Kwon 2013. 1. 15. 09:24

한창 잘나갔던 해외자원개발업계가 요즘 침울하다. 한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막 걸음마 뗐는데 그냥 주저앉아 있으라고 눈총 받는 느낌’ ‘사돈 밉다고 며느리가 구박당하는 설움’ 같은 게 있단다. 우울의 근원은 다가올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 대통령 당선인의 자원개발사업에 대한 온도차가 극명해서다.

 MB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자원외교’를 맨 앞줄에 세웠다. 재임 기간 내내 자원외교와 해외자원개발을 독려한 건 물론이다. 덕분에 석유·가스·광물 자원의 자주개발률을 5년 전보다 10%포인트나 올렸다. MB 정부 치적으로 자랑할 만한 수준이다
.

 그런데 박 당선인은 공약집에도 에너지·자원과 관련해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언급만 있을 뿐, 해외자원개발이나 자원외교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인수위에도 자원을 알 만한 사람들은 찾기 힘들다. 게다가 국회는 올해 가뜩이나 줄여서 올렸던 해외자원개발 예산을, 원안에서 다시 1300억원 정도 더 깎았다. 출자 및 융자 예산이 집중적으로 깎였다. 자원업계의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위축은 지난해부터 눈에 띄었다. 유럽 불황 등으로 자원 인수합병(M&A)시장은 활성화됐지만, 우리나라의 100억원짜리 이상 M&A 건수는 8건 정도다. 2011년 14건보다 확 줄었다. 카메룬 다이아몬드광산 스캔들과 자원외교를 트레이드 마크로 했던 만사형통(萬事兄通) 형님의 구속 등 내부 요인 탓이 컸다.

 지식경제부 담당자는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벌여놓은 사업의 투자 실적과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보다 관리로 돌아섰다는 말이다. 해외자원개발의 주축이었던 공기업들부터 현재 구조조정 중이다. 지난 5년간 어질러졌던 것을 정리하고 리스크를 줄이겠단다.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 우리보다 앞서 자원외교와 해외자원개발에 뛰어든 중국은 지난해 캐나다 원유·가스생산업체인 넥센을 사들이는 등 지칠 줄 모르는 식욕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지금 시장엔 질 좋은 매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왜 이때 느닷없이 어질러진 걸 정리해야 한다고 할까. 중국과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가.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의 적(敵)’을 지적한다. 그들이 꼽은 가장 큰 적은 ‘VIP(정치권과 관계의 높은 분)들의 과시욕’이다. 해외자원개발은 워낙 외생 변수가 많아서 자원외교는 실과 바늘처럼 따라 들어가야 한다. 중국 자원외교도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중국은 소리가 안 난다. 넥센의 경우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M&A 1순위로 눈여겨보던 기업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선 인수협상 1년 동안 신문에 단 한 줄도 안 비쳤고, 뻔질나게 자원외교를 하면서도 음흉하리만치 입 다물고 있었다.

 이에 비해 우리 VIP들은 사뭇 달랐다. 총리실·외교통상부·지식경제부에 ‘형님’까지 나선 ‘VIP부대’가 한 건 올리려고 하니 ‘실리’보다 ‘한 건’ 챙겨 드리는 게 더 급했던 측면이 있단다. 또 이분들이 자기 치적 홍보에 열중하면서 중간에 비밀이 새나가 실무선에서 기함을 한 일도 허다했고, 잡음도 많았다. 업계에선 이런 ‘진상’들 때문에 ‘해외자원개발’ 하면 염증부터 일으키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게다가 요즘 미국 셰일가스 공급 등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이 둔화하면서 개발보다 사는 게 효율적으로 보이는 분위기도 있다.

 한데 자원 96%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 자원문제는 언제나 안보에 있어서 아킬레스건이다. 자원정책은 단기적 시장 분위기와 정치적 이유로 걷어치울 일이 아니다. 요즘 자원개발은 1차 산업도 아니다. 시장 1위를 중국에 내준 조선업계도 해양플랜트에서 살길을 찾아야 할 것이고, 요즘 광산 개발에는 각종 연구개발(R&D)과 정련·제련에다 건설까지 동반 진출한다. 창조경제·중소기업육성·고용확대 등의 해법도 함께 도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박 당선인 주변 인사들의 ‘과묵함’으로 VIP들의 ‘한 건주의’만 걷어낸다면 실리와 안보를 함께 챙기는 자원정책이 가능할 것이다. 자원은 정치 문제가 아니라 생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