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5.29
1970년대 상호부조의 개념으로 출발'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 퇴직 불안감으로 오히려 급성장[이데일리 이민주 기자] “20여년전, 솔직히 ‘갈 데가 마땅치 않아’ 공제회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 입사하고 싶어 난리가 따로 없네요. 상전벽해를 느낍니다.”행정공제회(정식명 대한지방행정공제회)의 K팀장(52)은 해마다 이맘때 진행되는 입사 지원자의 스펙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들 지원자의 이력칸을 보면 국내 최고 명문대 졸업은 물론이고 해외 유학 경력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입사 경쟁률은 해마다 200대 1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와 학력을 철폐한 2010년에는 324 대 1의 기록적인 경쟁률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K팀장은 “내가 지금 입사 지원서를 냈다면 서류 전형에도 통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동창회에서 친구들이 내가 좋은 직장에 다닌다며 한턱 사라고 하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고 털어놓았다.
전성기 맞은 국내 공제회
공제회에 입사 지원자가 몰리는 이유는 완벽한 고용보장과 풍족한 보수, 견딜만한 업무 강도 때문이다. 요즘 이런 삼박자를 갖춘 직장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국내 공제회 가운데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행정공제회의 지난해 신입 대졸 사원의 연봉은 3083만원이다. 구체적으로, 전체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4305만원이고, 대리 4295만원, 과장 5285만원이다(잡플래닛 조사). 국내 대기업의 신입 대졸 사원 평균연봉 3855만원에 비하면 낮은 것 같지만 이는 명목상의 차이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공제회는 회원들의 납부금을 기반으로 운영되며,회원들의 감사를 받기 때문에 임직원의 급여 수준을 높게 책정하기 어렵다”며 “복리후생비, 복지 수당을 감안한 실제 보수는 대기업을 상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다 일단 입사하면 사실상 평생 고용을 보장받는다는 장점을 국내 공제회는 갖고 있다. 공제회는 어느 곳이든 공채 출신이 임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공채 출신이 아니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행정공제회는 투자를 책임지는 CIO(최고운용책임자)도 공채 출신이 맡고 있다. 흔히 말하는 ‘순혈주의’ ‘텃세’의 원리가 작동되고 있는 곳이 국내 공제회다.
업무 강도는 높지 않은데, 이는 공제회가 정보공개의무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국내 관련법과 규정에 따르면 경찰공제회(경공), 과학기술인공제회, 교직원공제회(교공), 군인공제회, 대한소방공제회, 행정공제회(행공), 지방재정공제회의 7대 공제회는 예산 및 결산서를 주무 장관에게 제출하면 그만이고 일반에 공개할 의무는 없다. 시민단체 바른사회가 지난해 이들 7대 공제회에 대해 예산 및 결산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거절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제회측은 “우리는 회원들의 이익과 복지를 대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공공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보를 공개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대한민국의 사실상 모든 국민의 감시와 정보공개요청에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KBS같은 공영방송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내 공제회 임직원들은 대외 업무 부담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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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점 덕분에 공제회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공제회야 말로 숨어있는 철밥통’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공제회 임직원의 이런 높은 만족도와 사기의 밑바탕에는 풍족한 재정이 깔려 있다.
회원 65만명으로 국내 최대 공제회로 꼽히는 교직원공제회는 운용자산이 24조원에 달하는 자본시장의 ‘큰 손’이다. 교직원공제회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내와 해외의 사모펀드, 자산운용사, 창투사의 CEO들은 서울 여의도 교공 사무실을 발등에 불이 나게 찾고 있다. 교직원공제회는 자체 수익(사업 수익) 창출을 명분으로 호텔, 창투사, 신용금고도 운영하고 있다. 국내 공제회가 법률상으로는 ‘공제회’지만 실제로는 ‘대기업’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들어 국내 공제회는 대체투자를 명분으로 항공기를 매입하기도 하고, 해외 물류센터이나 미술품을 매입하기도 한다. 전국 지방 공무원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행정공제회도 회원 25만명, 운용 기금 3조원의 ‘큰 손’이다.
1970년대, 소박하게 출발
국내 공제회는 어떻게 이런 전성기를 맞이했을까?
국내 공제회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회원(납입자) 증가’ 덕분이다. 공제회(共濟會)는 글자 그대로 ‘회원들이 어려울 때를 대비해 각자의 수입의 일부를 떼어 놓는 곳’이다. 우리 전통의 품앗이나 계모임과 성격이 유사하다. 돈을 내는 회원이 증가하면 덩달아 ‘회비(회원납입금)’도 증가하고 재정이 풍부해지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국내 메이저 공제회에서 정년 퇴임한 L씨는 “교직원공제회(1971년 설립)를 비롯해 국내 공제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설립되던 1970년대에는 금융의 개념도 명확하지 않았고, 회원들이 회비를 내면 그대로 은행에 넣어두었다가 돈 쓸 곳 생길 때 인출하는 수준이었다”며 “당시에는 우리 국민들이 노후를 자녀에게 의지했기 때문에 공제회의 필요성도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행정공제회, 교직원공제회 등이 초기에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둔 이유도 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L씨는 “당시 여의도는 국회의사당을 조금만 벗어나면 논밭이 있고 개구리가 울어대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주목을 받으며 급성장하자 공제회 회원도 덩달아 급증했다.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을 초토화시켰지만 오히려 공제회 업계에는 도약기로 기록된다. L씨는 “IMF 외환위기로 동료들이 졸지에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앉는 것을 목격하고, 더이상 ‘자식’이 ‘노후대책’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게 되자 공제회 가입자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공제회의 회원수는 1000만명이며 운용자산은 400조원으로 국민연금에 필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의 회원수와 운용자산은 각각 2200만명, 560조원이다.
불확실한 미래, 대책은?
황금기를 지나고 있는 국내 공제회에도 걱정거리는 있다.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이다.
우선, 공제회의 풍부한 현금 창출의 원천이 돼온 회원(회비 납입자) 감소가 ‘발등의 불’이다. 공제회 회원 감소는 국내 인구의 감소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다.
이와 반대로 ‘퇴직 회원’은 증가세라는 것도 공제회로서는 고민거리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공제회는 신규 회원은 감소하는데 지급해야 할 돈은 증가하는 이중고가 눈앞에 닥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내 공제회는 사업 수익을 늘리고,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국내 공제회가 국내 주식 투자에서 벗어나 해외 부동산, 인프라(항공기, 물류센터 등)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것은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또, 사업 수익을 늘리기 위해 일부 공제회는 직접 호텔이나 자산운용사를 운영하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공제회의 그간의 발전은 각자의 역량이라기보다는 한국 경제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며 “한국경제가 저성장기에 접어든 이제부터 공제회의 진짜 실력이 드러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hankook66@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