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앙일보 2017.11.22
국민연금이 엊그제 KB금융지주 임시 주주총회에서 KB 노동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외국인 주주들의 반대로 노동이사제는 부결됐지만 파장이 크다. 국내 주요 상장사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이사제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는 점에서 주주의 이익보다 정권과의 코드를 맞춘 주주권 행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신으로 현 정부 출범 초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일했다.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은 철저히 수익 극대화에 맞춰 운용돼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책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명박 정부 시절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거론해 논란이 됐다. 국민연금을 동원해 경영권을 압박한다는 점에서 연금 사회주의라는 지적을 받았다.
국민연금은 이번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처럼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내부 실무진으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결론을 냈다. 그러니 ‘낙하산 이사장’의 ‘코드 의결권’이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국민연금에 의결권 행사라는 양날의 칼을 함부로 맡겨 둬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은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의 ‘연금적립금관리운용(GPIF)’에서 배워야 한다. GPIF는 국내 주식 투자를 전부 펀드 방식으로 아웃소싱하고 펀드 내 주식의 의결권도 자산운용사가 행사한다. 의결권 직접 행사에 따른 정치적 논란과 오해를 피하고 시장 참가자의 집단 지성에 결정을 맡기는 것이다. 우리도 국민연금을 정책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정치권의 적폐부터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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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사회주의 위험성 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이대로 좋은가?
박진우 The Liberal Economist 편집인 2018-01-05
⊙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자신의 판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선택한 금융상품 아닌 사실상 강제 조세
⊙ 미국 등에서 주주자본주의가 문제된 것은 소액 주주에게 지분 뛰어넘는 권한 부여하려 했기 때문
⊙ 국민연금은 수익률보단 집권세력의 정치적 목적 위해 의결권 악용할 연금 사회주의 위험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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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조선DB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얼핏 시장자유주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주인인 주주가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한다는데, 뭐라 하면 시장자유주의가 아니다. 좌파들은 그 지점을 파고든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강제성을 고려해보면, 코웃음 칠 주장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은 연금 가입자들이 자신의 판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선택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사실상 강제 조세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호가호위일 뿐이다. 국민의 돈을 강제로 걷어 자기들 마음대로 운용하는 것이다.
민간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장려해야 한다. 연금 가입자들이 자율적 판단 하에 재산의 운용권을 민간연금에 맡긴 것이므로, 주주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민간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정당하다. 민간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잘못하여 수익률이 떨어지면 가입자들은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잘못을 응징한다. 연금의 평판이 나빠져 신규 가입자도 줄어들 것이다.
일부 애국보수 세력들은 기관투자자들이 단기 수익을 추구할 뿐이라며, 주주자본주의를 기업의 장기 성장 모멘텀을 갉아먹는 주범처럼 얘기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기관투자자 중엔 단기성 투기세력보다 장기적 안목에 기반을 둔 가치투자자가 더 많다. 기업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며 수익을 내야만 연금도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주자본주의는 기업과 국민 경제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미국 등에서 주주자본주의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소액 주주에게 낸 돈만큼의 의결권을 뛰어넘는 권한을 부여하려 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의 투자 동기는 단기성 자본이득과 배당소득에 있다. 의결권 행사를 통한 기업 경영은 별 관심도, 의미도 없다. 그래서 소액주주를 보호하려는 각종 제도들이 결과적으로 소액주주에게 도움이 됐다기 보단, 투기세력에 의해 악용된 것이다. 이와 달리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는 어떠한 특별대우도 아니다. 법이 부여하는 특혜와 시장에서의 정당한 권리 행사는 구별해야 한다.
요컨대 주주 자본주의는 좋은 것이고 장려해 마땅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다. 민간연금은 수익률로 심판받기에 의결권 행사에 신중해야 하지만, 오히려 국민연금은 어떠한 심판도 받지 않기에 수익률보단 집권세력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의결권을 악용할 공산이 크다. 연금 사회주의다.
국민연금은 폐지하고, 자동차 보험처럼 연금 가입만 의무화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의결권 행사는 하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