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개발계획

투기꾼 판치는 500곳50조 5년투자.도시재생사업(도심원형을 유지하면서 지역정비.주민공동체’참여와 의사결정 지역 활성화 사업).예산따먹기만

Bonjour Kwon 2018. 7. 8. 06:59

2018.07.07.

[경향신문]

2014년 국토교통부는 서울 창신ㆍ숭인지구를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했다. / 반기웅 기자

 

2014년 말부터 마을에 외지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지도를 펼쳐놓고 값이 오를 만한 땅과 집을 설명하는 무리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허물어진 집’들이 팔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대여섯 채씩 집을 사들였고, 팔린 집의 소유주가 자주 바뀌었다. 평당 800만원 선에 머물던 집값은 몇 년 새 1500만원을 넘어섰다. 2015년 10월 4억원 초반대에 거래됐던 한 주택은 1년여 만에 6억원 가까운 금액에 팔렸다. 최근 4년간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진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지구에서 벌어진 일이다.

 

창신·숭인지구는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을 처음으로 시행한 ‘재생1번지’다. 종로구 창신 1~3동·숭인1동 일대 83만130㎡ 규모로, 지난 2014년부터 국비와 시비를 합친 200억원을 투입해 ‘마중물’ 재생사업을 마무리했다. 도시재생은 쇠퇴한 지역을 싹 밀어버리는 ‘철거 후 신축’ 방식을 피하고 도심 원형을 유지하면서 지역을 정비하는 개발방식이다. 막무가내식 개발이 아닌 ‘주민공동체’의 참여와 의사결정을 통한 지역 활성화 사업이 근간이기 때문에 개발예정지역마다 나타나는 기획부동산과 투기세력도 도시재생사업 구역에서만큼은 힘을 쓰지 못할 것으로 기대했다.

 

창신동, 주택 거래 3배 이상 늘어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투기세력은 보란 듯이 나타났다. 도시재생에 참여했던 일부 주민들은 이 같은 투기세력의 등장에 대해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이 당초 취지와 달리 서울시 등 ‘관’이 주도해 미리 정해둔 ‘계획’에 따라 진행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도시재생이 이전 개발계획처럼 정해진 틀에 따라 진행됐기 때문에 기획부동산이 들어올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개발 밑그림’을 손에 쥔 투기세력이 극성을 부린 곳은 채석장 절개지 바로 아래 창신동 돌산마을이다. 고지대에 위치한 돌산마을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전망대와 어린이공원, 소통공작소 등 굵직굵직한 도시재생 기반시설이 들어왔거나 들어올 예정지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마을주민은 “2014년 말부터 외부인들이 집을 한꺼번에 사들여서 많은 원주민들이 집을 팔고 떠났다”며 “다운계약서를 통해 매매가격을 낮췄기 때문에 겉에서 볼 때는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도시재생사업 관련 인물들과 여러 인맥으로 얽혀 있는 ‘사모님’들이 집을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창신·숭인 뉴타운 지구가 해제되고 도시재생사업이 사작되면서 창신동 내 주택 매매거래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 부동산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20건에 머물렀던 창신동 단독·다가구 주택 매매거래 건수는 도시재생사업지로 확정된 2014년 38건으로 늘어나더니 사업이 본격화된 2015년 67건, 2016년 73건, 2017년 69건 등 사업 이전과 비교해 평균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창신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절개지 인근 지역에 몇 년 새 주택 매매가 활발했던 건 사실”이라며 “서울 도심에 있는 집치고는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기획부동산뿐 아니다. 인구 3만명, 4개동을 한 사업지로 묶어놓은 창신·숭인지구 도시재생사업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첫 번째 재생사업지역이다 보니 서울시와 주민 간 갈등도 잦았다. 도시재생센터라는 민·관 소통창구를 마련했지만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고 주민들의 참여는 기대를 밑돌았다. 기껏 주민협의체 회의를 열어도 참석한 주민이 5명도 채 되지 않았다. 도시재생센터에서 주민 참여를 독려하고 홍보했지만 주민들은 모이지 않았다. 일부 주민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다보니 대부분 주민들은 사업 내용조차 알지 못했다. 소외감을 느껴 도시재생사업에 적대심을 보이는 주민도 있었다. 창신·숭인지구 도시재생사업 주민협의체 활동을 했던 ㄱ씨는 “대부분 주민들은 사업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며 “어쩌다 주민들이 반대의사를 밝히면 서울시는 개선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주민을 설득해서 원래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일방 통행, 주민과 갈등 빚어 지난 4년간의 도시재생사업이 단순한 시설 건립·정비사업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창신·숭인지구 도시재생사업에 투입된 예산 200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은 부지 매입과 건축, 시설 정비에 쓰였다. 백남준 기념관과 봉제거리박물관 등이 재생사업을 통해 건립된 대표적인 기반시설이다. 마을 명소는 생겼지만 이 시설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시설 소유권이 서울시에 있기 때문에 세금을 들여 서울시 자산만 늘린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 코디네이터(자문 기획자)로 활동했던 손경주 창신·숭인 도시재생협동조합 운영실장은 “애초에 도시재생사업이 무엇인지 아는 주민이 없었고, 주민 참여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면서도 “그동안의 노력 덕분에 지금은 주민들이 도시재생이 재개발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는 측면에서는 성과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운상가는 서울시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도시재생사업지 가운데 하나다. / 반기웅 기자이미지 크게 보기

 

세운상가는 서울시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도시재생사업지 가운데 하나다. / 반기웅 기자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는 창신·숭인지구와 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지다. 지난 2015년 서울시는 상권 쇠락으로 철거위기에 놓였던 세운상가를 살리기 위한 재생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광장을 만들고 청계보행로를 상가 상부와 연결하는 ‘보행 재생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세운상가 일대 44만㎡를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산업거점으로 만들어 ‘산업재생’을 이루겠다는 게 세운상가 재생사업의 핵심이다.

 

1단계 공사로 청계 대림상가와 세운상가를 연결하는 공중데크가 완성됐다. 보행데크 구간에는 29개의 창업공간이 마련됐다. 흉물처럼 널브러져 있던 시설들이 깨끗하게 정비됐다. 상가를 오가는 사람이 늘었고 점포에 카페와 음식점, 전시관이 새로 들어왔다. 상가는 예전보다 활기를 띠었지만 세운상가 상인들의 매출은 제자리다. 오른 건 임대료였다.

 

세운상가 3층 바열, 한 점포에서 15년 동안 전자제품 판매를 해온 조상천씨(가명·70)는 지난해 12월부터 임대료 인상을 두고 새로 바뀐 점포 주인과 실랑이를 벌여왔다. 최근 상가 내 점포 3개를 사들인 소유주는 조씨에게 그동안 월 20만원이었던 임대료를 40만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조씨에게 한 달 40만원은 큰 부담이었다. 장사가 바닥인데도 그나마 가게 문을 열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싼 임대료 덕분이었다. 조씨는 “장사가 안되는 걸 뻔히 알면서 이렇게 올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사정했지만 조씨에게 돌아온 건 소송문이었다. 지난 4월 소송에서 패소한 조씨는 결국 한 달 뒤 점포를 비워야 했다. 조씨는 “장사가 안되는 건 똑같은데 보행로 생겼다고 임대료를 올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다른 상가 상인들도 나처럼 갑자기 쫓겨날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와 같은 처지에 놓은 상인들은 더 있다. 조씨가 있던 점포 바로 옆에서 노래방 기기 도소매를 하고 있는 김영락씨(가명)는 지난 1993년부터 세운상가에서 장사를 해왔다. 당시 김씨가 낸 임대료는 매월 80만원이었지만 호황기였던 만큼 부담이 될 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상가가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김씨네 점포 임대료는 15만원까지 떨어졌다.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했다. 점포 주인들도 ‘비워놓느니 싸게 임대를 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인근 점포들의 임대 시세는 20만원 선에서 형성됐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고 정비사업이 이뤄지면서 점포 소유주들이 속속 바뀌기 시작했다. 임대료는 이내 2배 넘게 뛰어올랐다. 김씨는 “50만원 달라는 걸 간신히 깎아서 40만원에 있기로 했다”며 “옆집 사장이 나가는 걸 봤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올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임대료 인상 자제 상생협약도 무용지물 임대료 인상이라는 ‘된서리’를 맞은 점포가 한두 개씩 생기자 일부 부동산업자들이 점포 소유주들에게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책임지고 더 받아줄테니 임대료를 올려라”고 부추겼다. 세운상가는 임대료 급등을 막기 위해 상가건물의 임대인과 임차인, 서울시장이 함께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자는 취지의 ‘상생협약’을 맺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창신·숭인지구와 세운상가 지구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도시재생사업으로 꼽히는 사업지다. 두 곳은 각각 주거지 재생과 산업·상업지 재생으로 유형은 다르지만, 개발방식은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보완할 부분이 많은 ‘미완’의 서울형 도시재생 모델이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의 ‘롤모델’이 된다는 데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전국의 낙후지역 500곳을 정해 5년간 총 50조원을 투입하는 대형 사업이다. 7월 초에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사업 신청을 받고 심사과정을 거쳐 8월 말에 최종 선정지가 결정된다. 이미 물밑에선 지자체별로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 주체는 서울 131곳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했던 업체와 인력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에서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경험이 없는 지자체 공무원들을 대신해 사업의 밑그림을 그린다. 전국 각지에 서울형 도시재생 모델이 퍼지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과 기획부동산 난립, 주민 참여 배제 등 서울형 도시재생이 가진 문제점이 고스란히 재현될 수 있다.

 

수주전이 과열되면서 도시재생 뉴딜 시장은 벌써부터 아수라장이다. 지역 활동가가 사회적 기업을 창업해 사업에 뛰어드는 일도 예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도시재생조합 관계자는 “이 상황에서 도시재생 ‘업자’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며 “500곳이 새로 생기기 때문에 용역업체 말고는 다른 인력으로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 등 외부업체들은 실질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지만 실패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장은 “도시재생 전문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은 누가 예산을 따가느냐는 다툼만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더 늦기 전에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