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7 2
복제약 난립 막기 위해서
허가 기준 강화한 데 이어
제네릭 약값도 큰 폭 인하
생동시험 조건 못 맞추면
당장 약값 두 자릿수 하락
업계 "오리지널 약 많은
외국 제약사 배만 불릴 것"
국내 합성의약품 복제약(제네릭) 가격이 올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인하된다. 복제약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칼을 빼든 정부가 지난달 말 복제약 제조 허가 강화 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가격 인하까지 밀어붙이면서 복제약 판매 비중이 높은 중소 제약사들은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판"이라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전체 매출 중 복제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인 중소 제약사 일부는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27일 보건복지부는 기존에 복제약 성분이 같으면 동일한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했던 `동일 제제·동일 가격` 원칙 대신 올 하반기부터는 제약업체의 복제약 개발 노력 정도에 따라 가격을 차등 적용한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의약품 성분별로 20개 복제약(건보 등재 순서)에 대해 2가지 기준 충족 여부에 따라 복제약 의약품 가격을 산정한다.
2개 기준 중 첫 번째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시험)을 해당 제약업체가 자체적으로 실시했느냐 여부다. 한 제약사가 단독으로 생동시험을 하거나 향후 3년간 한시적으로 실시되는 공동 생동시험에서 주관 업체로 등록된 경우 자체 생동시험을 한 것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생동시험은 시험 대상 의약품이 인체에서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은 작용을 하는지 검증하는 절차로 복제약 판매 허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이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동안 한 제약사가 주도해 생동시험을 하면 다른 여러 제약사가 위탁 방식으로 공동 참여해 비용을 분담해 왔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말 공동 생동시험에 참여하는 업체를 원제조사 1곳과 위탁제조사 3곳 등 `1+3` 형태의 4개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마저도 3년 후에는 공동 생동시험을 완전 폐지하기로 결정해 복제약 제조업체들이 각자 자체 생동시험을 한 뒤 복제약을 생산하도록 허가 요건을 강화했다. 둘째 기준은 완제의약품 제조 시 식약처 고시에 따라 식약처에 등록된 원료의약품을 주성분으로 사용했느냐 여부다. 이들 2가지 기준을 충족하면 현재처럼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53.55%로 가격이 산정된다. 기준을 1개만 충족하면 53.55%의 85%인 45.52%,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면 45.52%의 85%인 38.69%만 가격으로 인정된다.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이 100원일 경우,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복제약은 53.55원, 1개 총족 시에는 45.52원, 하나도 충족을 못하면 38.69원 이하로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건강보험 등재 순서 21번째부터는 2개 기준 충족 여부와 상관없이 앞선 복제약 가격 최저가의 85% 수준에서 약가가 산정된다. 22번째 복제약은 21번째 복제약 가격의 85%로 매겨지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늦게 복제약을 내놓은 제약사는 원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서 약가를 책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리지널 약에 대해 60개가 넘는 복제약이 나오는 사례는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가격 차등화 없이 모든 복제약이 오리지널 가격의 53.55%를 약가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늦게라도 복제약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다. 복지부의 차등 약가 적용 방안은 `약제 결정·조정 기준` 고시 개정을 거쳐 올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기존 복제약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된다. 다만 업계 충격을 줄이는 차원에서 신규 복제약에 한해 올 하반기부터 가격 차등 정책을 적용하고 기존 복제약은 3년의 유예 기간을 준 뒤 적용하기로 했다.
애초 복지부는 기준 조건에 `복제약 직접 생산` 여부를 넣어 3개 조건으로 만들고 가격 산정 비율도 오리지널 가격의 53.55%에서 기준 하나를 미충족할 때마다 10%포인트씩 크게 낮추려 했다. 하지만 약가 인하 폭이 너무 가파르다는 업계 의견을 받아들여 인하 강도를 다소 낮췄다. 제약업계는 원안에서 다소 완화된 데 대해서는 "최악은 피했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복제약 약가 인하로 당장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A제약사는 "복제약 가격이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53.55%가 아닌 45.52%만 인정받게 되면 회사 매출이 곧바로 30%가량 쪼그라들 것"이라며 "국내 복제약 생산 기반이 초토화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B제약사 관계자는 "기존에 구축한 중장기 경영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기존 제네릭 제품을 대체할 신규 사업 아이템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중소 제약사 분위기를 전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날 선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C제약사 관계자는 "정부가 애초에 제약산업 활성화를 위해 공동 생동시험을 도입하며 복제약 생산을 장려해 놓고 이제 와서 복제약 난립이 문제라며 공동 생동시험을 철폐하고 가격마저 더 낮추겠다고 한다"며 "이러면 결국 오리지널 의약품이 많은 외국계 제약사들 배만 불리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제약협동조합은 "건보 재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미국은 이미 복제약 비중이 90%에 달하고 일본도 그 비중을 점차 늘려 가고 있다"며 "복제약도 엄연히 중소 제약사의 연구개발(R&D) 노력으로 만드는 건데 정부가 제약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발사르탄 사태 후 복제약 품질 관리 문제를 복제약 억제 조치로만 풀어나가는 건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서진우 기자 /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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