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계적 저성장 장기화 `뉴노멀`에 대응을
2019.11.14
지난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하로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치인 1.25%까지 떨어졌다. 이것은 수출·설비투자 부진이 지속되고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등 악화된 국내 경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내리면 투자가 증가하고 소비가 늘어 경기가 상승하고 물가가 오르는 효과를 기대하는데, 지금처럼 저금리 상황에서는 시장에 유동자금이 넘쳐흘러도 투자가 오히려 줄어 기대한 만큼 실물경제 파급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즉 경기부양 효과는 크지 않고 가계부채 문제나 집값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더군다나 이렇게 계속 기준금리를 낮추어 `제로금리`에 근접하면 정작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한국 경제에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인 한은의 금리 여력이 부족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물에 빠진 사람은 우선 살려놓고 보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과감한 금리 인하를 함으로써 시장에 대한 정부의 경기활성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보완책으로 재정정책과의 정책 공조를 통해 정책효과를 높일 수 있다. 현 정부도 올해 들어 예산을 조기 집행하고 내년도 슈퍼예산안을 편성하는 등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지금과 같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포퓰리즘식 복지지출이 아니라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드는 생산적 지출에 집중해야 한다. 구조 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재정지출 확대는 높은 수준의 국가부채만을 초래해 재정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또한 재정적자 지속은 구축효과를 통해 민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위험도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한계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완화적인 통화정책이나 재정 확장정책은 한시적인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한은이 최근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0.4% 증가했다고 발표하자 시장에선 올해 연간 기준으로 2%대 성장률의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각국이 장기간 저성장에 빠지는 `동시적 스태그네이션`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밝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장기화하는 `뉴노멀`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도 경기부양 정책뿐만 아니라 `뉴노멀`에 대비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본질적인 문제는 나라 경제의 최대성장능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의 하락이다. 이것은 인구 증가세가 둔해지고, 투자도 하락 추세여서 노동과 자본 투입 기여도가 낮아진 데 기인한다. 그러므로 잠재성장률의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투입량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투입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밖엔 없다.
노동의 투입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개혁이 급선무이고, 자본의 투입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규제개혁과 기술혁신이 필수다.
현 정부의 친노동·반기업 정책과는 정반대로 기업과 시장의 활력을 되살릴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시장의 힘을 키워주는 과감한 개혁으로 기업이 고용과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친기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기술혁신을 통한 신성장동력의 개발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준비해야 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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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마이너스 금리와 디플레이션의 망령
입력 2019.11.14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마이너스(-)` 명목이자율은 경제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해 실질이자율로 계산된 금리가 마이너스인 경우는 자주 있었다. 예를 들어 은행에 예금하고 3% 명목이자율을 받더라도 그사이 물가가 5% 올랐다면 실질이자율은 -2%가 된다. 즉 은행에 돈을 맡겼지만 실질가치는 감소한 것인데, 이러한 관계를 보고한 경제학자 어빙 피셔의 이름을 따서 `피셔 방정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렇듯 실질이자율은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명목이자율까지 마이너스인 경우는 흔하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현재 시점의 1000원 화폐를 금융사에 맡기면 미래에 900원을 돌려받는 약정을 맺는 것이어서 물가가 오르는 경제에서 이런 현상은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너스 금리라면 금융사에 돈을 맡기지 않고 현찰로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 돈을 떼어가는 금융사에 맡길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즉 현찰로 재산을 보유하면 명목이자율을 제로에서 방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마이너스 금리 이후 해당 경제에서는 현찰을 넣어둘 금고가 잘 팔리기도 했고,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효과적인 통화정책을 위해 명목이자율의 제로 하한을 없애도록 현찰을 전산화폐로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제약에도 마이너스 금리까지 일부에서 시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물가 하락이 경제를 파괴하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다. 즉 극단적인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대응할 정도로 디플레이션은 무섭다는 뜻이다. 디플레이션에서는 실물자산이나 재화의 가격 하락을 우려해 예금이나 화폐로 재산을 보유하고, 그 결과 실물 투자나 소비를 하지 않는데 그 사이클이 악화되면 경기가 극단적으로 침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폐나 특히 예금 보유로부터 생기는 수익을 최소화한다는 개념이다.
물론 마이너스 금리가 시행되더라도 이를 부담하지 않도록 현찰을 집에 쌓아두는 방법도 있지만, 특히 기업이나 기관에서 가지고 있는 화폐를 금융시스템 외부로 모두 빼내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해 실제는 대개 금융시스템 안에 화폐가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마이너스 명목이자율 아래서도 금리 정책이 작동하게 된다. 혹자는 그렇더라도 마이너스 금리 같은 극단적인 처방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명목금리의 수준 자체는 선악(善惡)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마이너스 금리를 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근대 화폐이론의 출발을 제시한 욘 구스타브 크누트 빅셀의 지적처럼,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금리가 경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해당 국가들이 마이너스 금리를 원했다기보다는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실물경제가 악화됐다는 뜻이다.
실물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이자율보다 금융시장 금리가 높게 설정되면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경제를 디플레이션으로 몰고 가고, 이와 반대로 실물경제가 요구하는 이자율보다 금융시장에서 금리를 낮게 유지하면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통화정책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특히 현재 한국 경제의 상황 악화를 초래한 상당 부분은 오히려 노동비용 급증 정책과 관련이 있고, 이것이 경기 부진으로 디플레이션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결국 물가 및 이자율과 연결된다는 측면에서 금리를 적정한 수준에 설정해야 하는 통화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금리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전문가적 분석과 판단을 가지고 행정부에 필요한 정책 변경도 요청할 필요가 있다. 현재 경기 악화와 함께 심화되는 디플레이션 압력 속에서 미국, 유럽 등 여러 국가의 정책당국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자율 수준을 고민하며 디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힘을 모았던 경험을 되새겨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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