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30
규제가 낳은 꼼수
◆ 유보소득세 논란 ◆
유보소득세로 혼란에 빠진 기업들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모펀드들이 벌써부터 생겨나고 있다.
유보소득세 부과를 피하기 위해 오너 일가 지분율을 정부 기준인 80% 이하로 낮춰주는 대신 시중 금리의 몇 배에 달하는 비용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아직 자세한 유보소득세 부과 방식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기업 입장에서 섣불리 계약을 체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마땅한 방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기껏 도입한 유보소득세 제도가 사모펀드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일부 사모펀드가 오너 일가 지분율이 높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유보소득세 회피용 상품을 제안하고 나섰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지분의 20.1%를 매입할 테니 해마다 매입한 지분 가액의 5~6%를 지불해달라는 사모펀드 제안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부가 지난달 제시한 '개인 유사법인' 기준이 오너 일가(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 80%인 만큼, 기존 오너 일가 지분율이 100%라면 이를 79.9%까지 낮춰 과세를 피하게 해주는 상품인 셈이다. 기업 규모에 비해 연간 수익 규모가 큰 기업이라면 유보소득세 회피를 위해 이 같은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다만 2021년 말까지 구체적인 유보소득세 과세 방식이 계속 수정될 것을 감안하면 당장 사모펀드와 손잡을 유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납세자가 유보소득세를 실제 납부하는 것은 2022년 3월부터인데, 그 전까지 계속 시행령 수정 등 관련 제도를 바꿀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법 체계는 납세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향의 법령 소급적용은 금지하고 있지만, 반대로 혜택을 주는 소급적용은 허용하고 있어서 2021년도 세법 개정안과 그 후속 시행령도 내년 과세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부가 사모펀드 개입을 막지 못하면 탈세를 방지한다는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사모펀드들에 새로운 시장만 만들어줬다는 평가를 받게 될 수 있다. 투자 대상 기업의 위험도는 크게 변하지 않은 가운데 연 5~6% 수익을 안정적으로 노려볼 수 있어 사모펀드가 대거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경기 침체로 0%대 기준금리가 고착화된 것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고수익 투자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과도한 규제와 세금 폭탄이 '꼼수'를 낳는 아이러니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재인정부 들어 종합부동산세 과세가 강화되자 다수 관리신탁법인은 주택·토지 보유자들의 부동산을 넘겨받아 다주택에 따른 '징벌적 과세'를 피하게 해주는 '절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신탁이 해당 부동산을 넘겨받아 관리하면 세법상 신탁에 종부세가 부과돼 다주택 고세율 종부세를 피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도 세법 개정을 통해 앞으로는 주택을 신탁에 맡겨도 종부세를 실소유주에게 징수하도록 법을 바꿔 '꼼수 신탁'을 차단하기로 했다.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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