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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정부 '임대주택에 살어리랏다'공공임대아파트로 집값 문제를 해결해결발상! 될일도아니지만 무척위험한세계관.소유할수 있는 '내집'을 원하는데 '집은거주하는것'이라가르치려든다.

Bonjour Kwon 2020. 12. 13. 09:18

[노원명 칼럼]
입력2020.12.13.
'살고 싶은 임대주택' 현장 점검하는 문 대통령 [사진출처 = 연합뉴스]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도 화성동탄 행복주택 단지를 방문해 "공공 임대주택의 다양한 공급 확대로 누구나 집을 소유하지 않고도 충분한 주거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후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니가 가라 공공임대' 제목 글로 비판하자 청와대가 발끈했다.

"공공임대 주택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우리 국민이 자존감을 갖고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곳" "사람이 사는 곳" "'어렸을때 학원 친구들이 임대아파트는 못사는 애들 사는 곳이라 해서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는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이제 상처를 아물게 하고, 질 좋은, 그리고 살고 싶은 임대주택으로 질적 도약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다짐하는 순간 다시 입주민들을 과거의 낙인 속으로 밀어 넣어" 등등.

유 전 의원 말의 요지는 '아파트값을 천정부지로 뛰게 한 무능한 정부가 임대아파트 공급확대를 들고 나왔는데 그건 집값 해결책이 못된다'는 것이다. 이걸 '임대아파트 주민을 차별했다'는 식으로 '계급갈등적'으로 몰고 가는 것은 현 정부에서 자주 봐온 방식이긴하나 제기한 문제에 대한 답변은 못된다.

문제는 현 정부들어 민간아파트 가격이 말도 안되게 올랐다는 것, 그런데도 정부는 공급을 틀어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대고 '중산층도 임대아파트에 사는 세상 만들겠다'고 하면 속 터질 국민이 유 전 의원 말고도 많다. 유 전 의원은 임대아파트 비하한 잘못이 있다 치고 청와대는 왜 자꾸 동문서답하며 국민을 바보 취급하나.

공공임대아파트로 집값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될 일도 아니지만 무척 위험한 세계관을 깔고 있다.

첫째 오만하다. 국민은 소유할 수 있는 '내집'을 원하는데 정부는 '집은 소유하는게 아니라 거주하는 것'이라 가르치려 든다. 소유와 거주를 분리하고 말고는 개인 가치관이다. 내 경험으로는 거주 만족도는 소유할때 극대화된다. 취향대로 뜯어 고쳐 살수 있으니까. 가치관에 관계된 문제에 정답이 따로 있는 것처럼 그 답을 정부가 제시하려 들어선 안된다. 북한, 소련 같은 독재 정부나 그렇게 한다.

둘째 '정부미'는 일반미를 대체할 수 없다. 군에 다녀온 사람은 정부미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나는 대충 잘 먹었고 누구라도 먹을만한 밥이었지만 맛이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임대아파트 공급확대는 말하자면 일반미가 부족하니 정부미 공급을 늘리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일반미는 일반미이고 정부미는 정부미다. 역할과 수요가 다르다. 시장을 망가뜨리고 정부가 대신 개입해서 좋아진 경우를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국가가 공급하는 북한, 소련의 아파트를 상상해보라.

셋째 정부미 질을 높이자는 발상은 경제학적으로 틀렸다. 근사한 공공임대 아파트를 짓는다는 얘기는 더 맛있는 품종의 정부미를 공급하자는 주장과 같다. 왜 그래야 하는가. 공공임대아파트의 싼 임대료는 정부가 임차인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보조금이다. 그 돈은 세금에서 나온다. 국민 모두가 임차인들의 임대료 일부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공공임대아파트 품질을 민간 수준으로 올린다는 말은 무척 근사하게 들리지만 실상 국민의 허리를 휘게 한다는 소리다. 선택된 임차인들을 위해 나머지 국민들이 희생해야 한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와 자기가 낸 세금 사이의 관계를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이걸 '재정착각'(fiscal illusion)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품질을 올리는데 자기가 내야 할 세금을 계산할수 없고 그 이미지만 보고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모르면 호구가 된다.

넷째 정부미 공급을 늘려봐야 일반미 값은 안 내려간다. 사람들은 주택을 통해 기능적 욕구만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적 욕망을 지향한다. 더 좋은 브랜드, 더 좋은 동네에 대한 열망은 아무리 천박하다 손가락질 해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국민은 인간이고 현실은 도덕교과서가 아니다. 임대아파트를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것으로 좋은 아파트에 대한 열망을 식힐수 없다. 일반미 가격이 오를땐 일반미 공급 기반을 늘려야 한다.

다섯째 이런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일반 국민 모두를 공공임대에 주거하게 하는 것이다(특권 계층은 빼고). 그러면 '임대아파트 사는 못 사는 애들' 같은 말로 상처받을 일도, 집값 때문에 정권 지지율 까먹을 일도, 재건축 불로소득을 허용할 일도, 민간 건설업자 배 불릴 일도 없어진다. 세상은 공평해지고 사람들은 천박한 욕망의포로에서 고양된 의식의 시민으로 거듭나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즐거움에 눈 뜰 것이다.

유승민에 대한 청와대 비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공임대 확충이 단순히 주택정책이 아니라 이 정부의 세계관에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안빈낙도의 세계관 말이다. 때마침 이 세계관을 대표하는 인물이 국토부장관에 내정되었다. 국가가 국민에 안빈낙도를 가르치는 세상은 상상에선 유토피아, 현실에선 북한과 소련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노원명 오피니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