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선박 수주로 도크를 채운 국내 조선소들이 이번엔 해양플랜트 수주를 통해 수익 개선을 노리고 있다. 해양플랜트는 일반 상선 대비 가격이 5~10배에 달하기 때문에 1기만 수주를 해도 조선소 실적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 지난 1년 사이 국제 유가가 40달러대에서 70달러대까지 오른 만큼 채산성도 확보된 상태다. 다만 아직 고유가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기엔 이른 만큼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1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042660)은 전날 카타르로부터 7253억원 규모의 고정식원유생산설비를 수주했다. 지난 6월 브라질 최대 에너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로부터 1조1000억원 규모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를 수주한 지 한 달 만이다. 대우조선해양이 한 해에 2기 이상의 해양설비를 수주한 것은 2013년 이후 8년 만이다. 이번에 수주한 설비는 카타르 최대 규모 유전 지역인 알샤힌(Al-Shaheen) 필드의 원유 증산을 위한 것으로, 2023년 하반기까지 건조해 인도될 예정이다.
한국조선해양(009540)도 올해에만 해양 설비 2기를 수주했다. 올해 1월 미얀마 쉐(Shwe) 공사에 투입될 가스승압플랫폼 1기를 5000억원에 수주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브라질 페트로브라스(Petrobras)사가 발주한FPSO 1기를 8500억원에 수주했다. 한국조선해양이 해양플랜트를 수주한 것은 2018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 6월 삼성중공업(010140)은 그동안 만들어 놓고 팔지못해 ‘악성 재고’로 남아있던 드릴십 1척에 대한 용선 계약에 성공했다. 이탈리아 전문 시추 선사인 사이펨이 올해 11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이번 계약에는 필요에 따라 2022년까지 설비를 매입할 수 있는 옵션도 포함돼 있어 향후 완전 매각도 가능하다.해양플랜트는 해저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 등을 탐사·시추·발굴·생산·저장·하역하는 일련의 장비를 말한다. 1기당 가격이 1조원이 넘는 만큼 조선소엔 큰 일거리다. 대표적인 고부가가치선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선의 가격도 1척당 2000억원 안팎이다. 조선시황이 급격히 악화됐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국내 조선사들의 돌파구 역할을 했던 것도 해양플랜트였다.조선업계는 올해 들어 잇따라 해양플랜트 발주가 나온 배경을 두고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감과 유가 상승으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해양 개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전날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잠정적으로 증산에 합의했다는 소식에 국제유가가 소폭 하락했으나, 여전히 올해 초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3.13달러로 집계됐다. 40달러대였던 작년 7월 중순과 비교하면 1년 사이 80% 이상 오른 셈이다. 조선업계에선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70달러가 넘으면 해양플랜트의 채산성이 보장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조선업계는 하반기에도 발주가 예정된 해양플랜트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이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나이지리아 봉가 사우스 웨스트 아파로(BSWA) 프로젝트에서 해양프랜트 발주가 나올 전망이다. 사업 규모만 12억달러(1조3600억원)에 달한다. 현재 이탈리아 사이펨, 중국 CIMC와 삼성중공업이 수주 경합 중이다. 업계에선 삼성중공업이 나이지리아에 합작조선소를 운영 중이고 앞서 2013년에도 나이지리아에서 수주한 해양 설비를 성공적으로 인도한 전력이 있는 만큼, 이번 아파로 프로젝트도 수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최근 노르웨이 국영석유회사인 에퀴노르로부터 북극해 해상유전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FPSO에 대한 입찰 제안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프로젝트가 진행 초기 단계인 만큼 입찰 규모와 일정 등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전체 발주 규모가 1조원을 넘길 수 있으며 이르면 연내에 입찰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브라질 페트로브라스도 하반기 중 20억달러(2조3000억원) 규모의 세르지오-알라고아스(Sergipe-Alagoas) FPSO 프로젝트 입찰을 진행할 예정인데, 국내 조선사들도 입찰 참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유가 반등으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큰 기대를 걸기엔 이르다는의견도 나온다. 나이지리아나 브라질의 발주건도 새로운 해양개발 프로젝트가 아니라 저유가와 코로나19 여파로 일시 중단됐다가 재개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해양플랜트 채산성이 확보된 것은 맞는다”면서도 ”다만 최근 유가 변동성이 커진 만큼 100달러 수준으로 완전한 고유가 국면에 접어들어야 해양개발이 본격화되고, 해양플랜트 발주도 안정적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우영 기자 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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